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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장벽에 한인 사회 경제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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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폭풍, 한인 경제를 흔든다
지난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을 선언하며 미국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선포했다.
그의 2기 행정부는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 중심의 통상 정책을 본격화하며 전 세계 무역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수입품에 대해 기본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국가별 무역 불균형에 따라 최대 50%까지의 차등 관세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상호주의 관세 구조’를 도입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 조치가 “미국 제조업의 부활과 고용 창출,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한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강조하며, 오는 7월 9일까지 주요 교역국들과의 개별 협상 마감일을 설정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자국 우선’ 정책은 국경 안의 이민자 커뮤니티, 특히 한인 자영업자들에게는 생존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자유무역의 그늘 아래 기반을 다져온 소상공인들은 갑작스런 무역 장벽 앞에서 가격, 수급, 소비 심리의 삼중고를 겪고 있다.
▶식당·소매업계, “원가는 올랐는데, 가격은 못 올려요”
달라스 캐롤튼 H마트 인근에서 10년 넘게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 씨는 최근 식자재 청구서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고춧가루, 된장, 간장, 김치까지 거의 모든 주요 품목의 단가가 올랐어요. 그런데 손님 수는 줄고, 가격을 인상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해방의 날’ 선포에 대해 “무엇으로부터 해방된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반문했다. “관세뿐 아니라 통관도 까다로워졌고, 시간까지 오래 걸린다. 운영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음식값은 올릴 수가 없다. 손님이 줄었기 때문이다.”라고 토로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단속 강화와 반(反)이민 기조는 고객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법체류자와 저소득 이민자들의 소비 위축이 이어지면서 외식업 전반이 얼어붙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식당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점심특선’ 등 가격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며 매출을 방어하고 있다.
▶세탁업계, “팬데믹 때보다 더 힘든 지금”
플래이노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문 모 씨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힘들었지만, 지금이 더 막막하다”고 말한다.
“세제, 포장재, 비닐류 같은 부자재가 거의 2배 가까이 인상됐다. 그런데 고객이 가격을 올린 걸 예민하게 느끼는 상황이라 인상은 커녕 기존 가격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다.”라고 전했다.
그는 매출 감소에 더해 고정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마진은 이미 마이너스에 가깝고, 종업원 유지도 힘들어진다”며 세탁업계 전반의 위기를 전했다.
▶뷰티서플라이 업계,“40년 이민 인생 중 가장 위기”
사우스 달라스에서 뷰티서플라이 매장을 운영 중인 고근백 전 달라스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몇 달 사이 가발, 헤어 제품, 액세서리 등 주요 상품의 가격이 급격히 오르면서 한숨만 깊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보통 수입관세가 10%였는데, 지금은 30%를 납부하고 있다. 한 품목당 관세 차이는 20센트 남짓이지만, 우리는 그런 제품을 1만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전체로 보면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고 전 회장은 단순한 관세 문제를 넘어서, 매출 감소, 인건비 상승, 임대료 인상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업계가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편 일부 도매업체는 급감한 판매량으로 인해 인상했던 가격을 소급 환급해 주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통관업계, “규제 강화, 문서작업 2배… 비용은 치솟고 책임은 모호”
달라스에서 중견 규모의 통관대행업체를 운영하는 이 모 대표는 최근 몇 주간 서류 처리량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관세율이 급변하고, 품목별 분류와 세율 적용도 까다로워지면서 통관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업체마다 민감한 품목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 대응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최근 통관 비용과 인건비까지 함께 오르며, “우리도 어려운데, 이 비용을 업체에 전가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도 심화되고 있다며, “EU, 캐나다, 일본 등 주요국이 보복관세를 준비 중이라 글로벌 무역 환경이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해방,“누구를 위한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미국인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조치”라며 이번 관세 정책을 강력하게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속 이민자 경제의 현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한인 사회는 자유무역의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식품·서비스·소매·미용·제조 등 다양한 업종을 일궈왔다. 이들은 관세 인상이 단지 ‘가격 문제’가 아니라, 사업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생존의 문제라고 말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은 이제 단순한 무역 논쟁을 넘어, 지역 이민자 공동체의 생계와 존엄, 나아가 ‘아메리칸 드림’의 지속 가능성까지 흔드는 구조적 변화로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의 관세 협상 결과와 국제 통상 질서 재편의 방향에 따라, 미국 내 이민자 경제 생태계의 운명은 더욱 불확실한 안갯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단순한 가격 저항이나 생존 전략이 아니라, 정책 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커뮤니티 연대와 대응력일 것이다.
▶이민자 경제의 생존 전략 …“함께 버텨야 산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기조가 본격화되면서, 한인 커뮤니티를 비롯한 이민자 경제는 사실상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관세 인상으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분야는 원자재와 수입 상품의 단가 급등이다. 이에 따라 협동조합 방식의 공동 구매 플랫폼 구축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인 경영인 송 모씨는 “식자재 수입업체와 뷰티서플라이 유통망 등은 기존의 경쟁적 유통 구조를 넘어서, 협력 중심의 네트워크로의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 공동 물량 계약을 통해 단가를 낮추고, 운송·통관 비용을 분담하는 구조를 장기적으로 정착시킨다면, 관세 리스크를 상쇄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 라고 밝혔다.
그는 “불황 속에서도 살아남는 업체들의 공통된 특징은 디지털 전환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디지털 마케팅, 온라인 주문 시스템, 자동화된 고객 관리 솔루션 등은 비용 절감과 고객 유지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다.” 라고 덧붙였다. 한편 장기적인 생존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정책 대응을 위한 조직화와 연대가 절실하다.
이미 LA, 뉴욕, 시카고 등 주요 도시에서는 한인상공회의소와 민권센터 등을 중심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이민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다. 자영업을 운영하는 달라스 거주 한 한인은 “한인단체들이 변호사, 통관 전문가, 세무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협력해 ‘관세 대응 센터’ 또는 ‘이민경제 위기 대응 TF’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본지는 달라스한인상공회의소에 관련 대응 계획에 대해 문의했으나, “고민해 보겠다”는 원론적 답변 외에 추가적인 내용은 아직 전해지지 않았다.
보호무역의 파고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고립된 절망보다는 서로를 잇는 연대, 개별 생존보다는 공동체의 회복력, 위축된 대응보다는 전략적 조직화가 이 위기를 돌파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해방인가?”라는 물음에서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다. 한인 커뮤니티는 스스로를 위한 해방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함께 버티고 함께 전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유광진 기자 ⓒ K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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