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 베이커 헬퍼 장씨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문학 댓글 0건 조회 5,331회 작성일 19-05-10 17:38

본문

오늘도 ‘도넛궁전’ 주방 안은 절절 끓는 기름과 후앙소리로 매캐한 냄새와 소음이 그득했다. 토요일 오전 5시이면 가게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두 번 째 반죽을 밀 시간이었다. 미세스 김은 아기엉덩이처럼 보드라운 반죽을 밀대로 밀며 아까부터 주차장쪽으로 촉각을 계속 곤두세우고 있었다. 헬퍼 장씨가 아직 안온 것이다. 보통 때 같으면 늦는다고 전화라도 한 통 주었을텐데 전화도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십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서 도넛가게를 운영하는 미세스 김은 주말 매상을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 주말엔 헬퍼가 필요했다. 그런데 최근에 오년이 넘게 헬퍼를 해주었던 멕시칸 호세가 그만 두는 바람에, 갑자기 오게 된 헬퍼가 장씨였다. 생각해보면 이 것 또한 트럼프 때문이었다. 아직 영주권이 나오지 않은 호세는 작년부터 부쩍 불체자 단속을 염려하더니 급기야 지난달부터 일을 그만 두어 버렸다.

이십대 인 호세에 비해 베이커 장씨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뭐든지 굼뜨고 실수가 잦았다. 얼핏 보기에도 그 나이에 베이커도 아닌 헬퍼 일을 전전 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어쨌든 아쉬운 쪽은 미세스 김이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장씨는 여러 가지가 특이했다. 화장실엘 한 번 들어가면 함흥차사이고 뜨거운 물을 만지지 못했다. 열불이 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처음 잡 인터뷰 하러 올 때부터 어딜 가든지 와이프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것도 알고 보니 본인이 운전을 못해서 그런 것이었다. 장씨는 일단 구르는 바퀴만 보면 멀미가 난다는 것이다. 내막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미국에서 다 큰 성인이 운전을 못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희귀한 일이었다. 게다가 눈치 빠른 헬퍼들 같으면 늦어도 2주면 파악할 부엌일들을 장씨는 아직도 헤매고 있었다. 한창 쵸코렛을 묻혀할 시간에 설거지를 하거나, 도넛을 튀기다 말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기 예사이고, 소세지반죽 레시피를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늘 정확하게 믹스를 하지 못했다. 멕시코에서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호세도 일주 일만에 다 파악한 일을 한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장씨는 노상 헤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허구 헌 날 자다가 샤워도 안하고 나오는지 부스스한 머리에 옷도 꼬질꼬질 한 것이 영락없는 백수 포스 였다.

그런 장씨가 잘 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뉴스에 나오는 각국의 정치에 관한 시사 분석 같은 것이었다. 장씨는 유학온 캐시어 미란이가 부엌으로 들어와 필링 도넛에 레몬이나 크림 등을 넣으면서 한국 뉴스를 한 마디만 꺼내기만 하면 그때부터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글레이즈 기계에서 글레이즈가 국수기계에서 국수 나오듯이 쏟아지고 있는데, 손을 빨릴 놀릴 궁리는 안 하고 자신이 마치 국회의원이나 되는 듯이 열을 내는 것이다.
한번은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미란이가
“어휴, 장씨 아저씨는 국회로 가실 분이 도넛가게로 오셨네요.” 하자, 장씨는 그렇지 않아도 친척 중에 국회의원이 한 명 있어 보좌관직 요청이 왔지만, 그쪽 세계를 잘 알기에 딱 잘라거절 했다고 한다. 또한 무슨 이야기 끝에 돈도 벌어볼 만큼 벌어봐서 자신의 마지막 남은 꿈은 오직 하나 있는 딸을 아이비리그에 입학시키는 것뿐이라고 했다. 장씨는 딸이 아이비리그에 입학 하는 날 자신도 딸을 따라 동부로 이주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 장씨는 일곱시가 다 되어 나타났다. 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경찰이 데려다 주었다는 것이다. 장씨는 갑작스런 사고로 놀랐는지 얼굴이 벌개져서 계속 와이프 운전솜씨를 탓했다.
“마누라가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가게에 늦겠다며 옐로우 라이트인데 좌회전을 하는 거에요. 죽을라고 환장을 했지....그 순간 신호가 바뀌면서 건너편에 있던 차량이 그냥 직진을 해서 우리 차 옆구리를 쳤어요! 틴에이져 둘이 타고 있었는데, 글쎄 이녀석들이 지네 부모한테 전화한다더니 그냥 사라져 버렸어요. 차량 번호도 기억 못하는데..... 아이구, 미국 와서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지......”
미세스 김은 장씨에게 내일은 일을 하지 말고 좀 쉬라고 일렀다.

