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나도 한때는 당신의 여자친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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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석같은 남편이 장을 봐서 부엌 바닥에 내려놓고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장바구니를 풀어보니 작은 아이의 속옷과 내 속옷이 들어있었다. 이럴 수가. 빤쓰, 빤쓰였다.
나는 언제부터 빤쓰를 입는 여자가 되었단 말인가. 작은 꽃무늬로 시작해서 여러 가지 색이 한 팩 안에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모두 여덟 장이었다. 요일별로 색깔 맞춰 입는 여자는 아니었지만, 속옷만큼은 예쁜 걸로 입고 싶은 여자였다.
쇼핑가면 예쁜 속옷 가게는 꼭 들러야 했고 무엇보다 속옷 욕심은 많아서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떡해서든 가져야 했던 여자였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나는 쇼핑하는 걸 싫어하는 이상한 여자가 되고 말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 필요한 것만 집어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오는 여자가 되었다. 항상 피곤하게 살다 보니 쇼핑몰 안을 돌아다니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피하고 싶은 큰일이 된 것이다.
남들은 친구들하고 어울려 쇼핑도 많이 한다는데 나는 아이쇼핑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친구들과 쇼핑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나이를 더할수록 좋아하던 크리스마스 쇼핑도 미루고 미루다가 할 수 없이 막판에 달려가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점점 단순하게 살게 되었다. 속옷도 이 삼십 장씩 한꺼번에 구입해서 해를 넘기며 입게 되었다. 색을 맞춰 입는 게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가지 모양에 색깔은 두 가지로 통일했다.
아무 때나 아무것에나 표시 나지 않는 살색과 검은색이다. 위아래 속옷을 같은 모양에 같은 색으로 통일하니 맞춰 입느라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좋다. 하지만, 아직은 아줌마 속옷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꽃무늬 빤쓰라니.
나도 모르게 나오는 헛웃음을 삼키며 샤워장에 서서 비누칠하는데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육십 넘어 봐.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져.” 샤워장에서 나오니 빤쓰 한 장이 수건 옆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남편이 슬그머니 놓고 간 모양이다. 허리까지 올라가는 게 영락없이 아줌마다.
웃음이 나왔다. “나도 한때는 당신의 여자친구였어. 이거 왜 이래?” 허리까지 올라온 빤쓰를 입고 모델처럼 한 바퀴 돌면서 한마디 툭 던졌더니 남편도 멋쩍은지 고개를 돌리면서 한마디 한다. “잘 맞네. 응~ 아직도 예뻐.” “그래?” 하고 되묻기는 했지만, 쓸쓸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이상한 얼굴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는데, 이젠 꽃무늬 빤쓰가 어울린다니. 마음 한 모서리가 무너지는지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러잖아도 여기저기 인터넷 쇼핑몰을 들락거리며 속옷 쇼핑을 하다가 갑자기 엄마가 사다 주신 것들이 생각나 옷장 서랍을 열어 본 게 바로 엊그제였다.
아줌마 빤쓰가 서랍 안에 가득했다. 엄마가 한국 다녀올 때마다 한 꾸러미씩 사다 주신 것들이다. 택도 떼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어떤 것은 앞부분에 지퍼로 잠그는 주머니까지 달려있어 박물관 소장품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것을 사다 주셨을까. 참 많이도 사다 쟁여 놓았다. 내 생전 입고도 남을 것 같다.
모두 스무 해는 족히 묵은 것들이고 또, 엄마가 남기고 간 유품 같아서 도로 넣어두었는데, 이젠 꺼내 입을 때가 된 모양이다.
며칠 전에 건조기에서 옷을 꺼내 낡은 것들을 골라내며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남편이 들은 모양이다.
젊은 날에는 큰 소리로 여러 번씩 힘주어 말해도 반응이 없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귀가 더 밝아진 모양이다.
남편은 예전 같지 않게 내 작은 한숨에도 즉각 반응하고 복잡한 표정들도 잘 읽어낸다. 나이 먹으면 자식도 다 소용없고 내 편은 오직 남편뿐이라더니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이것저것 챙겨주느라 애쓰는 게 싫지 않고 날이 갈수록 익숙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부터 남편은 코스코 팬이 되었다. 유튜버들이 소개하는 음식들을 이것저것 사다 작은 아이랑 같이 조리해서 저녁상에 올려놓고는 어떠냐고 묻는 게 취미가 되었다. 그럴 땐 꼭 알뜰한 주부 같다.
워낙 마트 가는 걸 싫어하는 나를 대신해서 다니다 보니 평생 남편이 장을 봐서 먹고살았다.
생각해 보니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싫고 짜증 나고 귀찮기도 했을 텐데. 내가 주부냐고 투덜대며 따져 묻기라도 했었으련만, 그러지 않았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도 엄마는 나보다 남편과 함께 장을 보는 걸 좋아하셨다.
아이들도 엄마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남편한테 부탁했다. 예전에는 뭘 사야 하는지 물었는데 이젠 아예 묻지도 않는다. 어쩌다 외식하고 마트에 들리더라도 나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남편이 장을 본다.
그러다 보니 나는 평생을 사다 주는 것만 먹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속옷까지 사다 주는 걸 입어야 하다니. 서글퍼진다. 어떻게 하다 이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여느 아내처럼, 우리 엄마처럼 장을 봐서 냉장고 가득 반찬을 챙겨 넣으며 밥하고 빨래하며 집안일 잘하는 알뜰한 아내로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현모양처를 꿈꾼 적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펄펄 끓던 나의 여름은 지나갔다. 세 자리 숫자의 기온을 유지하며 영영 떠나지 않을 것 같던 달라스의 여름도 가고 있다. 무언가를 유지하려고 나 자신을 고문하는 짓은 더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은 날에 가을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떨어진 것과 떨군 것들에 대해. 어떤 슬픔은 보이고 싶어 사람들이 자는 시간에 빨강의 마음을 연두로 칠하는 수국도 있다는 것을. 시간이 되면 떨어질 줄 알면서 꽃은 오늘도 웃는다. 그러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채로 그냥 놓아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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