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가을로 가는 기차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3-11-03 11:42

본문

퀘백에서 두 칸짜리 기차를 타고 한 시간쯤 걸리는 베셍폴( Baie Saint Paul) 이라는 마을로 갔다. 예전에 증기기관차가 내는 뿌우웅 소리를 내며 달리는데, 기차 안 풍경은 한국과 좀 다르지만, 어린시절에 탔던 완행열차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학만 되면 오빠와 함께 순천에서 광주까지 기차를 타고 다녔는데, 국민학교 2학년때 처음 타본 기차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걷지 않고도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마주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 몇 시간이 걸리는 거리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인 채, 보채는 아이를 업고 기차를 타는 시골아낙들,  교복을 입고 좋아하는 여학생이 타는 칸으로 분주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장난끼 가득한 남학생들과  초여름의 청보리밭, 밀레의 만종 같은 가을 들판이 그곳에는 늘 있었다.

경부선 기차도 하동역을 지날 때면 ‘재첩국 사이소’란 외침이 새벽부터 들렸고, 진주역은 역사만 보아도 왜장의 목을 끌어안고 죽은 논개가 생각났다.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작은 역들을 수도 없이 지나면 부산이 나왔는데, 요즘이야 다들 자가용이 있어,  입맛 대로 여행을 할 수 있었지만, 80년대 까지는 기차가 아주 중요한 여행 수단이었던 것 같다. 

물론 고속버스도 있지만, 기차가 주는 낭만은 결코 따라갈 수가 없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엔 유독 열차와 관련된 대중가요나 ( 대전부르스, 남행열차, 춘천 가는 기차 등등)  영화, 시, 소설 등이 많은 편이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로 시작되는 곽재구의 <사평역에서>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이고,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장소도 역시 기차역이다. 

안나의 사랑은 기차역에서 시작되었고, 비극적인 결말도 또한 그곳에서 일어났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 문장은 또 어떠한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로  주인공이 기차안에서 본 휴양지 니가타현에 관한 첫인상인데, 소설의 줄거리가 당장 궁금해지게 만드는 희대의 명문장임에 틀림이 없다.

기차를 타며 나는 왼쪽 창가에 앉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오른쪽은 캐나다와 미국 국경사이를 흐르는 세인트 로렌스 강이 주로 보였지만, 반대편은 크고 작은 언덕위나 산 위에 , 작은 집 울타리에, 기차와 맞닿을 것 같은 암벽과 폭포 사이에 있는 붉은 단풍을 계속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여행사에서 주관하는 퀘백 단풍 여행은 도깨비 촬영지를 간다는 흥미가 더 해져 한인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난 퀘백주가 주는 쁘띠 프랑스적인 요소가 더 매력 있었다.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개척한 도시들은 확실히 그들 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퀘백과 몬트리올에 있는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성당들과 유럽의 성 같은 고풍스러운 건물들, 풍미가 느껴지는 음식, 불어만 고집만 하는 문화가 그것이다. 그러나 관광객 대부분이 미국이나 타국에서 왔는데, 뮤지엄이나 관광지 소개나 팻말이 불어로만 표시 되어있는 것은 좀 아쉬웠다. 

추상화를 감상하는데 제목을 알 수가 없고 화장실 역시 불어를 모르면 헷갈리기 십상이어서 어떤 여자분은 남성용화장실로 잘못 들어가기도 했다.

베셍폴은 퀘백주에서 예술인마을로 조성해 놓은 작은 동네이다. 커피를 파는 카페와 갤러리가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줄지어 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언니와 함께 커피를 마카롱과 곁들어 마셨는데, 마치 가을의 대학로 카페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올여름은 유난히도 무덥고 길어서 텍사스에서는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없었는데 이곳은 어딜 가나 가을이 물들어 있었다. 

메이플나무가 곳곳에 서 있던 와이너리와  날씨가 흐려서 단풍 비경을  놓치긴 했지만, 오랜만에 타본 몽트랑 블랑의 케이블카, 쁘띠 상플랑 거리에서 먹었던 치즈와 그래비소스가 잔뜩 뿌려진 푸틴이라는 캐나다식 프렌치 프라이, 성요셉 성당에서 바라본 몬트리올 시내 전경은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날엔 랍스터 디너가 나왔는데 무엇보다 식당 분위기가 좋았다. 전직 가수였다는 뉴저지에서 온 가이드가 섹소폰 주자의 연주에 맞추어 마이웨이를 불렀고, 흥이 난 나이 지긋한 연주자는 우리들이 신청한 곡을 모두 연주해 주었는데, 그 중에는 드라마 <도깨비> 주제곡도 있었다. 

