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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북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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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5-01-2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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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시인, 수필가)
박인애 (시인, 수필가)

  9년 전, 다운타운에 있는 책방 ‘Deep Vellum’에서 “Blind Date with a Book”이라는 팻말이 붙은 진열대를 처음 보았다. 그곳에 진열된 책들은 누런 소포지로 포장한데다 노끈으로 묶어 놓은 지라 무슨 책이 들었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해시태그처럼 겉장에 적힌 몇 개의 키워드만으로 책을 고르고 사는 신기한 문화를 접하게 된 거다. 얼굴도 모른 채 맞선을 보았던 윗세대처럼, 정보가 전혀 없는 책과 독자가 소개팅을 할 수 있도록 서점이 중매쟁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책이 나올까 봐 걱정스럽긴 했지만, 어떤 작가의 작품일까, 어떤 내용일까를 상상하며 고르는 즐거움과 설렘이 좋았다. 운이 좋으면 평생 모르고 살 뻔했던 작가를 알게 되고, 좋은 작품을 만나는 대어를 낚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Blind Date with a Book” 코너가 제법 크다. 책 포장지도 다양하고 화려해졌다. 문구가 이미 인쇄되어서인지 선뜻 정이 가지 않는다. 소포지에 마커로 쓴 손 글씨가 강렬하게 와 박혔던 모양이다. 그래서 새로운 게 낯설다. 좋은 문화는 어떤 경로를 통하든 퍼져 나가기 마련이다. 발 없는 문화가 한국에도 정착하여 이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책방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그 책의 매력은 설렘과 레트로 감성이 아닐까 싶다. 


  책은 또 다른 문화를 창출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배경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테마파크를 만든다든지, 영화나 연극으로 재탄생 시키는 일이다. 그중 영국의 해리포터 스튜디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SNS에 책을 소개하거나 평하는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등도 많아졌고, 북클럽, 북토크도 많아졌으며 책을 매개로 한 문화상품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책 속 캐릭터나 글귀를 이용해 옷, 팬시용품, 문구류를 만드는 건 오래전부터 있었던 거라 익숙한데, 작년 9월 한국에 갔을 때 보니 대기업들이 협업하여 만든 문화상품이 제법 많았다. 스타벅스 코리아와 펭귄 랜덤 하우스 출판사가 콜라보 해서 내놓은 『모비딕』 굿즈는 인기가 많았는지 사려했던 텀블러는 품절이었다. 


  예스24와 이마트24가 협업하여 ‘달러구트 꿈 백화점 넛츠 쿠키칩’을 출시했다. 책 속에 나오는 음식을 현실화하면 어떤 맛일지 궁금해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제대로 공략하여 인기를 끌었다. 이미예 장편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나오는 심신 안정용 쿠키를 상품화했다기에 궁금해서 사러 갔는데. 그 또한 사지 못했다. 나처럼 아파서 잠 못 드는 사람들을 위해 67쪽에 나오는 숙면 사탕을 상품화하면 잘 팔리지 않을까 싶다.


  앞의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지난 시즌 성황리에 방영된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만찢남’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나온 조광효 요리사는 만화책 속의 음식을 현실화시켜 성공한 사람이다. 최강록 요리사도 '마스터셰프 코리아 2'에서 우승할 때 만화에서 요리를 배웠다고 밝힌 바 있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현장을 지켜보며 감동한 시청자들이 흑백요리사 관련 서적을 사면서 판매량이 수직상승 하는 기현상을 낳기도 했다. 


  지난가을, 북캉스라는 신조어를 처음 접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여기저기에서 북토크가 이뤄지던 즈음이었다. 서울신라호텔이 책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북캉스(북+바캉스)’ 패키지를 ‘어쩌다 책방’과 협업하여 내놓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불경기라고는 하나 좋은 아이디어로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시도해 보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콘텐츠나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도 노하우다. 불경기라고 주저앉아 탄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지인이 크리스마스 무렵에 친구들과 게이로드 텍산 호텔로 호캉스 간다며 오고 싶으면 오라고 했다. 세 분이 한강 작가 책을 한 권씩 사서 편히 쉬며 읽고 돌려 볼 예정이라고 했다. 작가인 나도 안 해 본 북캉스를 하러 호텔을 가다니, 보통 멋진 노인들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이젠 몸이 아파서 웃돈 얹어주어도 못 가겠지만, 노트북 싸 들고 시원한 호텔에 틀어박혀 장편소설을 쓰는 지인들이 부러웠었다. 환경 때문에 못 쓴다는 건 핑계다. 쓸 사람은 어디서든 쓰게 되어 있다. 


  사고 후유증으로 운전을 못 하니 집에 틀어박혀 책과 노는 중이다. 얼마 만에 누려보는 호사인지 모르겠다. 맡았던 직책도 내려놓는 중이다. 봉사도 못하면서 이름만 올려놓으니 부담스럽다. 건강했을 땐 일도 아닌 것들이 건강을 잃으니 일로 다가온다. 생각이 온통 통증으로만 갈 때는 쉬어 가는 것도 지혜다. 올겨울은 책과 만나보려 한다. 북캉스를 꼭 호텔에서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나는 무엇을 창출해 낼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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