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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백경혜] 친애하는 우리의 스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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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1,363회 작성일 25-05-24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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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혜 수필가
백경혜 수필가

  가게에 소녀 손님 둘이 들어왔다.

  남미계 십 대 청소년으로 보였다.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에 와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한국이라 하니 저희끼리 마주 보며 ‘역시!’ 하는 눈길을 주고받았다. 어느 도시냐고 묻길래 서울이라 하니 두 손으로 입을 막고 기뻐했다. 그 표정이 귀여워서 나도 같이 웃었다. 한국 문화가 좋아 나까지 친근하게 느껴지나 보다. 

  요새는 한국말로 인사하는 손님이 부쩍 늘었고 제법 소통이 될 만큼 실력을 갖춘 경우도 종종 있다. 한국말을 어찌 아냐고 물으면 대개는 K-pop과 K-drama를 통해 배우게 됐다고 한다. 드라마 내용을 신나게 설명도 하지만, 나는 모르는 것이라 고개만 끄덕끄덕한다. 그들은 청춘이고 나는 먹고살기 바쁜 중년인 것이다. 

  한국 음식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 동네 한국 식당엔 외국 손님이 더 많다. 놀랍게도 그들은 거의 모두 젓가락으로 식사한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내가 미국을 배우는 사이 그들은 한국을 배우고 있다. 


  나도 그 소녀들같이 외국 문화에 열광했던 때가 있었다. ‘딥 퍼플 (Deep Purple)’과 ‘레인보우 (Rainbow)’ 같은 록 밴드를 좋아했는데, 그중에 영국 그룹 ‘퀸 (Queen)’은 나에게 우상이었다. 고등학생이던 언니가 종일 듣던 노래가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였다. 그 노래는 아카펠라로 시작하여 발라드로 바뀌었다가 오페라틱 코러스가 이어지고 절정을 지나면 하드 록이 펼쳐졌다. 

  “아, 정신 사나워 못 듣겠네.” 시끄러우니 카세트를 꺼달라고 불평했지만, 언니는 들은 척도 안 했다. 하지만 내 귀는 이상한 그 노래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나 보다. 며칠 만에 따라 부르게 된 것이다. 

  “mama mia, mama mia, let me go…” 

  노래는 질리지 않았고 묘하게 마음을 휘감았다. 결국 나는 ‘퀸’의 모든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틈만 나면 ‘퀸’ 노래를 흥얼거렸고 ‘퀸’ 이야기를 했다. 멤버 네 사람은 모두 작곡자이자 뛰어난 연주가였고 퍼포먼스도 훌륭했다. 그들은 유럽의 낯선 청년이 아니라 내 곁에서 숨 쉬는 아이돌이었다. 언젠가 영국에 가서 그들의 공연을 눈앞에서 보고, 어쩌면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와 결혼 할 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얘기지만, 무모한 꿈도 꾸는 것이 청춘이리라. 


  1991년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을 주었다. 그에게 시집간다는 소망은 영원한 농담으로 머물게 되었다. 직장 일로 해외를 다닐 때 런던과 뉴욕에 가면 레코드 가게에 들러 퀸 CD를 사 모으는 것이 쏠쏠한 재미였다. 지금도 가끔 그 CD들을 쓰다듬으며 나의 아이돌에게 조용히 경의를 표한다. 지금 살아있다면 70대 노인이겠지만, 그가 무대에 오른다면 나는 틀림없이 영국행 비행기표를 샀을 것이다. 그 기막힌 라이브 공연을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 

  

  「Bohemian Rhapsody」를 들으면 누런색 다이얼 전화기가 생각난다. 그 전화기 앞에서 짝사랑 오빠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던 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I want to break free」와 「Save me」를 매일 흥얼거렸던 고3 때 교실이 떠오르기도 한다. 「Love of my life」를 열정적으로 따라 불렀던 중학생 단발머리 내 모습도 소환된다. ‘퀸’은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2018년 개봉한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 영화 「Bohemian Rhapsody」를 우리 동네 AMC에서 관람했을 때, 라이브 장면마다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극장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함께 노래할 땐 진짜 무대 앞에 앉은 듯 가슴이 벅차 왔다. 관객들은 세월을 뛰어넘고 있었다. 대부분 나 같이 주름진 중년이 되었고 더러는 대머리 아저씨가 되었지만, 우리는 ‘퀸’을 사랑했던 소년, 소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스타를 가지는 것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옛 스타는 캡슐에 싸여 마음속 자판기 같은 곳에 보관된다. 어느 날, 어느 순간, 무심히 눌린 버튼에 그 캡슐이 굴러 나오면 우리는 그 시절 스타와 어린 나를 함께 만나게 된다. 그날의 소리를 듣고, 그때의 풍경을 보게 된다. 심장이 펄펄 뛰던 청춘의 광경은 이젠 색이 바래 더 아름답다. 

  우리 가게에 들러서 K-pop 스타일의 멋진 양말을 사 가는 십 대 아이들은 어떤 추억을 만들고 있을까. 나는 카세트테이프로 외국 스타를 만났지만, 요즘은 영상으로 전 세계 셀럽들을 만나니 눈과 귀가 수집한 정보는 더 큼직한 추억 캡슐을 만들어 주지 않을까. 아마도 BTS와 뉴진스(NewJeans) 같은 한국 스타들도 많은 이에게 그들의 젊은 날을 소환해 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자식이 나의 스타였던가. 세상 물정에 너무 어두워진 것 같다. 어머니는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열렬한 팬이다. 어머니에게도 아이돌이 있는 마당에 나도 분발해야겠다. 

  다시 가슴을 뛰게 해 줄 스타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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