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매력적인 말솜씨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3-09-08 11:53

본문

나는 수영을 끝내면 늘 수영장에 붙어 있는 사우나를 찾았다. 사우나에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긴장되었던 근육이 풀리고 피곤도 풀리기 때문에 수영 후 꼭 들려야 하는 곳이다. 

어느 겨울 한 시간의 수영을 마치고 사우나에 갔더니 보통 때는 복잡하던 곳에 다행히 한 여자만 앉아 땀을 빼고 있었다. 

나도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땀을 빼고 있는데 갑자기 뿌웅 뿌웅 하며 큰 나팔 소리가 두 번이나 났다. 사우나에 앉았던 여자가 방귀를 크게 뀐 것이다. 

웃음을 참고 앉아 있으면서 이럴 땐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익스큐즈미? 쏘리? 아니면 모른 척할 건가? 그냥 나갈까? 라고 생각하며 궁금해하고 있는데 여자가 큰 소리로 “Shame on me (부끄러운 줄 알아라 나여).”라고 한다. 

자신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친 것이다.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신에게 꾸중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다니 “사과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의 노폐물이 쑥 빠진 기분이었다.

매력적인 말로 황당한 경우를 벗어나는 사람을 또 만난 적이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저녁 자리에서 남편이 소리 나는 방귀를 여러 번 뀌었다. 

사람들 앞에서 무척 부끄러워야 할 듯한 부인이 근심하듯 말한다. “당신 배가 많이 아파?” “창피하게 왜 그래?”라거나 “어휴 주책이야”라고 핀잔을 주는 게 아니라 걱정하듯이 하는 “배가 많이 아파?”라는 말이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고 말았다.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는 아내. 진짜 어디가 아픈가 하는 사람들의 동정. 다음부터 그 부부가 더 다정하게 보였다. 

주위를 보면 이렇게 말솜씨가 좋은 사람보다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자기는 솔직하게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조금만 같이 있으면서 들으면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모든 면에서 비판적이고 나쁜 것만 잘 찾아내어 들춘다. 나는 아부할 줄 모르기 때문에 솔직히 충고한다고 하면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톤을 내리고 곱게 이야기해주면 받을 수도 있는 말도 이 사람이 말을 하면 꼭 “너나 잘하세요”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저 사람 입을 닫고 있으면 예쁜데 입만 열면 사람이 달리 보이네”라는 말을 듣는다. 

이와 반대인 사람도 있다. 우리 동네 살던 ㅇ씨는 다른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아 맛있네요. 이거 사람의 솜씨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칭찬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음식을 장만한 사람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같이 먹는 사람도 덩달아 맛있게 먹게 된다. 잘 보면 먹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그분의 말씀이 그렇다. 

새 옷을 입고간 사람에게 “아 어쩌면 옷이 이렇게 잘 어울리지요? 모델이 너무 좋아서 옷이 덩달아 좋아 보이네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저 사람 하는 말을 들으면 거짓말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라고 말한다. 

식탁에서 저녁을 차리고 마누라가 묻는 말이 있다. “이 음식 괜찮아?” 옛날엔 “응 괜찮아.”라고 했는데 듣는 마누라는 항상 불만이다. 자기는 열심히 요리했는데 괜찮은 정도밖에 안 되느냐고. 괜찮냐고 물어 괜찮다고 대답했는데 뭐가 문제지? 하다가 ㅇ씨의 말솜씨를 흉내 내보기로 했다. “괜찮아?”하면 “응 괜찮은 정도가 아니야. 맛있어. 엄청 맛있네”라고. 요리한 사람의 수고가 덜어지는 순간이 된다. 

계속 그러니까 마누라가 말한다. “당신에게 맛없는 것이 있어? 있으면 말해봐.” 나의 대답 “응 당신이 한 것은 다 맛있어. 당신은 음식의 천재인 것 같아.” “당신은 먹는데 천재이고?”“우린 천재 부부인가?“ 남이 들으면 닭살 돋을 말을 식사하면서 한다. 

칭찬은 참으로 좋은 일인데 나는 왜 칭찬에 인색했던 것일까? 나의 칭찬이 아첨이나 사탕발림으로 오해받을까 봐? 쑥스러워서? 상대방에의 칭찬이 나를 낮춘다고 생각해서? 항상 상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여 잘못된 것을 지적부터 먼저 하는 덜 익은 선생 기질 때문인가? 아니면 남보다 뛰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그가 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생각될까 봐?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칭찬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칭찬을 포함한 매력적인 말솜씨의 근본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말솜씨가 별로인 나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모자라서 그런 것인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없는 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 좋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 요즘은 이런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또 부럽고 칭찬해주고 싶다. 

