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다스림은 보살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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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튜브 뉴스로 서울에서 살고 있는 야생 동물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영상의 제목은 「서울이 야생동물의 낙원? 멸종위기종만 41종 확인」이었다. 제목만 보고는 야생 동물이 그곳에서 산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은 고층 아파트와 자동차로 가득한 도로가 촘촘히 들어차 밤늦도록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가까운 중랑구 용마산 바위 턱을 산양이 뛰어다니는 장면을 보게 되었을 때, 입이 떡 벌어졌다. 회색 털에 두 개의 뿔을 나란히 세운 산양은 취재팀을 잠시 바라보다가 가파른 바위 위를 익숙하게 내달려 멋지게 달아났다. 산양은 경복궁 근처 인왕산에서도 발견되었다. 산양만이 아니었다. 강남구 탄천에는 수달이 살고 있었다. 모두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이다.
서울까지 들어왔다면 전국적으로 많은 개체수가 있을 텐데, 자연훼손과 밀렵, 기후 위기에도 살아남아 번식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었다. 야생동물이 서울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의 생태계가 그만큼 건강해졌다는 지표라고 했다. 각종 개발과 도로 공사로 끊어져 버린 산림을 서로 이어주는 다리를 만든 것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았다. 한 유튜버는 경부선 철도와 지방도로 위를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는 추풍령 생태통로 위에 카메라를 두고 60일 동안 동물이 실제로 이용하는지 촬영했는데, 풀을 덮고 나뭇더미와 작은 물웅덩이 등으로 꾸민 다리 위를 고라니, 노루, 멧토끼, 멧돼지 등이 오가며 잘 이용하고 있었다. 천진한 눈으로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너구리는 통통하고 건강해 보였다. 그 통로가 없었다면 먹이를 찾아 위험한 도로를 건너다가 많은 생명이 사고를 당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성장하는 것뿐 아니라 공존하는 것도 고려하는 나라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
달라스 지역에도 많은 야생동물이 함께 살고 있다. 너구리, 스컹크, 아르마딜로, 주머니쥐, 비버 등은 골프장 주변에서 가끔 만날 수 있다. 보브캣은 주택가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며, 다람쥐와 토끼는 거의 반려동물인 양 앞마당에서 뛰어다니고 있다. 코요테, 회색여우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고 매우 드물게 퓨마도 발견된다고 한다. 달라스 지역의 동물 보호를 관장하는 DAS(Dallas Animal Services)는 “달라스시는 야생동물을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않으며, 이로 인한 피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공존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DAS는 공공 안전이 위태로운 상황에 대응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동물들은 우리 생태계의 중요한 존재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야생동물이 사람과 가까이 사는 것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야생동물은 인간을 매우 두려워한다. 인간은 지구 생태계를 변화시킬 만큼 강력한 최대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캐나다 웨스턴대학 연구팀의 실험 결과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한 물웅덩이로 다가오는 동물들에게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와 사람 말소리를 들려주고 이들이 반응하는 모습을 각각 카메라로 담았는데,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기린과 코끼리, 코뿔소, 하이에나 등이 사자의 소리에 움찔 놀라며 천천히 도망가거나 집단으로 방어하는 자세를 취했는데, 사람 말소리에는 그야말로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심지어 표범은 물고 가던 사냥감도 버려두고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촬영된 영상 1만 5천여 건을 분석한 결과, 사자 소리보다 사람 말소리에 사십 퍼센트 더 빨리 움직였고, 도망친 비율이 두 배였다고 한다. 위협하는 소리가 아닌 여성의 부드러운 소리에도 거구의 코끼리 떼가 급히 달아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실로 놀라웠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지구촌 동물들 사이에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널리 소문이 났나 보다. 하긴, 그들의 서식지를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필요에 따라 대량으로 살상하며, 가둬두고 사육하여 잡아먹으니 내가 생각해도 사람이 너무 무섭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기적인 방식은 이제 철퇴를 맞기 시작했다.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연을 훼손하고 화석에너지를 지나치게 사용하다 기후 위기를 맞게 되어 전 세계가 비상 상황이니 말이다.
이제 겨울 추위는 더 혹독해지고 여름은 더 뜨거워진다고 하니 걱정이다. 부디 서울에 들어온 산양을 비롯한 전 세계의 야생동물들이 잘 살아남기를, 달라스 인근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야생동물도 모두 꼭꼭 숨어, 요동치는 기후 위기에도 무사히 버텨주기를 기원해 본다.
끊어진 산과 들을 이어 만든 생태통로가 무관심으로 방치되었던 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 야생 동물을 보호하고 공존하는 것이 건강한 생태계를 위한 필수 조건임을 생각할 때 고무적인 일이다. 끝없는 탐욕으로 더욱 분절되어 버린 인간 세상에서 인권과 동물권을 함께 논하는 것이 자연 회복뿐만 아니라 인간 회복으로 가는 생태통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창세기 1장 28절 말씀대로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된 우리는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의미를 잘 새겨봐야 할 것 같다. 다스림은 착취나 파괴와는 거리가 멀다. ‘다스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보살피고 잘 이끌어 나가다.’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다양함을 보존하며 이 땅의 생물들과 함께 공존해 나가는 것이 다스림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신 일일 것이다.
백경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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