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홍역·독감 확산에 백신 불신까지…” 위태로운 경계에 선 텍사스 공중보건
페이지 정보
본문
텍사스, 30년 만에 최악의 홍역 확산 … 독감 감염도 전국 평균 상회
백신회의론자 케네디 주니어, 연방 보건부 장관에 임명
텍사스가 30년 만에 최악의 홍역 확산과 높은 독감 확산으로 보건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서, 주민들의 불안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홍역은 공기 중에서 최대 2시간까지 생존할 수 있는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바이러스로, 면역이 없는 사람이 바이러스에 노출될 경우 90% 이상 감염될 위험이 있다. 또한 독감도 올해 텍사스를 포함 전국적으로 감염율이 높아 공중 보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백신 회의론자로 잘 알려진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가 연방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된 사실은 공중 보건 위기론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텍사스, 30년 만에 최악의 홍역 확산
서부 텍사스에서 발생한 홍역 감염 사례가 58건으로 증가하며, 이는 지난 30년간 텍사스에서 발생한 최악의 홍역 확산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텍사스 보건 당국은 지난 18일(화) 보도자료를 통해 감염된 환자들은 대부분 어린이와 청소년이며, 이들 중 상당수가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거나 접종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13명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텍사스주 보건서비스국(Texas Department of State Health Services) 대변인 라라 안톤(Lara Anton)은 이번 홍역 확산이 예방접종률이 낮은 밀접한 공동체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감염 사례는 게인스 카운티(Gaines County)의 한 멘노나이트(Mennonite) 공동체에서 주로 발생했으며, 해당 지역은 농촌 지역으로 소규모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거나 홈스쿨링을 하는 경우가 많아 정기적인 의료 관리를 받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설명이다.
안톤 대변인은 “교회의 교리가 백신 접종을 막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는 개인적인 선택이며, 접종 여부는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공동체에서는 의료 접근성이 낮고 백신 접종률도 낮은 편”이라고 부연했다.
전염력이 강한 홍역 감염은 뉴멕시코주와 접경한 서부 텍사스의 농촌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게인스 카운티에서 시작해 린(Lynn), 테리(Terry), 요컴(Yoakum) 카운티로 확산됐다. 또한 뉴멕시코주 리(Lea) 카운티에서도 1건의 홍역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뉴멕시코 보건국은 해당 환자가 백신을 맞지 않은 10대 청소년이며, 최근 텍사스 지역 감염자와의 접촉이나 해외 여행력이 없었다고 발표했다.
텍사스 보건 당국은 홍역 증상을 조기에 인지할 수 있도록 지역 보건소 및 학교 관계자들에게 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백신 접종을 장려하는 캠페인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보건 당국은 이번 홍역 확산이 1996년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홍역 예방을 위해 대부분의 유치원생들이 공립학교 입학 전 필수적으로 두 차례 예방접종을 받아야 하지만, 텍사스에서는 개인 신념이나 종교적 이유로 예방접종을 면제받을 수 있는 법적 조항이 존재한다.
주 보건당국에 따르면, 백신 면제 비율은 지난 10년 동안 0.76%(2014년)에서 2.32%(2023년)로 증가했다. 특히 게인스 카운티의 경우, 2023-24학년도 K-12 학령기 아동 중 약 14%가 최소 1회 이상 필수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상태로 보고되었으며, 홈스쿨링을 하는 아동까지 포함하면 이 비율은 더욱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건 전문가들은 이번 텍사스 홍역 확산은 잘못된 정보와 백신 면제 요건을 쉽게 만들도록 한 정책 선택으로 인해 백신 접종률이 하락한 직접적인 결과라고 꼬집었다.
현재 회기가 진행 중인 텍사스 주의회에는 백신 의무화를 완화하는 20개 이상의 법안을 발의됐으며, 백신 회의론자와 반백신 단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
보건 전문가들은 “주 지도자들이 집단 면역(herd immunity)을 무너뜨리고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정책을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CDC, 독감 입원율 및 사망율 코로나19 보다 높아 …
홍역뿐만 아니라 텍사스는 독감도 크게 확산 중이다. 텍사스를 포함한 미국 전역에서 독감 환자가 급증하며 15년 만에 최악의 독감 시즌을 맞고 있다.
텍사스주 보건부가 발표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2월 첫째 주 독감 검사 양성률은 37%로 전국 평균 31%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연방 및 주 보건 당국이 지난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텍사스 남동부 16개 카운티에서만 폐렴 및 독감 관련 사망자가 900명을 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 텍사스지역에서도 독감 확산이 심각하다.
칠드런스 헬스(Children’s Health) 센터에 따르면, 2월 첫째 주에만 달라스와 플래이노 지점에서 929건의 독감 사례가 접수됐다. 휴스턴 지역 폐수(하수) 검사 결과 올 겨울 독감 감염의 주요 원인은 A형 독감(Influenza A)이다.
CDC는 이번 독감 시즌을 2017-2018년 이후 처음으로 ‘고위험(severe)’ 등급으로 분류했으며, 독감으로 인한 입원율이 코로나19 입원율보다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률 또한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달 독감 사망률은 1.7%로, 2022년 이후 코로나19 사망률인 1.5%를 초과했다. CDC는 독감의 피크 시즌인 2월 동안 사망률이 2%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CDC는 이번 독감 시즌 동안 전국적으로 약 1만3,000명이 사망했으며, 이 중 57명이 어린이라고 밝혔다. 텍사스에서도 최소 5명의 어린이가 독감으로 사망했으며, 모두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 당국은 백신 접종과 함께 손 씻기, 마스크 착용 등의 예방 조치를 철저히 준수할 것을 권고하며,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 등 고위험군은 신속히 예방 접종을 받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
◈ 백신회의론자 케네디 주니어, 보건부 장관에 임명
한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 보건 기관의 인력을 대규모로 감축하고 있는 가운데, 백신 불신론자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가 연방 보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미국의 공중보건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U.S. 뉴스 &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는 19일(수), 서부 텍사스에서 홍역이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공중보건 기관의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해 우려를 낳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13일(목)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상원 인준을 통과하며 연방 보건부 장관직에 공식 취임했다.
그동안 케네디 주니어는 백신과 자폐증 간의 연관성 등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여러 차례 제기하며 백신 회의론을 주도해온 인물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케네디 장관이 더 이상 외부 활동가로서 주목을 받기 위해 도발적인 발언을 일삼는 것이 아니라, 공직자로서 국가 보건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때”라고 꼬집으며, 신뢰 회복을 위한 책임 있는 행보를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케네디 주니어의 취임과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는 보건 정책의 전반적인 축소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주말, 연방 보건복지부(HHS) 산하 식품의약국(FDA), 국립보건원(NIH),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에서 수습 기간 중이던 직원 수백 명에게 해고 통보가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CDC는 약 700명의 직원을 해고했으며, 이 중에는 질병 발병 원인을 조사하는 실험실 프로그램 소속 인력도 포함됐다.
다만, 지역 발병에 대응하는 ‘질병 탐정’으로 불리는 역학정보서비스(Epidemic Intelligence Service) 인력은 감축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 전문가들은 보건부 장관의 백신 회의론적 성향과 보건 기관 인력 감축이 맞물려, 미국의 공중보건 대응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 보건 관계자는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발병 사례를 조사하고 통제하는 인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과학적 근거를 무시하는 지도자가 정책을 주도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인력 감축이 정부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지만, 공중보건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인력까지 감축 대상에 포함된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은영 기자 ⓒKTN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