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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릴레이 ] 다큐 영화 ‘주전쟁(主戰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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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에세이(6)
지난 3월22일 하와이대학 Art Auditorium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主戰場, Shusenjo: The Main Battleground of Comfort Women Issue)을 감상했다. 하와이대학 김지형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영화 감상회에는 이 다큐를 만든 감독 미키 데자키 (Miki Dezaki)가 직접 나와 다큐를 만든 동기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왜 ‘위안부’문제를 비롯한 전쟁 범죄와 제국주의적 침략을 부정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과 ‘위안부’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여성인권에 대한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어떤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당신 누구예요? 무슨 해결을 해요? 우리를 두 번 죽이려고 해?”
영화는 위안부 할머니가 섣부른 동정은 하지말라는 절규로 시작한다. 통칭 위안부란 세계 제2차대전때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은 여성을 말한다. 할머니의 절망스러운 목소리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 원망, 그 분노, 그 절규가 가슴을 찔렀다. 이들(이들이라 말 할 수 없지만 달리 말 할 수 없어서) 열 댓살부터 스무 살 안팍의 앳띤 한국의 여성들이 무지막지한 일본군인들에게 짓밟혔다.
하루에 30회이상 유린당했다고 증언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위안부가 20만명이라고했다. 윤미향은 ‘당시 150만 200만의 일본 점령군이 있었으니 생각해 보라 20만은 최소한의 수치다’라고 했다.
이 여성들이 종전 후 고향으로 왔으나 그들은 유교주의와 가부장적 가족제도 밑에서 위로는커녕 냉대를 받았다. 그들은 차마 말 못하고, 차마 말못하고 숨 죽이고 살아야 했다.
“이제 말 하련다.”그들이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1991년 김학순이 자신이 위안부였다고 고백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일본우익 단체들의 말을 들어본다.“일본군이나 일본 정부에서 위안부 모집은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사사로운 단체나 이익단체에서 그리 했을 것이다.”
“그들이 과연 위안부였을까. 그들은 돈을 받았으며 옷을 사 입고 나름 생활을 즐겼다. 그들은 매춘부였다.”
“일본정부는 위안부에게 사죄하라고? 국가는 사죄해서는 안된 됩니다. 국가는 예를 들어 그것이 진실이라고 해도 사죄를 하는 순간 끝입니다.”
일본의 새 교과서준비위원이라는 후지오카 조부키츠라는 자가 이같이 말했다.
평화의 소녀상ㅡ이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는 표현이다. 제작자 김서경 작가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지금은 할머니지만 끌려가던 그 때에는 소녀였던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냥 소녀상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일본계 미국인단체들은 LA 지역에 세운 소녀 상 철거 소송을 위해 백만 달러를 모금했고LA 일본 영사관도 그 소녀 상을 철거할 것을 지지했다. 그들은 이 소녀 상마저 조롱했다. 심지어 종이 샤핑백을 머리에 씌우고 ‘어글리’라고 했다.
영화가 끝났는데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저 먹먹하였다. 가슴에 소녀상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 <주전장> : 다큐 감독인 미키 데자키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그는 5년간 일본에서 영어 교사를 했고 1년간 불교 승려로 출가도 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의 사회 문제에 관한 여러 유튜브 영상을 제작했는데, 일본의 인종차별에 관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일본 극우들로부터 맹비난을 받고 살해협박까지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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