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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깊은 생각]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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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상 칼럼 / 짧은 글 깊은 생각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 하늘만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가슴 속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 장미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낼 모레면 6.25 전쟁 발발 69돐을 맞는다. 다시 한 번 그 날의 참극을 떠올리며 역사를 되돌아본다. 옛 자료를 뒤적이다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모윤숙의 시를 읽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시절에 자주 불렸던 ‘전우야 잘 자라’와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노래의 가사도 찾아 읽어본다. 당시 열 살 미만이었던 필자였지만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중 극작가였던 유호가 작사한 ‘전우야 잘자라’의 군가는 그 후렴들이 백미(白眉)였다.
1절의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 2절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 3절의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 특히 4절의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같은 가사는 언제 들어도 뛰어난 표현들이고, 마치 그 시절 그 전우들이 우리 옆에 앉아서 막 화랑 담배 한대씩을 꼬나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그렇게 비극이 벌어지고 그리고 휴전이 된 지도 벌써 66년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많은 위협과 도발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생존했고, 자유민주주의와 놀라운 경제발전도 이룩했다. 토인비의 말처럼 우리 대한민국은 ‘역경이 새로운 문명을 탄생’ 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전쟁 이후 70여 년 동안 단군 이래 최대의 발전적 에너지를 분출하면서 외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무장평화’를 지켜왔다. 그리고 그것은 그 후세대들이 피로 지켜온 굳건한 국가 안보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실을 돌아본다. 현재 155마일의 휴전선이 그어진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대한민국은 겉보기로는 얼마나 평화로운가. 더구나 문(文)정부 들어 그나마 방어 장벽마저도 황당하게 일방적으로 다 허물어버려서 더 그러할까? 하지만 그 표피적 평화 뒤에 자리한 암울한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안정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자신 있게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1953년 휴전 후에도 그동안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왔다. 특히 북한은 핵 위협으로 ‘돈 안주고 말 안 들으면 남쪽을 초토화 시키겠다’는 공갈과 협박을 상습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그 상습화된 협박에 어쩐지 불감증이 되어 도무지 위기의식이 없다. 오히려 ‘돈 좀 질러줘서 달래는 게 옳다’고 어이없는 발상을 하곤 한다. 더구나 소위 ‘촛불 혁명’이란 미명 아래 ‘민주화’와 ‘인권’을 멋대로 가위질 하는 좌경 세력들, 그들은 정계뿐 아니라 사회의 여러 분야 파고들어 대한민국을 위협하며 건전한 국민들에게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제 그들은 적반하장, 북측에 대응하는 자유민주의 세력들을 향해 ‘평화를 해치는 호전주의자’로 몰아붙이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곤 한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이 어째 ‘호전주의자’들인가? 언필칭 ‘호국의 달’에 그런 말을 들으니 울분이 타오르고, 이 뜨거운 6월 동작동 국립묘지에 모셔진 17만9000위의 호국 영령에게 그저 죄송하다는 생각뿐이다.
언젠가, 정원디자이너 황지해(35) 작가의 ‘비무장지대(DMZ), 금지된 화원’이 영국의 첼시 플라워 쇼에서 금상을 받고, 이 전시회를 본 백발의 외국인 참전 용사들이 전쟁터를 다시 찾아와 산화한 옛 전우를 기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우리 땅에서 전사한 외국인 장병의 가족과 후손들이 부산의 유엔군 묘지를 찾아와 오열하며 고인을 추도했다는 얘기였다. 하물며 백발의 80대 외국인들도 그러하건대, 우리에겐 이미 6.25는 잊혀져가고 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이 참극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이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가...모두 곰곰이 생각을 모아볼 때다.
