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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봄 소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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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160회 작성일 25-05-31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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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뇌우를 동반한 소낙비가 아침 내내 격렬하게 내렸다.  최근에 다시 읽기 시작한 장자의 철학 우화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와 페퍼민트 차를 가지고 패티오로 나갔다. 작정한 듯 사선을 그으며 내리는 비에, 마음을 빼앗겨,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비구경을 한참동안 했다. 무엇보다 봄에 내리는 비는 반갑다. 심어놓은 씨앗들을 훌쩍 자라게 하고, 죽은 줄 알았던 나무도 다시 새순을 돋게 하며, 꽃망울을 머금고 있는 나팔꽃, 데이지 같은 꽃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집 앞 화단을 점령하고 있는 돌나물이 영역을 더욱 넓힐까 우려 스러운데, 뭐 그럼 어떠랴, 요즘 나는 돌나물로 해먹을 수 있는 요리를 다 시도해보고 있다. 초장을 뿌린 살라드, 돌나물 비빔밥, 돌나물 물김치, 최근엔 다른 야채와 섞어 부침까지 만들어 먹었다. 겨울동안 탁해 진 피가 초록색으로 물들 것만 같다. 


요즘처럼 혼탁한 세상엔 장자가 귀에 들어온다. 무위자연, 유위 문화, 자연은 굳이 무얼 내세우지도,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뭔가 다르다고 차별하며, 크고 작은 것, 길고 짧은 것을 판단하는 건 인간들 뿐이다. 그 예로 장자는’ 늦가을 짐승의 털이 저 태산보다도 크다’고 한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어찌 그럴 수 있는 가 싶은데,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평등하기에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인간들은 애써 무얼 이루려하고,  남보다 앞서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을 하고, 비교를 하며, 오래 살기 위해 무척 애를 쓴다. 하지만, 무한한 자연에 비해  인간은 언젠가 죽을 운명인 유한 한 존재이다.  이러하니 장자는 한마디로 자연과 척지며,  몇 백년 살 것처럼 아등바등 하며 살 지 말라고 한다. 또한 세상엔 절대선도 절대 악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이나 동물이나 각자의 입장이 다르고,  성질이 다르니,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상선약수’ 처럼 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러기가 어디 쉬운가?


자연은 인간들로 인하여,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그 여파로 기후이변은 물론, 동식물들은 제가 살던 곳마저  빼앗기고 있는 중이다. 뜨거운 지구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산불이 연일 일어나고 있으며, 서식지를 잃은 곰이나 호랑이가 민가로 먹이를 구걸하러 오고, 플라스틱 봉지 같은 바다 쓰레기를 너무 많이 흡입한 고래들은 질식사를 하고 있다. 예전 전래 동화에 나온 그들 본연의 모습이 그리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우리에게  언제나 함께 나누고, 양보하며 살라고 한다.


봄이 되어 허밍버드 수액을 앞마당과 뒷마당에 한 개씩 걸어 두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허밍버드보다 말벌들이 그 수액 주변에 더 많이 몰려든다. 가끔은 개미떼도 달콤한 수액을 탐내  긴장정에 오른다. 몇 군데 담아놓은 야생새를 위한 먹이도 새들은 다투지 않고, 다른 새가 날아오면 얼른 자리를 양보한다. 며칠 전 지인이 가져온 갖가지 채소 모종들도 비를 훌쩍 맞고 성공적으로 정착을 하고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다년생 화초들 역시, 흙이 잘 보듬어준 덕분에 또 다른 봄을 맞고 있다.


우화에 나오는 ‘응제왕’은  자연을 따르는 자다. 그는 자연을 따르는 것은 스스로를 잊는 것이며, 스스로를 잊는다 함은, 욕망을 버리는 것이라 했다. 그렇게 욕망을 버림으로써  무심과 무위의 경지에 이룰 수 있는데 이는 남과 나를 해치지 않고, 꾸미거나, 더하거나 덜하지 않는 정신이라고 한다. 초목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봄 소낙비를 바라보며, 나 역시 불필요한 욕망은 흘러 보내고, 무심하게, 무위를 실천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무심하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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