코리언 손님들의 취향을 배려한 곡이어서 팁이 많이 나왔음은 물론이다. 사실 이번 여행은 단체 여행이어서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일정도 알차고 숙식도 좋았다. 무엇보다 랜덤으로 함께 가게 된 일행분들이 다 재밌고 좋으셔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이제 조금 있으면 가을 기차역에서 내려야 할 때가 온다. 부디 아프지 마시고 겨울로 건너가시기를 빈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지난번 칼럼에서 미국의 증여 및 상속세 면제금액이 현재의 일 인당 12.92 Million 달러에서 2026년 1월 1일부터는 6 Million 달러로 하향 조정된다는 기사를 읽고 많은 분들이 문의를 해주셨는데 주된 질문의 내용은 실제 2년 후에는 상속세 면제금액이 하…
    회계 2023-11-17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흐 흐흥 흐 흐흥~ 흐 흐응 흐 흐응~~. 멕시코 음악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역시 나는 딴따라 기질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넓은 호텔 바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조상 어디쯤엔가 멕시코 종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
    문학 2023-11-17 
    가을의 아름다운 선율이 세상을 변신시키는 11월 넷째 주, 가을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느낌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느낌’ 이라고 어떤 분이 표현했던 것처럼 가을에 듣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2악장을 들어보자.쇼팽의 음악처럼 수줍음과 쑥스러움이 이 곡에 표현…
    문학 2023-11-10 
    이곳 달라스/포트워스 기반으로 알링턴에 돔 야구장을 홈으로 삼고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가 창단 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맛보았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10월과 11월의 교차점에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월드시리즈(7전 4승제) 5차전에서 애…
    회계 2023-11-10 
    오랜만에 지인이 출연하는 방송을 듣기 위해 ‘라디오 코리아’ 앱을 열었다. 처음엔 열심히 찾아 들었는데, 매번 방송 시간에 맞춰 듣는 것도 일이다 보니 점점 일상 뒤로 묻혔다. 그가 전화하지 않았다면 방송 날짜를 옮긴 것도 몰랐을 것이다. 일을 줄이려고 애써 보았지만,…
    문학 2023-11-10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오늘은 요새 한국의 SNS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그야말로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탕후루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탕후루는 산사나무 열매(山査子)나 작은 과일 등을 꼬치에 꿴 뒤 설탕과 물엿을 입혀 만드는 중국 과자입니다.중국의 대표적인 …
    문학 2023-11-10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모든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자시점 판단이 중요하다.투자자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투자 시점과 어떤 자산에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한 자산의 매도는 언제 할 것이며, 또 다른 자산은 언제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투자자가…
    부동산 2023-11-10 
    버지니아의 수도 리치먼드의 사람들은 리치먼드가 날씨도 좋고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자랑한다.멀지 않은 곳에 산이 있고 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고 바다가 두 시간 거리에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느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습기가 …
    문학 2023-11-03 
    ACA Health Insurance(오바마 케어) 법안은 2010년 3월에 통과되었고 Affordable Care Act (ACA)라고 불린다. 이 법안은 2014년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되었으며, 전 국민의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의료보험 개혁이다. 그러나 2…
    리빙 2023-11-03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 그 하나요 또 다른 하나는 세금이라고 한다.일을 하고 돈을 벌면 누구나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사람이 죽으면 세금을 이미 낸 재산에 대해 또 다…
    회계 2023-11-03 
    ◈ 아기들에게도 척추교정이 필요 할 수 있다?영유아들에게도 카이로프렉틱 치료가 필요하고 그 필요에 따라 교정치료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놀라시는 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그분들은 하나같이 카이로프렉틱 치료는 어른들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아이들에게는 척추의 이…
    리빙 2023-11-03 
    퀘백에서 두 칸짜리 기차를 타고 한 시간쯤 걸리는 베셍폴( Baie Saint Paul) 이라는 마을로 갔다. 예전에 증기기관차가 내는 뿌우웅 소리를 내며 달리는데, 기차 안 풍경은 한국과 좀 다르지만, 어린시절에 탔던 완행열차 같은 기분이 들었다.방학만 되면 오빠와 …
    문학 2023-11-03 
    안녕하세요! 아침에는 약간 쌀쌀하지만 오후에는 시원하면서 상쾌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가을의 중심인11월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가을하면 빠질 수 없는 과일 ‘단감’입니다.가을 시즌에는 농장의 많은 과일과 채소들이 무르익는 계절이며 수확도 가장 많은 계절입니다. 요즘 어…
    문학 2023-11-03 
    지난 10월 15일로 세금연장보고 마감일도 막 지난 이 즈음에 IRS는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ERC(Employee Retention Credit) 관련해서 이전 신청자들에게 신청을 취소하는 프로그램을 전격적으로 발표하였다. 이는 신청자들중에 해당 지급 대상자…
    회계 2023-10-27 
    내일 아침에 히터를 점검하는 기사가 오기로 했다.영어로 대화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답답하다. 이놈의 영어 울렁증을 언제나 벗어날까. 요새는 달라스 지역에 한국 음식점이 다양하게 들어서고 한인 커뮤니티도 많이 생겨 생활이 편리해졌지만, 영어 쓸 일이 더 없어지니…
    문학 2023-10-27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