하지만 더 무엇을 말할 것인가…민주화와 경제자유화 및 인권의 신장을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나라지킴’에 구멍이 생기면 우리의 성취와 안녕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는 ‘만고의 진리’다. 자유민주주의란 우리 공동체의 건국이념이며,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이며 나침반인 것은 결코 변할 수가 없다. 차제에 6·25 전쟁 예순아홉 돐을 맞아 국내외 우리 동포 모두가 ‘나라지킴이’ 되기에 더욱 마음 단단히 다지기를 새삼 바라마지 않는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 하늘만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가슴 속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 장미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낼 모레면 6.25 전쟁 발발 69돐을 맞는다. 다시 한 번 그 날의 참극을 떠올리며 역사를 되돌아본다. 옛 자료를 뒤적이다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모윤숙의 시를 읽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시절에 자주 불렸던 ‘전우야 잘 자라’와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노래의 가사도 찾아 읽어본다. 당시 열 살 미만이었던 필자였지만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중 극작가였던 유호가 작사한 ‘전우야 잘자라’의 군가는 그 후렴들이 백미(白眉)였다.
1절의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 2절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 3절의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 특히 4절의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같은 가사는 언제 들어도 뛰어난 표현들이고, 마치 그 시절 그 전우들이 우리 옆에 앉아서 막 화랑 담배 한대씩을 꼬나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그렇게 비극이 벌어지고 그리고 휴전이 된 지도 벌써 66년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많은 위협과 도발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생존했고, 자유민주주의와 놀라운 경제발전도 이룩했다. 토인비의 말처럼 우리 대한민국은 ‘역경이 새로운 문명을 탄생’ 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전쟁 이후 70여 년 동안 단군 이래 최대의 발전적 에너지를 분출하면서 외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무장평화’를 지켜왔다. 그리고 그것은 그 후세대들이 피로 지켜온 굳건한 국가 안보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실을 돌아본다. 현재 155마일의 휴전선이 그어진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대한민국은 겉보기로는 얼마나 평화로운가. 더구나 문(文)정부 들어 그나마 방어 장벽마저도 황당하게 일방적으로 다 허물어버려서 더 그러할까? 하지만 그 표피적 평화 뒤에 자리한 암울한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안정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자신 있게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1953년 휴전 후에도 그동안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왔다. 특히 북한은 핵 위협으로 ‘돈 안주고 말 안 들으면 남쪽을 초토화 시키겠다’는 공갈과 협박을 상습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그 상습화된 협박에 어쩐지 불감증이 되어 도무지 위기의식이 없다. 오히려 ‘돈 좀 질러줘서 달래는 게 옳다’고 어이없는 발상을 하곤 한다. 더구나 소위 ‘촛불 혁명’이란 미명 아래 ‘민주화’와 ‘인권’을 멋대로 가위질 하는 좌경 세력들, 그들은 정계뿐 아니라 사회의 여러 분야 파고들어 대한민국을 위협하며 건전한 국민들에게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제 그들은 적반하장, 북측에 대응하는 자유민주의 세력들을 향해 ‘평화를 해치는 호전주의자’로 몰아붙이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곤 한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이 어째 ‘호전주의자’들인가? 언필칭 ‘호국의 달’에 그런 말을 들으니 울분이 타오르고, 이 뜨거운 6월 동작동 국립묘지에 모셔진 17만9000위의 호국 영령에게 그저 죄송하다는 생각뿐이다.
언젠가, 정원디자이너 황지해(35) 작가의 ‘비무장지대(DMZ), 금지된 화원’이 영국의 첼시 플라워 쇼에서 금상을 받고, 이 전시회를 본 백발의 외국인 참전 용사들이 전쟁터를 다시 찾아와 산화한 옛 전우를 기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우리 땅에서 전사한 외국인 장병의 가족과 후손들이 부산의 유엔군 묘지를 찾아와 오열하며 고인을 추도했다는 얘기였다. 하물며 백발의 80대 외국인들도 그러하건대, 우리에겐 이미 6.25는 잊혀져가고 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이 참극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이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가...모두 곰곰이 생각을 모아볼 때다.
하지만 더 무엇을 말할 것인가…민주화와 경제자유화 및 인권의 신장을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나라지킴’에 구멍이 생기면 우리의 성취와 안녕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는 ‘만고의 진리’다. 자유민주주의란 우리 공동체의 건국이념이며,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이며 나침반인 것은 결코 변할 수가 없다. 차제에 6·25 전쟁 예순아홉 돐을 맞아 국내외 우리 동포 모두가 ‘나라지킴이’ 되기에 더욱 마음 단단히 다지기를 새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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