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독립기념일‘호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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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우리 부부는 독립기념일이 다가오면 연례행사처럼 휴가를 떠나거나, 피난을 간다. 보통의 미국사람들처럼 연휴가 낀 홀리데이를 만끽하러 떠나는 것이면 더 좋겠지만, 우리는 불꽃놀이의 굉음을 피해 피신을 가는 것이다.
이사온 첫해에 난 우리가 사는 동네가 일반동네와 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내와 불과 15분 거리인데도 자기 집 마당에서 불꽃놀이를 해도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컨트리 지역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유난히 불꽃놀이를 좋아하는 미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대박인 동네인데, 하룻밤 꿈 같은 불꽃놀이에 별 흥미가 없는 우리에겐 불편하기만 한 프리덤이었다.
그래도 처음 몇 해는 별 생각없이 이웃들이 터트리는 불꽃놀이를 구경하며 지냈는데, 해가 거듭 될수록 규모가 커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가만 보니 집집마다 독립기념일이 가까워지면 시내에 사는 친척이나 친구들까지 폭죽을 잔뜩 사들고 와서 불꽃놀이의 판을 키우고, 파티를 하며, 요란스러워졌다.
사이즈가 큰 폭죽은 가격도 만만치 않다는데, 바로 옆집이나 뒷집에서 쏘아대는 폭죽소리를 한 두시간 듣고 있노라면, 어떤 때는 지붕이 곧 내려 앉을 것만 같고, 전쟁터 한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종종 들었다. 청각이 사람보다 예민한 토토는 말할 것도 없고, 나 역시 다음날이면 머리가 지끈 거리는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런 까닭에 매해 여름이 되기전부터 미리 탈출계획을 세우는데, 올해는 그만 깜박하고 있다가, 독립기념일을 맞게 되었다.
할수없이 우린 여러 궁리를 하다가 독립기념일 당일 하루만 호캉스 간셈 치고 다운 타운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호텔에서 수영이나 하며,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뷰가 좋은 방에서 멀리서 반짝거리는 불꽃놀이를 좀 보고 나면 독립기념일은 조용히 끝이 나 있을 터였다.
요즘은 비싼 비용들여 멀리 가지 않고, 근처 시설좋은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기는 것이 가성비 갑인 휴가 라고 에스 앤 에스에서 떠드는 것도 한 몫을 했다.
그리하여 7월4일 아침에 우리는 집에서 일찍 출발하여, 호텔과 가까운 곳에 있는 아트 뮤지엄을 들린후 좀 이른시간에 체크인을 하게 되었다.
달라스 상징이라고 할만한 타워가 있는 호텔 내부는 예상대로 근사했다. 방도 달라스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보여, 요즘 애들 말대로 뷰 맛집 같았다.
단층짜리 주택에서만 살다가 오랜만에 고층에서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보니, 고가 위를 달리는 차들은 장난감처럼 보였고, 나와 무관하게 바쁜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건축가 유현준의 말대로, 미국의 도시는 보행자보다는 자동차를 위하여 만든 도시임이 확실했다. 지나온 다운타운거리도 더위 탓인지 유달리 사람이 보이지 않고 한산했다. 우리는 일단 늦은 점심을 먼저 먹기로 하고 로비로 내려갔다. 그런데 레스토랑 두 군데는 다 문을 닫았고, 오후 5시반이 지나야 오픈을 한다는 사인이 붙어있었다.
편의점처럼 보이는 커피샵은 그야말로 편의점에서나 파는 찬 샌드위치와 음료, 스넥밖에 없었다. 아쉬운대로 크로상을 하나 사서 먹고 있자니, 여기가 우리가 생각한 그 호텔이 맞나 싶었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호텔이 자랑하는 야외 수영장이었는데, 사이즈가 얼마나 작은지, 애들이라면 모를까 어른들은 발 담그기도 미안할 크기였다. 게다가 옥상위라 그런지 그늘 한 곳이 없어, 아이들을 데리고 간 부모들도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지못해 앉아 있었다.
그외 시설이라고는 피트니스룸이 전부였다. 우린 호캉스의 꿈을 일찌감치 접고 주변에 있는 식당을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 한국식당이 한 곳 있었다.
배도 고픈데 잘됐다 싶어 부리나케 운전을 해서 갔다. 주로 외국인들 위주의 바비큐전문 식당이었는데, 음식값이 한인타운에 비해 아주 인상적이었다. 비빔밥 한 그릇이 27불이었다.
아무튼 올해 독립기념일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달라스가 자랑하는 그 멋진 마가렛 맥더못 다리(Margaret Mcdermott Bridge)를 두번이나 건너가고 건너왔으니, 무성영화를 보는 것처럼 오직 도시의 야경속에 피었다 사라지는 침묵의 불꽃만 바라볼 수 있었으니, 미국의 도시는 어디를 가든지 여전히 재미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시티에서 호캉스를 즐긴다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 말이다.
해가 뜨자 우리는 얼른 짐을 싸서 집을 향하여 개스를 힘껏 밟았다. 얼큰한 짬뽕라면이라도 끓여먹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동네에 들어오니 타버린 폭죽잔해를 치우는 이웃들의 손길들이 바쁘다. 라면을 끓이며 케이티 페리의 ‘Fire work’ 를 틀어놓고 흥얼거렸다. 중독성있는 멋진 가사가 진정한 불꽃놀이 같다는 생각이 한참 들었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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