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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유용한 식품상식] 비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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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더워진 날씨에 입맛 돋구는 새콤 달콤한 비빔면. 그중에서 인스턴트 비빔면의 대명사로 알려진 팔도 비빔면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한국은1950년 부터 미국의 원조와 함깨 밀가루 소비량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한국 야쿠르트의 윤덕병 회장은 향후 라면을 밥보다 더 많이 먹을거라 생각하고, 일본 라면 수프 전문 제조업체인 이찌방 식품과 기술 도입 계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3년 이천 공장을 준공하고 그 해 9월 3종(쇠고기, 크로렐라, 참깨)의 라면을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허나 이 상품들로는 삼양과 농심의 양강구도를 깨기에는 역부족했습니다. 이미 대중들은 삼양 혹은 농심라면의 맛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팔도는 남들이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라면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클로렐라 라면인데 이미 80년대부터 건강을 중시하는 부유층이나 고소득층을 겨냥해 클로렐라로 만든 라면을 출시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라면시장에는 없는 비빔면이나 후에 대한민국을 뒤흔든 꼬꼬면 열풍도 끊임없이 틈새를 노리는 팔도의 전략의 한 일환이었습니다. 1984년 팔도는 회심의 카드를 던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바로 비빔국수를 인스턴트 라면화한 팔도 비빔면입니다. 비빔면의 핵심, 액상 스프를 만들기 위해서 2년간 연구했다고 하며, 이때 전국 유명 비빔국수 집을 다 뒤지고 다녔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팔도 비빔면은 먼저 끓이고나서 차갑게 찬물로 세척한 다음 액상스프를 넣고 비벼서 먹는건데 당시 사람들은 그냥 일반라면 끓여먹듯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맛이 없고 불만이 엄청나서 당시 TV나 신문광고에 대대적으로 비벼먹으라는 내용을 어필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전설의 광고카피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입니다. 이러한 마케팅과 더불어 팔도 비빔면 보급의 1등 공신은 바로 야쿠르트 아줌마들입니다. 당시 야쿠르트 아줌마는 동네 골목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광범위한 영업망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이 유통망을 활용해서 요쿠르트 뿐아니라 비빔면도 파는 영업사원 역할도 맡았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84년 출시 첫해 880만 봉지를 팔았던 비빔면은 불과 7년 뒤인 1991년 누적5000만 봉지, 3년 뒤인 1994년에는 누적 1억 봉지를 돌파 해버립니다. 이때부터 일명 비빔면 전쟁이 발발하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농심에 뒤지고 우지파동으로 점유율이 추락해 기존 후발주자들에게 밀리고 있던 삼양은 어떻게든 반등의 계기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열무 비빔면, 갓비빔면을 출시, 공격적으로 비빔면 시장 진출을 선언하게 됩니다. 이 비빔면들도 일부 즐겨먹는 고객이 생겼으나 비빔면 시장의 점유율은 높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때까지 라면시장 패권을 잡고있던 농심도 1992년, 전격적으로 비빔면 전쟁에 참전을 선언합니다. 그때 선보인 쑥 & 도토리 라면을 농심의 간판모델인 배우 강부자 선생을 내세워 대대적으로 TV와 신문광고를 진행하고 전국 각지에서 무료시식회까지 열고 공세를 펼쳤으나, 팔도 비빔면의 아성을 깨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2005년 농심은 수년간 개발끝에 야심작 찰비빔면을 대중앞에 선보입니다. 매콤달콤한 비빔장에 레몬농축액을 더한 찰비빔면은 기존 비빔면들에 비해 매콤함으로 유명한데 사실상 이때부터 매운맛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원래 기존 비빔면의 핵심 타깃은 가족단위였으나 찰비빔면은 2030세대 특히 여성들을 겨냥하였고, 당시 어머나 열풍으로 트롯의 부활을 알렸다는 가수 장윤정을 모델로 기용해 대대적으로 마케팅해서 2030세대, 특히 여성 고객과 동시에 중장년까지 아우르는 전략으로 성공한 전략으로 평가됩니다. 이후 최근에는 오뚜기의 진비빔면, 농심의 배홍동 비빔면 등 팔도의 위치를 흔들려고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인스턴트 비빔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주말 점심은 채썬 오이와 삶은 계란 한조각 올린 시원한 비빔면 한그릇 어떨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Hmart 이주용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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