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삼월과 메두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5-03-21 10:58

본문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삼월은 메두사의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신들의 질투를 받아 무서운 괴물이 되고 만 메두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온 만물을 소생케 하고, 생명의 푸른 빛으로 온 세상을 일 깨우지만,   한편으론 예상치 못한 March Madness로 농구 뿐 아니라 오는 봄을 주춤하게 만들며,  기침소리를 끊이지 않게 한다. 올 해는 특히 예상치 못한 기상 이변으로 온 미 대륙이 몸살을 앓았다. 드넓은 텍사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몇 주전에 있었던 토네이도로 지붕이 날아가 피해를 본 집들이 많다. 우리집 지붕도 역시 비켜 가지 못해서, 최근에 수리를 해야 했다.

지난 가을, 성지 순례 때 나는 메두사 얼굴을 한 조각을 처음 보았다.  그 조각은 술탄이 살았다는 화려한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 안   로마시대 지하 물저장고 안에 있었다. 은은한 불빛속에 신전 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지하 물 저장고는 이 천년 전에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규모가 크고 정교했다. 그런데 그 수로의 맨 마지막 지점에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커다란 사각의 대리석으로 만든   메두사상이 물 속에 거꾸로 잠겨 있었다.   수만의 뱀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머리카락과 대조적으로 그녀의 커다란 눈과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은 몹시 아름다웠다. 자세히 보니 곱슬곱슬한 머리칼마다 뱀의 혀가 날름거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온 메두사는 특히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아름다웠는데,   포세이돈의 연인이었던 관계로   아테네여신의 저주를 받아, 머리칼은 뱀으로 변했고,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사람은 모두 돌로 변하게 만드는 무서운 악녀가 된 것이다. 인간과 지상의 모든 사물이 지니고 있는 양면성을 보여준 적나라한 얼굴이었다.


