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데스크칼럼
美 정치 양극화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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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양극화는 미국정치의 특징을 가장 쉽고도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이다. 미국에서 1970년대 의회에서 진행되어온 정치 양극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의 예상보다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
또 의회내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에게 국한되었던 양극화 현상이 엘리트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당원들과 일반 유권자들에게까지 그 영향이 확산되어 왔다. 국민들이 정부의 중요 정책과 사회적 이슈를 접할 때마다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 극단에 위치한 둘 중에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정치 양극화의 결과로 균형을 미덕으로 삼는 중도는 자연스럽게 존립 기반을 상실해 가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정치 양극화로 인하여 사회적 합의와 균형 있는 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점차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정당내 강성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해서 좋은 표현으로는 ‘선명’한 정책, 사실적인 표현으로는 균형과 중용을 배제하는 ‘극단’적 정책이 올바른 정책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미 정치 양극화는 그 정도가 완화되거나 중단될 기미가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심화되는 상황이다. 정치 양극화 시기에는 정치행위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양보는 더이상 미덕이 되지 못한다. 정치적 이념의 차이와 구별은 이미 반목과 증오로 변모되었고, 이로 인해 서로 타협과 합의를 모색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극단적 대립이 전개되어 왔다. 보수는 진보를 증오하거나 혐오하고 진보는 보수를 멸시하고 경멸한다.
정당 지지자들은 상대당 지지자들을 정치적 견해와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정도를 넘어서 사실상 혐오하고 저주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상대당 지지자들을 이성적 사고와 판단이 부족한 사람들로 폄훼하기도 한다. 더불어 일부이겠지만 보수와 진보, 민주당과 공화당 양 진영은 서로 상대방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국가 존립의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하나의 신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보수와 진보,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이념의 차이를 순수하게 인정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더이상 정상적인 소통방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었다. 극단적 대립에서 정치적 승리와 이익을 위해 필요하면 가짜뉴스를 양산하여 전파하고, 동시에 보다 자극적인 언어를 동원하여 상대방에 대한 거친 공격을 끊임없이 시도해야만 소기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그릇된 정치관만 자리하게 된 것이다.
현실 정치가 ‘극한 직업’이 된 지 이미 오래고, 정치관련 기사를 읽는 국민들 역시 정치적 피로감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필자가 미 정치 양극화의 폐해를 걱정하는 하나의 이유이다.
정치 양극화 시대에서 사실상 거의 모든 주요 정책과 정치적 결정에서 보수와 진보,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 진영간에 극한 대립과 반목은 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국방과 외교문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정책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이민 정책이나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는 경제 양극화 문제, 소수인종의 인권과 차별 문제, 심지어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공공장소나 다중이용시설에서 마스크 착용의 의무화에서도 그 인식과 행동의 차이를 보여왔다. 사실상 강성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공과나 선거불복 문제, 혹은 총기규제 문제를 서로 마주앉아 점잖은 방식으로 토론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정치 양극화가 심화된 현실에서는 상대방의 정체성에 대한 선입견도 합리적인 대화보다는 극단적 대립을 가져오게 된다. 정치 행위가 적대와 중오를 바탕으로 오로지 투쟁을 위한 투쟁으로 변질되어 왔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정치의 본질적인 내용과 방향은 당연히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형식이 본질을 압도하는 것이다. 사실 정치과정에서 갈등과 대립은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정치적 행위자 개개인이 각각 다른 이념, 경험, 그리고 선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정치적 결정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집단간 또는 개인간 갈등과 대립이 발생하게 되고 그 상황이 지속된다. 따라서 갈등과 대립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만 그것들을 최소화하고 양보와 타협을 모색하기 위해서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기 위한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정치 양극화가 심화된 현재에는 이러한 정치의 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국민을 위한 정책의 수립과 집행이라는 정치의 고유한 기능이 점차 퇴색해가고 있다. 필자는 정치 양극화의 심화가 필연적 정치 현상이기는 하지만, 정당과 정부의 근본적 기능을 저해하는 사회적 비극이 되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앞으로 30년 후의 정치는 현재의 양상과 확연히 다를 것이다.
정치 양극화의 폐해로 인해서 보수와 진보,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 어떤 수준의 대립과 투쟁이 진행될지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 양극화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단지 일시적 정치현상을 지나친 비관으로 바라보는 필자의 기우이길 바라본다.
최장섭 논설위원
Texas A&M University-Commerce
정치학과 교수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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