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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인생네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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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17회 작성일 26-01-03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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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시인 / 수필가
김미희 시인 / 수필가

 해마다 새해 첫날이 되면 우리는 습관처럼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특별한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달력이 한 장 넘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은 저절로 뒤를 향한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늘 분주했고, 그 분주함 속에서 수많은 장면들이 아무 말 없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분명 중요했던 순간들인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기억은 흐려지고, 감정은 모서리를 잃는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으면 기억조차 희미해질 것 같은 순간들이다.


  요즘은 사진을 인화해 앨범에 꽂아두는 일이 오히려 특별해졌다. 스마트폰 속에 수천 장의 사진이 저장되지만, 정작 꺼내어 다시 보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짧은 시간 안에 네 장의 사진을 찍어주는 ‘인생네컷’ 사진 부스였다. 커튼으로 가려진 작은 공간, 제한된 시간, 예고 없이 터지는 셔터. 웃음과 어색함, 실수와 즉흥이 뒤섞인 그 몇 초가 묘하게도 인생을 닮아 있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우리는 숙제를 하듯 일부러 인생네컷 부스를 찾아갔다. 온 가족이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뒤였다. 사실 그날의 외식에는 은근한 목적이 있었다.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들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번 찍어볼까?” 누군가 던진 그 한마디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세 대代가 함께 작은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부스는 비좁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우리 부부, 두 살 반을 넘긴 손주 리언과 그의 부모가 된 큰아이 부부, 그리고 리언이의 삼촌인 우리 막내까지. 서로에게 장난스러운 머리띠를 씌우고, 괴상한 안경을 건네고, 크리스마스 소품을 들려주느라 이미 안은 혼란스러웠다. 누군가는 허리를 굽혀야 했고, 누군가는 카메라 각도를 맞추느라 반쯤 화면 밖으로 밀려났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숨결을 의식하게 되었다.


  셔터는 예고 없이 터졌다. “하나, 둘, 셋”을 외칠 틈도 없었다. 움직임은 엇갈렸고, 포즈는 정해지지 않았으며, 웃음은 제각각 다른 방향을 향했다. 몇 컷은 그냥 허공으로 흘려보낸 듯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일상이 그렇듯 생각보다 훨씬 협동이 필요한 일이었다. 각자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타이밍을 맞추어야 비로소 한 장의 화면이 완성된다.


  그날 사진의 진짜 주인공은 단연 리언이었다. 카메라를 이해하지도, 포즈를 의식하지도 않는 아이는 그저 눈앞의 불빛과 어른들의 주문, 과장된 표정을 따라 웃고 찡그리고 다시 웃었다. 어른들이 애써 연출한 장면보다, 아이의 즉흥적인 표정 하나가 사진 전체를 살려냈다. 집으로 돌아와 인화된 사진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네 컷의 사진이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이 아닐까 하고.


  첫 번째 컷에는 희喜가 있었다. 부스에 들어가기 전의 들뜬 기대, 별것 아닌 일에도 웃음이 먼저 터지는 순간. 삶도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결과를 알지 못해도 괜찮았던 시간들,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했던 시절의 얼굴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두 번째 컷에는 노怒에 가까운 어수선함이 있었다. 서로 자리를 바꾸라며 말이 엇갈리고, “거기 말고 여기!”라는 소리가 겹치던 순간. 인생에서도 우리는 종종 이렇게 화를 낸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서로의 속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목소리만 높아질 때가 있다. 사실은 모두 잘해보려는 마음이었는데, 그 마음이 오히려 마찰을 만든다.


  세 번째 컷은 애哀였다. 표정은 웃고 있지만 어딘가 어긋난 시선들. 한 사람은 눈을 감고, 한 사람은 고개를 돌린 채 찍힌 사진. 그 장면은 삶에서 우리가 놓쳐온 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함께 있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던 날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멀어졌던 순간들. 사진 속의 미묘한 어긋남은,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의 흔적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컷.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화면 안에 들어와 있었고 리언은 두 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포즈를 고치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을 받아들였다. 이 컷이 바로 락樂이었을 것이다. 많은 시간을 지나서야 찾아오는, 애써 꾸미지 않아도 되는 웃음. 잘하려는 마음 대신,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해지는 평온한 기쁨.


  인생네컷에서 중요한 것은 네 컷 모두가 잘 나오는 일이 아니다. 어떤 컷은 흐리고, 어떤 컷은 어색해도 끝까지 부스 안에 머무르는 일이다. 셔터가 몇 번 헛되이 눌려도 다시 자리를 잡고 서는 인내다. 사진 부스에서는 네 컷이 몇 초 만에 완성되지만, 삶에서는 그 네 컷을 채우는 데 평생이 걸린다. 기쁨에 머물지 않고, 분노를 견디며, 슬픔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웃음을 다시 배우게 된다.


  2026년의 첫날, 나는 다시 마음속 카메라 앞에 선다. 아직 찍히지 않은 다음 장면을 위해. 흔들려도 좋고, 어색해도 괜찮은 나만의 인생네컷을 완성하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손주의 손에 이 사진을 쥐여주며 말하고 싶다. “이게 우리가 함께 찍은 인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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