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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뿌리를 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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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3-05-2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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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에서 분꽃 떡잎이 올라왔다. 

한두 개 보이는가 싶더니 두더지 게임기의 두더지들처럼 여기저기서 쏙쏙 머리를 내밀었다. 비가 갠 다음 날 나가보니 엄청나게 많은 싹이 마치 자기 집인 양 당당하게 자리 잡고 서 있었다. 나비넥타이까지 매고 말이다. 

“헉! 니들이 왜 거기서 나오냐고요?”

다산의 여왕이라 칭했더니 이름값을 하고 싶었는지 화단을 벗어나 잔디밭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자식들을 퍼뜨렸다. 

빽빽해서 틈도 안 보이는 잔디밭을 대체 어떻게 뚫고 들어가 뿌리를 내렸는지 분꽃 어미의 종족 번식에 대한 의지가 참으로 놀라웠다. 

분꽃을 기르며 놀란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작년엔 분홍 꽃과 노란 꽃이 몰래 만나 반반 섞인 자식을 낳더니 올해는 주황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한 자식을 낳아 우리를 놀래 켰다. 차세대가 기대된다. 겨울에 밑동만 남기고 잘라주면 다음 해 또 나오는 건 알았지만 떨어진 씨가 굴러가 잔디밭에서 무더기로 핀 건 올해가 처음 있는 일이어서 적잖게 당황했다. 분꽃일지에 ‘분꽃 씨는 심을 필요 없이 마구 뿌려도 된다?’는 항목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분꽃이 잔디밭에 뿌리를 깊이 내리면 나중에 처치가 곤란하다고 해서 뭔가 보여주려던 노력은 가상하나 솎아내야 했다. 어린 싹들은 말짓하다 들킨 말썽쟁이들처럼 두 손을 올리고 공손히 끌려 나왔다. 분홍색 뿌리가 제법 길었다. 살겠다고 나왔는데, 안됐지만 뿅망치를 휘둘러서라도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한국에서 온 지인의 어머니가 뒷마당에 작은 남새밭을 만들어 식구들 먹을 채소를 심고 한 켠에 쑥도 심었다. 그놈의 쑥이 문제였다. 정해준 곳에서만 살면 되는데 쑥 어미의 종족 번식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 옆집 잔디밭까지 타고 넘어가 쑥대밭을 만들었다. 결국 큰돈을 들여 잔디를 갈아엎어 주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자식에게 좋은 채소를 먹이고 싶었던 어머니 마음은 ‘쓸데없는 짓?’으로 분류되어 말짓하다 걸린 아이처럼 아들 내외 눈치를 보며 원성을 들어야 했다. 제발 그냥 가만히 좀 계시라고. 없는 형편에 맘 고생했을 아들 내외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왠지 내 마음은 갈아엎어 놓은 잔디밭 같았을 어머니 마음으로 흘렀다. 얼마나 미안하고 가시방석 같으셨을까. 

 

늘 경계를 넘는 게 문제다. 선을 지키면 모두가 평화로운데 넘는 순간 모두가 불편해진다. 선을 넘는 게 어디 식물뿐이랴. 사람도 마찬가지다. 안분지족의 삶을 살면 좋은데 호시탐탐 남의 것을 노리고 욕심에 눈이 멀어 선을 넘는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라고 했다. 욕심을 잉태한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전쟁과 범죄가 그치지 않는다. 근간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 사고들을 보며 사람이 악하면 어디까지 악한지, 악의 근원은 어디며 그 끝은 어딘지 생각하게 된다. 극단적 인종주의자나 온전한 정신이 아닌 자들의 손에 총까지 있으니 시민들은 불안할 뿐이다.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총기 폭력 반대 시위를 하고 강력한 총기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기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라며 알렌몰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싹을 자르다.’라는 말이 있다. 자른다는 어감이 강하다 못해 섬뜩하다. 문제가 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한다는 의미이다. 더 큰 사고로 번지기 전에 잘라버리면 방지가 되는데, 자르지 않아 싹을 키우거나 자라도록 방치하거나 알면서도 머뭇거리거나 묵인하다가 결국 큰 사달이 나는 것이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워 문밖출입이 겁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아무쪼록 총기 규제 강화법만이라도 제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집 화단은 남편의 수고로 정리가 되었다. 얼거나 썩어서 죽은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고 새 정원수를 사다 심었다. 정체불명의 화초와 경계를 넘은 꽃도 뽑아 버렸다. 경사가 져서 한쪽으로 기우는 무궁화를 위해 흙을 몇 포 사다 돋우고 세워주었다. 제 자리를 찾은 화단이 편해 보인다. 극한 작업이었는지 남편의 팔과 다리에 상처투성이다. 전 같으면 사람을 시켜 했을 텐데 아직은 허리띠를 졸라맬 때인가보다. 길었던 역병의 터널을 벗어났으니 차차 나아질 것이다. 분꽃이 피기 시작했다. 처음 피는 꽃은 흠과 티가 없다. 색이 얼마나 고운지 화단이 환하다. 분꽃이 얼마나 많이 번졌는지 그 꽃만으로도 화단이 풍성할 것 같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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