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데스크칼럼
[기자의 눈] 또 터질 수 있다…비자 편법, 한국 기업의 시한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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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의 틈새와 한국 기업의 안일함…정쟁 아닌 제도 개선이 답이다
지난주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단속 사태는 우리 사회를 충격과 논란 속에 몰아넣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은 공장을 급습해 475명을 체포했고, 이 가운데 약 300여명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단일 현장에서 이뤄진 불법체류 단속으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최대 규모다. 단순한 법 집행 사건을 넘어,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방식과 한미 관계의 민낯을 동시에 드러낸 사건이다.
그런데 정작 사건의 본질을 짚어야 할 한국 언론은 방향을 잃은 듯하다. 일부 보수 성향 매체들과 극우 유튜브 방송은 이번 조지아 공장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사건을 곧바로 “이재명 정부의 외교 참사”로 몰아갔다. 구체적 사실관계와 맥락을 살펴보지 않은 채, 단순히 정부 책임론으로 귀결시키려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의 초강경 불법체류 단속 정책과 미국 내 이민법 집행 강화라는 구조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매체와 극우 성향 유튜브들은 사건의 복잡성을 무시한 채, 단순히 “외교 참사”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끼워 맞추려 했다. 이러한 보도 태도는 국민들에게 사실에 근거한 냉정한 분석을 제공하기보다, 정쟁을 위한 왜곡된 프레임을 강화하는 결과만 낳는다.
반대로 일부 진보 성향 매체들은 미국의 강압적 단속 방식만을 부각하며, 동맹국 국민을 수갑 채우고 심지어 발목에 쇠사슬을 채운 장면을 집중 보도했다. 물론 미국 이민 당국의 물리적 집행이 과도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고, 화가 난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트럼프 대통령의 강압성으로만 돌리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태도다. 이번 단속은 트럼프 행정부가 집권 후 일관되게 밀어붙여 온 불법체류자 추방 정책의 연장선이다. 농장과 식당을 넘어 글로벌 기업 현장으로 확대된 것일 뿐, 특정 국가를 겨냥한 보복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비자 관행’의 붕괴다. 기업과 근로자들이 단기 비자(B1, B2)나 전자여행허가제(ESTA)로 입국해 현장에서 일을 하는 관행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정식 주재원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편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이민법 위반이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괜찮다”는 안일함이 쌓여 수백 명의 체포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이번 단속은 바로 그 잘못된 관행에 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번 사태를 철저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인력 파견은 반드시 합법적 절차 안에서 이뤄져야 하며, 한국 정부 역시 정식 비자 발급 지원을 강화하고 제도적 병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제도 자체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이는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과 협상해야 할 과제다. 미국 내 생산시설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그에 맞는 인력 수급 체계 또한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 국제 질서에서 미국은 확실한 ‘갑’이고 한국은 ‘을’이다. 을의 위치에서 동맹국에게 “너무하다”고 항의만 해서는 달라질 게 없다.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고, 국익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외교의 현실이다.
한국 정치권 역시 이번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보수 언론이 외교 참사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진보 언론이 반미 감정을 자극하는 것도 모두 본질을 호도하는 행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진영 논리가 아니라, 재발을 막을 제도적 개선책이다.
이번 사태는 한미 동맹의 허점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국 기업의 투자를 반기면서도 불법체류 고용에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투자와 법 집행을 철저히 분리해 보여준 것이다. 이는 냉정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다. 한국이 항의만으로 이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명확하다. 불법 고용 관행을 근절하고, 정식 비자 발급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며, 필요하다면 제도 개선을 위한 외교적 협상에 나서야 한다.
힘든 길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결국 해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또한 기업들도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국익을 지킨다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합법적인 선택을 실천하는 과정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의 외교 협상에서 ‘취업 비자 확대’와 ‘합법적 파견 절차 간소화’를 정식 의제로 올려야 한다.동시에 기업들이 합법적 절차를 따를 수 있도록 전담 지원팀을 운영하고, 비자 발급 과정에서의 행정적 병목을 줄여야 한다.
기업들은 “다들 그렇게 한다”는 식의 편법 관행을 즉시 중단하고, 합법적 비자 취득과 현지 법규 준수를 경영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인력 파견은 단기 성과가 아닌 장기적 리스크 관리의 문제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정쟁의 소재로 삼지 말고, 국익 차원에서 제도 개선을 뒷받침해야 한다. 비자 제도 개선, 외국 인력 관리, 동맹국과의 협상 문제를 여야가 초당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긍정적인 소식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인 300여명 구금 사태를 계기로 미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출입국 및 비자 정책 개선에 나선 모습이다. 이번 조지아 공장 단속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에는 단속을 옹호하며 “그들은 불법체류자였고,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할 일을 했다”고 했지만, 곧 태도를 바꿨다. “우리는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면서 “합법적으로 인재를 신속히 데려올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이는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제도적 개선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 비자 확대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지고 있고, 언론과 여러 전문가들이 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조지아 공장 단속 사태는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던졌다. 미국은 동맹이라도 법 위반에는 예외를 두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은 중요한 동맹이지만, 불법을 감싸줄 면죄부는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더 이상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고, 정공법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익을 지키고,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 부디 이번 사태가 그동안 꽉 막혀 있던 한국 기업의 미국 비자 획득에 '전화위복'과 같은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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