예전에 살던 동네 입구에는 유난히도 브레드포드 배꽃 나무가 많았다. 삼월 중순이 되면 길 양쪽으로 하얀 배꽃이 한꺼번에 우르르 피어서 장관을 이루었다. 외출을 할 때마다 나는 이 배꽃 터널이 좀 더 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런 바램과 달리 배꽃은 일 주일을 가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져 버리고, 주변은 늘 지저분함으로 남았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온갖 것에 달라붙어 진창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봄철이면 하동 쌍계사 십리 벗길, 진해 군항제 등  벗꽃 관광이 유행이다. 하지만 축제가 끝나면 그 주변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휩쓸고 간 자리들을 치우느라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언젠가 동생은 그 벗꽃을 구경하러 갔다가 사람들에게 밟혀 죽을 뻔 했다 하였다. 또한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고, 겁 없는 바가지 요금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며, 다시는 벗꽃 예찬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삼월은 개화의 환희와 낙화의 무상함, 생성과 소멸을 동시에 보여준다.   어쨌든 이 삼월은 기나긴 겨울을 이겨내며, 땅속에서 봄을 맞을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세상일이 거저 되는 것이 없듯이, 삼월 역시 NO pain, No gain이라는 진리를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며 봄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천둥 치고, 폭우가 쏟아지고, 번개가 번쩍이는 날들을 겪어야 맑은 날이 오는 것이다. 또한 <데미안>의 명대사처럼 새로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알을 깨트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국민 위로송’ 인  3월에 딱 어울리는 노래,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시보다 더 시적이고,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가사가 참으로 매력적인 노래이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 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lt;순대와 생…
    문학 2025-03-28 
    삼월은 메두사의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신들의 질투를 받아 무서운 괴물이 되고 만 메두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온 만물을 소생케 하고, 생명의 푸른 빛으로 온 세상을 일 깨우지만, 한편으론 예상치 못한 March Madne…
    문학 2025-03-21 
    오전 다섯 시쯤 번쩍이는 섬광과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유리창을 요란하게 때리는 빗줄기 때문에 커튼을 젖히고 밖을 살피기도 무서웠다. 커튼을 살짝 들고 빼꼼히 내다본 풍경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작달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하늘은 천둥번개로 번쩍였다. 시멘트 바닥에 고…
    문학 2025-03-14 
    큰아이가 가족을 데리고 한국 처가에 다녀오는 동안, 기르던 애완견을 우리 집에 맡기고 갔다. 처음 제안이 나왔을 때 나는 선뜻 허락하지 못했다. 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개와 가까이할 자신도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애는 메이플을 맡아달라고 간절하게…
    문학 2025-03-07 
    미주경희사이버대학교동문회 임원방에서 우리도 유명 강사님들을 초청하여 줌강연회를 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동문은 물론이고,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도 들을 수 있도록 오픈 강의로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줌강연은 이미 여러 단체에서 하고 있지만, 동문의 화합과 결…
    문학 2025-02-28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lt;순대와 생…
    문학 2025-02-21 
    언젠가부터 나는 이 곳의 삶이 너무 쓸쓸하거나 백지영의 노래 ‘총맞은 것처럼’에 나오는 가사처럼 가슴이 뻥 뚫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을 때면 김치를 담는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웃들은 모두 미국인들이고, 보고싶은 아들들이나 친구들은 다들 너무 멀리에 있고, 그럴 …
    문학 2025-02-14 
    아버지 1주기가 다가온다.겨울도 봄도 아닌 2월, 때아닌 따스한 햇살이 우리 가족의 등을 토닥여주던 날, 가족묘 큰아버지 곁에 아버지를 모셔다드리고 돌아왔다.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삼 년간 거동이 불편했지만, 주간보호센터에도 다니며 그럭저럭 지내셨는데 목욕탕에서 넘어져…
    문학 2025-02-07 
    “이 사진이 좋아? 아니면 이게 나아?” 남편은 컴퓨터 화면을 넘기며 하나하나 사진을 클릭해 보여줍니다. 맘에 드는 걸 고르라며 자꾸 보채는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오래전부터 파더스 데이를 가족사진을 찍는 날로 정해두었던 남편이지만, 언제부턴가 그 약속이 흐지부지되었습…
    문학 2025-01-31 
    9년 전, 다운타운에 있는 책방 ‘Deep Vellum’에서 “Blind Date with a Book”이라는 팻말이 붙은 진열대를 처음 보았다. 그곳에 진열된 책들은 누런 소포지로 포장한데다 노끈으로 묶어 놓은 지라 무슨 책이 들었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해시태…
    문학 2025-01-24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lt;순대와 생…
    문학 2025-01-17 
    크리스마스 연휴부터 새해까지 작은아들이 있는 오스틴에 머물렀다. 가까운 거리이긴 하지만 자주가지는 못했는데, 아이가 일년 여에 걸쳐 지은 새집이 완성되었다 하여 겸사겸사 가게 되었다. 이제 서른 중반에 든 아이는 아직 결혼할 마음이 없어서 인지 집 디자인부터 가 딱 혼…
    문학 2025-01-10 
    친정에 다녀왔다. 아버지는 선물로 들고 간 간식들을 좋아하셨다. 그중 몇 가지는 방으로 가져가 숨겨두셨다. 치매 증세 중 하나인 줄 알았지만, 아버지 방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간식 봉지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언니가 먼저 사다 놓은 간식 옆에 내 선물이 나란히 놓였다.…
    문학 2025-01-03 
    “세월이 유수와 같다.”라는 말이 정말 실감 나게 한 해였다. 2024년도 일주일 정도 남았으니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된 것 같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발을 맞추다 보니 정신없이 살았다. 얼떨결에 맡아버린 민주평통 간사와 한인회 부회장 직함을 멍에처럼 지고 달려오느…
    문학 2024-12-27 
    모델들이 런웨이에서 워킹을 하다 구두가 벗겨지거나 굽이 부러져 넘어지는 사고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일반인이었다면 놀라서 주저앉겠지만, 프로는 대처법이 다르다. 평소 까치발을 들고 워킹 연습을 해 온 노하우 덕분일 수도 있겠으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자세를…
    문학 2024-12-20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