칭찬도 기술이라고 하는데 ㅇ씨 같이 칭찬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열심히 연습도 하여 칭찬의 천재라는 말을 들어보면 좋겠다.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지금쯤이면 거의 모든 분들이 세금 보고를 마쳤을 것이다.세금 보고를 마쳤다는 사실은 법적 시효(Statute of Limitation)를 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왜냐하면 미연방 국세청(IRS)이 세무 감사를 실시할 수 있는 법적 시효는 보통 세금 보고 일로부터 3년 …
    회계 2023-10-06 
    허리나 목 통증으로 클리닉을 찾아오시는 많은 분들이 자주하는 질문 중 하나는 본인의 증상이 요즘 흔히 말하는 “디스크”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요즘 너무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디스크”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척추뼈 사이에 있는 디스크(Inter vert…
    리빙 2023-10-06 
    나고야 고모는 아직까지 살아 계실까.... 얼마 전 난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일본에 계신 유일한 아버지의 혈육인 고모 생각이 문득 났다.아버지 형제 4남 1녀중 고모는 맨 막내였다. 해방 후 모든 형제들이 한국으로 나왔는데, 유일하게 고모만이 고모부와 일본에 남게…
    문학 2023-10-06 
    안녕하세요! 여름이 끝나고 살을 찌우는 계절 가을이 돌아 왔습니다. 오늘날엔 다양한 음식들을 집에서 배달 시켜먹을 수도 있는 시대이며 우리의 몸을 관리하기 위해 많은 정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건강을 돌아보자는 차원에서 다이어트에 좋은 음식들을 준비해 봤…
    문학 2023-10-06 
    늦은 밤, 오랜만에 창밖에 가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지나간 수많은 시간들의 추억을 되새기며 진한 커피 향에 가을의 음악들을 들으며 열은 창문 틈을 비집고 내게로 들려오는 가을비의 진한 소리는 내 가슴에 내린 한 자락 시름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어디선가 가을비처럼 눈물…
    문학 2023-09-29 
    길고도 지루했던 여름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느낌이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가을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계절로 접어 들었다.지난주 이곳 미국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감소하였다는 소식이다.미 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주간 신규…
    회계 2023-09-29 
    아는 언니가 오랜만에 가게에 들어섰다.남편과 같이 살 때는 토요일 오후에 들르곤 했는데, 딸네 가족과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예상치 못한 시간에 불쑥 찾아온다. 가게에 와도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라이드해준 분 사정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언니는 운전을 못 한다.근처에…
    문학 2023-09-29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무더웠던 9월의 마지막이 지나고 어느덧 10월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연말행사나 계획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려와서 2023년도 벌써 마지막을 향해 가는구나 하는 개인적으로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드는 요즘입니다. 아침, 저녁으…
    문학 2023-09-29 
    작년 3월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자 시장에서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오른 집값이 이제는 잡히리라는 예상이 나왔다.통상 대출 금리가 상승하면 이자 상환 부담이 늘어 주택 매수 수요가 얼어붙고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이다.실제 작년 한 해 미국 기준금리…
    부동산 2023-09-29 
    벌써 다음주면 추석이 다가옵니다. 그랜베리(Granbury) 호숫가에 비친 추석을 향한 거대한 달의 그림자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일들을 같이하며 동고동락하였던 고국의 향수를 살며시 물가에 뿌리며 벤치에 앉아 늘 작아 보이는 모두의 겸손함에 긴 한 숨을 쉬고 있습니다.…
    문학 2023-09-22 
    술은 때로는 우리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때에는 서로의 어색함을 해소시켜 주는 도구로 사용되어 지기도 한다.그러나 술이 정도를 지나쳤을 경우에는 자신의 건강을 손상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타인에게 까지 큰 피해를 주게 된다.우리나라의 경우 예전부터 술과…
    리빙 2023-09-22 
    많은 한국 분들은 아~ 옛날이여~를 부른 가수, 이선희 씨를 기억할 것이다.과거에도 노래를 잘했지만 지금도 가끔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나와 속 슬지 않은 노래 실력을 보여주곤 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 중 한 명이다. 이런 이선희 씨가 대한민국 검찰의 조사…
    회계 2023-09-22 
    목석같은 남편이 장을 봐서 부엌 바닥에 내려놓고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갔다.장바구니를 풀어보니 작은 아이의 속옷과 내 속옷이 들어있었다. 이럴 수가. 빤쓰, 빤쓰였다.나는 언제부터 빤쓰를 입는 여자가 되었단 말인가. 작은 꽃무늬로 시작해서 여러 가지 색이 한 팩 안에 …
    문학 2023-09-22 
    안녕하세요!오늘 소개드릴 음식은 ‘자색 고구마’ 입니다.‘자색 고구마’ 이름 그대로 보라색 고구마를 뜻합니다. 아시안 마켓에 가보면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입니다.우리가 마켓에서 접할 수 있는 고구마 종류는 대략 3~4 종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한가지가 자색…
    문학 2023-09-22 
    텍사스의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것도 엊그제, 몇 일 동안 많은 비를 뿌리고 나니 금새 텍사스의 날씨는 초가을은 완연한 날씨로 접어들어 싱그러운 9월의 마지막 향연이 촉촉한 대지를 금새 감싸고 있습니다.항상 여렸던 마음에 깊게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는 자꾸 떠나고 …
    문학 2023-09-15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