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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이인삼각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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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3-04-1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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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삼각 게임은 가을 운동회에서 빠지지 않는 종목이었다. 

아마 지금도 운동회가 있다면, 그렇지 않을까 싶다. 혼자서는 절대 참여할 수 없고 세 사람이라면 더더욱 안 되는 꼭 두 사람이 짝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짝이 된 두 사람은 한 팔은 서로를 안 듯 어깨동무하고 두 사람의 안쪽 다리를 묶은 상태로 달려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보폭 맞추는 일이 중요하므로 키가 비슷해야 유리하다. 마음 잘 맞는 단짝 친구라면 더 좋다. 

보폭을 맞추는 일도 중요하지만, 호흡을 맞추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둘 하나둘, 마음속으로 박자를 맞추면서 같은 생각으로 달려야 한다. 일등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중요하지만 넘어지지 않고 완주하겠다는 생각이 우선이다. 

머리에 같은 색의 띠를 두르고 안쪽 다리를 묶은 두 선수는 출발선에 나란히 선다. 서로에게 운명을 맡겨야 하는 순간이다. 준비, 땅!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터졌다. 같은 편 사람들의 응원 소리가 만국기 펄럭이는 운동장을 울리고 가을하늘을 적신다. 이겨라! 이겨라!

그렇게 출발한 선수들은 있는 힘껏 달린다. 모든 노력을 동원해 낙오되지 않으려 애쓴다. 

거기에는 응원해 주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줄 수 없다는 마음도 있다. 사실 방금 만난 짝이면 또 어떤가. 그럴수록 응원의 소리는 더 높아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순간인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은 게 당연하다. 한쪽 호흡이 짧아질 때가 있다. 보폭이 엇갈려 흐트러지는 순간이다. 그럴 땐 생각은 버리고 함께 소리 내 박자를 맞춰보는 것도 좋다. 

그러다 보면 무겁게 느껴졌던 서로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질 것이다. 하나둘 하나둘! 잡았던 손을 놓지 않고 서로를 의식하며 한눈팔지 않고 달린다면, 터닝 포인트를 지나서 박수갈채를 받으며 마지막 도착점에 이르게 된다. 

결혼이란 것이 이인삼각 게임이 아닌가 싶다.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 두 사람은 삶이라는 이인삼각 계주의 출발선에 나란히 서겠다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게임은 아니다. 

넘어지지 않고 다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잡은 손, 묶은 다리 절대 풀지 않고 완주하겠다는 두 사람만의 계주가 되는 것이다.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면 더 많은 용기를 갖게 될 것이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될 것이다. 보통의 혼인이라면 부모 형제 일가친척 동네 사람들 다 모아놓고 가을 운동회처럼 열린다. 

35년 전, 나의 결혼식이 그러했다. 결코 잡은 손 놓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의지하며 살아갈 인생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허설도 없이 무대에 올라서는 게 인생이지 않던가. 생각처럼 살아진다면 무슨 리허설이 필요하겠으며 또한, 무슨 재미가 있겠냐마는 어깨동무하고 안쪽 다리를 묶고 달리다 보니 어깨에 걸친 팔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웠고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보폭으로 발목은 시큰거리고 아팠다. 

거친 호흡으로 인해 응원의 소리는 귓가에만 맴돌고 눈앞에 장애물이 없어도 넘어지기 일쑤였다. 젖은 손은 더 이상 따뜻하지도 위로가 되지도 않아 놓고 싶을 때가 많았다. 

넘어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고부터는 묶은 끈을 느슨하게 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호흡과 보폭 맞추는 일로 목소리 높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계주를 끝낼 수는 없었다. 

우는 날이 많아졌지만, 가끔 소리 높이 노래도 불렀다. 

그렇게 포기하는 법을 배우면서 35년이 지났다. 여전히 응원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2인3각 경주는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많이 넘어졌고 또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털고 다시 일어났고 또 일어날 것이다. 어느새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 온 날들이 훨씬 많은 나이가 되었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날들이 많이 보인다. 지우개로 싹 지우고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부끄럽고 부족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늘 지나간 것들에 대한 후회와 미련은 있는 법. 그것 또한 살아 있는 자들이 가지는 특권이지 않을까. 돌아보며 부끄러워하는 마음 또한 아름답고 어여쁘지 않은가. 

 ‘모파상’의 단편소설 ‘첫눈’이 생각난다. 프랑스 남쪽 끝 바닷가 마을 크루아제트에서 요양하는 아내와 프랑스 북쪽 끝 바닷가 마을 노르망디에서 평생을 산 남편. 그들의 마음의 온도와 마음의 거리를 재어보며 소통 없는 결혼이 얼마나 춥고 아득한 것인지 새삼 생각해본다.

 

빗장을 걸어놓고도 

서성이는 이유에 대하여       / 김미희


그는 떠났는데

나의 길은 그가 돌아보리라는 생각에

지은 죄 없이도

짙은 화장으로 숨어 보는 일이었다


술술 빠져나가고 있는 내 혼의 무게만큼

그가 닿았던 안쪽이 헐어 내리며

선홍과 보랏빛 멍 빛으로 번갈아 피었다 지는

잠 속까지 뛰어든 그가

스러지지 않는 폭죽으로 나의 전부를 밝힌 채

잘잘 하게 분해된 불꽃들로 비웃음처럼 흔든다


홀홀한 가벼움으로

보이는 것들은 눈에만 꽉 차게 들어서고

환한 것들은 눈에만 박혀서

가라앉는 법을 모르고

오지게 잡아 야무지게 접어도

접히지 않는 귀퉁이 

오늘이 캄캄하고 추운 건

한꺼번에 터진 불꽃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기다림도 아니었다

그가 아는 나는 다만 죽은 것이었을 뿐이라고

그냥

오지 않을 그의 안부가 궁금해

아직 문틈을 비집어 나선 나의 길을 따라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다는 것은 

나의 몫일 뿐이라는 걸 말 하고 싶다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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