다음날, 캐시어 미란은 소세지롤을 오븐에 넣다 말고, 놀라운 얘기를 했다.
“아줌마, 그거 알아요, 장씨 아저씨 독일의 유명한 대학에서 철학 박사 공부 하신 분이래요.  우리 학교 선배 하나가 알더라고요... 글쎄 지도교수를 잘못 만나 계속 학위를 못 받고 그냥 귀국해버렸나 봐요, 그러다 미국으로 왔대요. 본인도 그러잖아요, 당신아버지가 식사를 하다가도 장씨 아저씨 얼굴을 보면 숟가락을 밥상에 쾅하고 내려놓는다고요. 며칠 후, 장씨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인지 다리를 약간 절면서 나타나 당분간 쉬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게 구석에 있는 한국방송 티브이에선 장씨의 유학동기라는 유명한 시사 저널리스트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중장년 실업문제에 대해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문학에세이]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준비했어?” “응, 근데 너무 늦지 않았나?”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남편은 다짜고짜 묻습니다. 그리고는 샤워장으로 사라집니다. 며칠 전부터 약속을 정하고 몇 번이나 확인하던 터라 미리 준비하고 툴툴거리…
    문학 2019-12-20 
    “레이는 유명인인가봐. 여기 포케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이 레이를 아는것 같은데.” “알기는 뭘 알아요. 저 사람들은 나를 아는게 아니라 내 팔에 있는 이 타투를 알아보는거지요.” “레이, 타투 했어? 어디 좀 봐.” “이거 안보였어요?” “응, 작은 상어네. 무슨 …
    문학 2019-12-06 
    [지난주에 이어서] AP 수업과 관련된 지난 두번의 연재에 이어 오늘은 지난 칼럼에서 다 끝내지 못 한 AP 인문학 분야의 과목들에 대해 우선 정리하고, STEM에 해당되는 AP 과목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마찬가지로 난이도의 기준은 AP 수업들을 토대로 가장 …
    교육 2020-02-28 
    지난 칼럼에서는 AP 수업을 이수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와 혜택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또한 Art 분야에 해당되는 AP 과목들에 대한 소개도 했다. 오늘은 인문학 분야에 해당되는 AP 과목들을 지난 칼럼에서와 마찬가지의 기준을 갖고 소개하도록 하겠다. 난이도의 기준은 …
    교육 2020-02-14 
    최근 다음 학기 수강과목에 대한 많은 질문들이 있어서 오늘부터 두 세 차례에 걸쳐 AP 과목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우선 AP 수업을 이수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래와 같이 여섯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1) 고등학교 학업수준…
    교육 2020-01-31 
    새해가 되면서 12학년들의 대입 지원서 작업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12학년이 되어 에세이 작업을 시작하는데, 12학년이 되기 전에 학생들이 충분히 고민했으면 하는 3가지 핵심적인 목표가 있어 오늘은 이에 대해 조언을 하고자 한다. …
    교육 2020-01-17 
    지난 9월 켄터키 루이빌에서 열린 2019 NACAC(전국 대학입학 카운슬링 연합) 컨퍼런스에서는 올해도 전국 각지에서 대학입학 사정관들과 카운슬러들이 참가해 굵직 굵직한 주제들로 설전을 벌였고 정보도 교환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 몇 가지 화두…
    교육 2020-01-03 
    ‘어떤 특별활동이 좋은가?’라는 질문을 접할 때, ‘이 활동이 저 활동보다 대학진학에 유리합니다’라고 말하는 건 결코 현명한 답이 아니다. 좋은 특별활동이라 하면 다음과 같은 단계별 목표가 추가됨에 따라 ‘좋음’이 배가 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1단계 목표는 고…
    교육 2019-12-20 
    사립대 지원이 한 달 안으로 다가왔다. 주립대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립대에서는 추천서를 요구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어떤 선생님에게 추천서를 받는 것이 가장 좋을까? 최근에 배웠던 11-12학년 AP 또는 Honor 수준의 주요 과목(영어·수학·과학·역사·외국어)에서 ‘…
    교육 2019-12-06 
    요즘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감염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많은 분들이 감염확산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외부에서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이를 이겨내는 저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면역력이라고 부르는데, 젊고 건강한 사람일수록 면역력도 높…
    리빙 2020-02-28 
    오늘은 의외로 많은 분들이 가지고 계시고 발생 확률이 약 50%가 넘을 정도로 흔한 손목터널 증후군에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시간 컴퓨터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는 분들이나 손목에 반복적으로 힘을 가하거나 움직여야 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 중에 손목과 손가…
    리빙 2020-02-07 
    허리나 목 통증으로 클리닉을 찾아오시는 많은 분들이 자주하는 질문 중 하나는 본인의 증상이 요즘 흔히 말하는 ‘디스크’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요즘 너무 쉽게 들을 수 있는 ‘디스크’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척추뼈 사이에 있는 디스크(Inter Ve…
    리빙 2020-01-24 
    두번째, 인(Phosphorus: P) 인은 칼슘과 함께 골격을 구성하는 중요한 원소로 여러 효소의 성분으로 작용하는 무기질 입니다. 인은 다양한 식품에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섭취 부족을 염려할 필요는 없지만, 칼슘과 인의 흡수 및 이용을 고려할 때 칼슘과 인의 섭…
    리빙 2020-01-17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란? 미국 인구 중의 약 5,500만 명이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치료를 위해 매해 800억 달러 이상의 돈을 지출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많다고 합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란 대장의 기능성 장애로 만성…
    리빙 2020-01-10 
    많은 분들이 새해가 되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이나,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엄마들의 새해 목표 중 빠지지 않는 것 중 한 가지도 바로 체중 줄이기 혹은 근육 만들기 일텐데요, 다이어트만을 위해 하는 운동도 좋…
    리빙 2020-01-03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