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추억은 그루브를 타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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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전축을 열고 비틀즈 판을 올렸다. 야전이라고 불리던 야외용 미니 전축인데, 바늘이 LP판을 긁으며 흘러나오는 소리가 정겹다. 요즘 음원의 깔끔한 소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약간의 잡음, 떨림, 그리고 의도치 않은 미세한 숨소리 같은 울림이 주는 편안함이 좋아서 이따금 듣곤 한다. 추억의 노래는 또 다른 추억을 불러온다. 삶의 궤적은 언젠가 이야기가 되어 풀려나오는 모양이다.
늦가을 오후, 안국동 거리는 한산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더니 바람이 차가워졌다. 체감온도는 예보보다 낮게 느껴졌다. 아픈 허리가 먼저 반응했다. 언제 비가 다녀가셨는지 도로 한쪽 고인 물 위로 낙엽이 떠 있었다. 서로 부딪히며 둥글게 맴도는 모습이 마치 시간 속에 갇힌 추억 같아 눈길이 머물렀다.
지인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 내게 장소 선택권을 주었다. 두 번도 생각지 않고 안국동을 골랐다. 서울길이 낯설어 보통 호텔 근처에서 만나곤 했는데, 그 카페는 꼭 다시 가보고 싶었다. 매일 다니는 동네 길도 ‘공사 중’ 표지판이 붙어있으면 어디로 우회할지 몰라 헤매는 길치가 무슨 배짱으로 바운드리를 벗어났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앞서면 종종 아픈 사람이라는 걸 잊는다. 전철역 옆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갔는데, 아니었다. 네이버 지도 앱 없었다면 헤맬 뻔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 조명이 켜 있는데도 어둡게 느껴졌다. ‘암순응’이라고 했던가. 환한 곳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형태가 드러나는 눈의 반응 말이다. 그 시간을 참아내는 게 아직도 익숙지 않아서 안달을 떤다. 차츰 사물이 드러나고, 음악이 들려왔다
그곳은 온 벽이 전축판으로 빼곡한 술집 겸 카페다. 전에 갔을 때 전축판에 홀렸는지 자꾸 생각이 났다. 이번엔 가까이 가서 보았다. 세워진 재킷의 등을 손으로 훑으며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눈에 익은 판이 제법 보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빛 바랜 재킷을 들여다보는 순간, 오래전 내가 일했던 공간이 떠올랐다.
1983년, 종로 3가에 오비광장이라는 음악감상실 겸 호프집이 있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곳이어서 손님이 많았다. 나는 그곳에서 DJ로 일했다. 손님이 많은 저녁시간엔 주로 고참들이 음악을 틀었고, 학생은 6시 전에 일했다. 투명한 유리 박스 안에서 손님들이 신청한 곡을 틀어주고 그들의 사연을 읽어주는 일이 즐거웠다. 사랑, 고백, 청혼, 생일, 이별의 아픔을 함께하며 음악으로 축하하고 위로할 수 있어 감사했다.
바늘이 그루브를 타고 돌 때마다, 누군가의 마음이 얹혔다. 그래서 어떤 음악은 전축판에 패인 골처럼 마음판에 새겨졌을 것이다. DJ가 일하는 유리 박스 안은 좁았지만, 그 공간에서 만들어 내는 에너지와 파장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강하고 길었다. DJ는 단순히 음악을 트는 사람이 아니라, 기억을 재생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손님이 있다. 매주 장애가 있는 아내를 안고 와 임수정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신청하던 남자가 있었다. 맥주와 돈가스를 나누며 서로를 챙기던 그 부부를 보며 결혼을 꿈꾸곤 했다. 이따금 들러 응원해 주셨던 교수님, 명함을 건네며 찾아오라던 대기업 간부, 노래 대신 고백을 빼곡히 적어 준 학생, 휴가 나온 군인, 이층에서 내 옆모습을 스케치해 준 미대생도 있었다.
손님들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알바생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직원들이 배려해 주셔서 잘 할 수 있었다. 음악이 좋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음악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나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 유리 박스 안에서 그들과 함께 소통했던 DJ로서의 나를 좋아했던 게 아닌 가 싶다. 그 시절은 흘러갔지만. 음악은 아직도 곁에 남아 나와 더불어 늙어가는 중이다.
술집 사장님이 음악을 틀어주었다. 멘트는 하지 않았지만, 판을 고르고 만지고 바늘을 옮기는 손끝이 야무졌다. 그녀도 젊은 날 DJ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맥주를 마셨다. 손님의 자리에서 듣는 음악은 같은 곡인데 느낌이 달랐다. 자리가 다르면 무게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신청곡을 쓰려다 말았다. 그녀가 고른 음악만으로 이미 충분했다. 나의 묵은 이야기를 들어주며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 함께 웃어주던 지인이 있어 따뜻했던 하루였다.
추억은 늙지 않는다. 가슴에 품은 추억 하나가 나를 세우고 붙잡아주기도 한다. 오늘은 DJ가 되어 비틀즈의 ‘Yesterday’를 들려주고 싶다.
유리 박스 너머, 나의 모든 그리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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