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하늘이 한국을 콕 찍어서 복을 베풀어주는 것만 같다. 메모리 반도체가 한국 역사에 유례없는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 AI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GPU라는 시스템 반도체와 HBM이라는 신기술의 메모리 반도체가 함께 필요하다. 잘 알려진 대로, GPU는 엔비디아가 선두주자이고, HBM 메모리는 삼성과 SK 하이닉스가 세계적으로 독점 공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 수요가 폭증하면서 이 두 회사도 폭발적인 이익을 얻고 있다. 예컨대 SK 하이닉스의 올해 1분기 영업 이익률이 72퍼센트이다. 매출이 52조 원인데, 그 중 37조가 이익이라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올해 후반으로 갈수록 분기별 이익이 더 늘어날 것으로 업계가 예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회사가 반도체로 벌어들이는 이익이 올해 약 300조 원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총생산이 한 해 2,600조 원 정도이고, 정부 예산이 700조 정도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회사가 반도체로 벌게 될 경제적 이익이 상상을 초월한다.
메모리 반도체의 핵심은 첨단 기술 개발보다는 생산의 효율에 있다. CPU나 GPU처럼 컴퓨터 속에서 연산을 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에 비하면 메모리 반도체는 구조와 구현이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그만큼 가격은 싸지만, 다양한 곳에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필수적이다. 물론 메모리 반도체도 설계에서 생산까지 전자 공학, 양자 역학, 화학, 재료 공학, 기계 공학 등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무 기업이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요즘 AI를 위한 HBM 기술은 더더욱 그렇다.
고성능 AI가 구현되려면 뇌에 해당하는 고성능 GPU도 필요하지만, 그에 걸맞은 메모리가 GPU 옆에 있어야 한다. 문제는 과거 방식의 DRAM 메모리 반도체로는 AI를 구현하기에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더 큰 메모리가 필요하다. 즉 전자 기판에 크기가 큰 메모리 칩을 부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 GPU와 메모리 반도체 칩의 거리가 멀어져서 데이터 교환이 느려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메모리 반도체를 높이 방향으로 쌓아 올린 것이 HBM 메모리 반도체다. 쇼핑몰 옆에 야외 주차공간만 있다면 고객이 몰릴 때는 멀리 주차하고 한참 걸어가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주차 빌딩을 쇼핑몰 바로 옆에 지으면 주차장과 쇼핑몰 사이를 빨리 이동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반도체 공장은 주로 2교대 또는 3교대로 24시간 돌아가고, 특히 공정에 책임을 진 엔지니어들은 퇴근 이후에도 생산 공정에 문제가 생기면 콜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일이 많다. 이렇게 24시간 운영하는 이유는 반도체 공장 건설과 운영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국가 시설에 준하는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기업 혼자서 계획을 추진하는 것도 벅차다. 국가가 함께 도와주어야 가능하다. 이렇게 어렵게 지은 반도체 공장에서 반도체를 만들어 수익을 내려면, 불량률을 최소화하며 꾸준하게 반도체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상대적으로 싼 가격으로 많이 팔아야 하기 때문에 공장을 쉬게 둘 수 없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반도체 산업의 이러한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정서와 노동 문화, 사회적 기준이 반도체 산업을 지탱해준 면이 없지 않다. 반도체 산업은 높은 수율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산업이다. 반도체 수율이란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에 설계된 최대 칩 개수 대비 실제 생산되어 정상 작동하는 칩의 개수를 백분율로 나타낸 것이다. 불량률의 반대라고 보면 된다. 1~2%의 수율 차이가 기업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국의 생산 제조업 문화에서 수율 향상 목표는 업계 종사자들을 하나로 묶어 협동하고 노력하게 하는 커다란 자극제가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와 노동 문화가 비슷한 일본이 과거 메모리 반도체 제조 세계 1위이었다는 점은 놀랍지 않다. 일본이 그 1위 자리를 한국에 내어준 것은 AI 수요가 폭발하는 지금, 일본에게는 뼈아픈 현실이고, 한국에게는 자랑스러운 결실이다. 일본은 여전히 반도체 제조를 위한 장비와 원료 공급에서 세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실제 제조는 예전만 못한데, 과거에 미국과 정치, 경제적 관계를 잘 풀어내지 못한 면도 있고,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내려가는 비수기에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은 이때에도 공격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꾸준히 진행하여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큰 경제적 이익이 특정 기업에 쏠리는 것이 걱정되기도 한다. 삼성과 SK 하이닉스가 단기간에 늘어난 이익을 놓고 노사간에 갈등이 있다는 소식은 다소 씁쓸함을 남긴다. 양쪽 모두의 입장과 기대에는 나름의 이유와 타당함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 공정의 특성상, 노동자들은 분명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일해 왔을 것이다.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요구할만하다. 동시에 회사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을 것이다. 지금의 AI 붐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고 거품이 끼었다는 시각도 있다. 생각보다 빨리 시장이 식어버릴 수도 있다. 회사는 이 기회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기술 개발과 투자를 해보고 싶을 것이다. 이러한 갈등조차도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한 단계 올라서는데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