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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초여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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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2-05-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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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은 오전 7시를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시간이 지나면 이미 태양의 열기가 비치기 시작한다. 

평소때 같으면 동네 어귀를 돌 때 마다 늦잠을 자지 않는 개들의 짖는 소리가 요란한데, 주말엔 밤늦게 까지 수영을 하는 주인을 따라 늦잠 중인지 오늘은 조용한 편이다. 단지 아침마다 마주치는 그레이 하운드 두 마리는 토토를 보자 여전히 격하게 짖으면서 지나간다. 

 

수요일엔 쓰레기차가 오는 날이다. 지겨워질 여름에 실내장식을 바꾸는 집들이 많은지, 의자나 커텐을 버리려고 내놓은 집들이 많다. 나도 오늘 오랫동안 사용하던 쿠션 네 개를 버렸다. 지퍼가 달리지 않아 세탁하기가 힘든 까닭이다. 

살림전문가 말에 의하면 쿠션이나 베갯속은 자주 갈아주는 것이 위생상 좋다고 한다. 솜 안에 곰팡이나 세균들이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건너편 헤더네 집에 새주인이 이사를 왔다. 달라스란 지명이 쓰인 커다란 이삿짐 트럭 두 대가 와서 짐을 부렸다. 어제 한 낮의 기온이 100도가 넘은 걸 감안하면, 근래에 가장 더운 날 이사를 한 셈이다. 

틴에이져로 보이는 아이들 둘이 내리고 부부는 40대 중반쯤 으로 보인다. 헤더네는 뒷마당에 커다란 창고와 깊이가 8피트나 되는 풀장을 네 마리 개들을 위하여 만들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이글 마운틴 호수가로 이사를 가버렸다. 그들 부부와 작별인사도 못한 것이 아쉽다.

 

사실 집 안에 있으면 건너편 집이 잘 안 보인다. 유도화 세 그루가 다이닝룸 창문을 가리고 있고 서재 앞에는 키 큰 나무와 장대를 감고 올라간 나팔꽃 넝쿨 때문이다. 그 옆에 있는 게스트룸 역시 정원수 가 창문을 절반 쯤 가리고 있다. 남의 집 이사 오는 모습이 궁금한 걸 보니 벌써 따분한 여름오후가 시작되었나 보다.

 

해질무렵 엔 주로 책을 읽는다. 요즘은 스탕달의 <파르마 수도원>을 읽고 있다. 18세기 이탈리아 파르마공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전쟁과 사랑이야기가 흥미롭다. 

나폴레옹이 이태리를 점령했던 그 무렵을 이태리사람들은 권태에서 빠져나온 시기라고 한다. 

반대로 주인공의 아버지인 토착 후작은 그 시기를 암흑의 시기라고 규정짓고 옛 상전인 오스트리아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스파이노릇도 서슴치 않는다. 

주인공 파브리스는 공작의 둘째 아들로 천진난만한 성격에 고모와 점성술을 잘 하는 동네 토박이신부를 좋아한다. 당시에도 답답한 보수와 거침없는 진보가 가족 안에도. 공국 안에도, 주변국에도 존재한 모양이다. 

이태리사람들은 가난보다는, 누군가에게 자존심을 다쳤을 때를 제일 부끄럽게 여긴다고 한다. 이태리어로 푼티플리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때 생기는 충동적인 감정이다. 

이런 감정을 조심해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경우 우발적인 일들을 도모하게 된다. 충동적인 샤핑이나 즉흥 데이트나 배신이나 변심을...

 

어제는 호박를 7개나 따서, 얇게 썰어 채반에 말렸다. 오이도, 깻잎도, 청갓과 케일도 물과 소량의 영양제만 주었을 뿐 인데, 날마다 나에게 큰 수확을 선사하는 중이다. 

영국 켄싱턴 궁을 갔을 때 엘리자베스 여왕이 결혼 전 남편 필립공에게 쓴 편지를 보았는데 이상하게 한 구절이 자꾸 생각이 난다. 아마도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디어 필립, 당신이 나에게로 와 주어서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지요...  디어로 시작된 그 편지의 한 구절. 나에게로 와 주어서...

생각해보면 이 불운한 시기에도 고맙게도 나에게 와 준 것들이 참 많다. 

꼬리가 긴 새들

아침나절 부는 시원한 서쪽 바람, 쉬지 않고 피었다 지는 정열의 히비스커스의 붉은 꽃잎,

끊임없이 열리는 탐스런 오이들, 텍사스에 사는 친구를 걱정해주는 한국의 친구와 친척, 뮤지컬 해밀턴을 볼 수 있는 채널, 코비드로 인하여 자신을 성찰 할 수 있는 시간들, 잊고 있던 일상의 소중함들 등등...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한 구절,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그렇다, 자신의 위치에 따라 차별 당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차별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차별을 주고서도 선량한 얼굴로 무장을 하고, 웃자고 한말에 왜 죽자고 덤비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심코 던진 차별에  개구리 한 마리 죽는다. 아니 한 가족, 한 마을이 죽을 수도 있다. 선량함으로 포장한 차별상자들이 더 무섭다.

 

노출의 계절, 여름이 다가왔으니 더욱 더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나쁜 뉴스들을 보면 내 몸이 스트레스를 받는지 자꾸 이유 없이 더 찐다. 

살이 찌면 안 되는 이유는 100가지도 넘는데, 몸에 좋은 음식들보다 입맛 당기는 음식들에게 손이 더 가는 이 부조리와 모순... 며칠 동안 탄수화물을 끊었더니 우울하다. 역병이 완전히 끝날 때 까지 다이어트는 연기해야 할 것만 같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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