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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새로운 미국의 ‘경제 수도’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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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이전·데이터센터·증권거래소까지 … 미국 성장의 무게중심이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미국 경제의 성장축이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경제 지도를 다시 펼쳐 보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텍사스를 향한다. 인구 증가, 기업 본사 이전, 대규모 첨단 산업 투자,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센터 건설, 그리고 새로운 전국 단위 증권거래소 출범까지, 굵직한 키워드들이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
더 이상 캘리포니아·뉴욕 같은 해안선 도시들이 경제 성장의 중심이라는 전통적 인식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 빈자리를 넓고 분명하게 차지하는 곳이 바로 텍사스다.
연방 인구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텍사스는 2024년 한 해 동안 56만 명 이상의 신규 인구를 유입해 14년 연속 미국 50개 주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한 주로 기록됐다. 인구는 이미 3,1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 같은 성장은 단순한 ‘이사 증가’가 아니라 대규모 노동력 이동과 산업 재편을 수반한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기회가 있는 곳”이라는 경제 원리가 텍사스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제 텍사스는 과거의 “세금이 낮은 남부의 큰 주”가 아니라 미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직접 이끄는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업, 자본, 기술 인프라, 인구와 노동력이 동시에 모이며 남부가 미국 경제의 새로운 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숫자로 확인되는 북텍사스의 압도적 성장
북텍사스, 특히 달라스–포트워스(D-FW)는 최근 각종 경제 보고서에서 국가적 주목을 받는 지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PwC와 도시토지연구소(ULI)가 공동 발표한 ‘2026 부동산 시장 전망’에서 D-FW는 2년 연속 “전국에서 가장 주목할 부동산·개발 시장 1위”로 선정됐다. 상업용 부동산, 주택 개발 전망, 자금 조달 환경 등을 종합한 결과로 전국 모든 대도시권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보고서는 D-FW의 경쟁력 요인으로 “항공·도로 기반 접근성, 낮은 생활비, 우호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꼽았다. 2018~2024년 사이 D-FW로 이전한 기업 본사는 100곳에 달하며, 이는 미국 모든 대도시권 중 압도적 1위다.
같은 기간 텍사스의 투자은행·증권업 고용은 20년 동안 111% 증가했고, 달라스는 뉴욕에 이어 전국 2위 금융시장으로 성장했다. 이른바 “얄 스트리트(Y’all Street)”라는 별칭까지 등장한 이유다.
이 모든 지표는 북텍사스가 실물경제와 금융경제 양쪽에서 동시에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조·물류·IT뿐 아니라 금융 인프라까지 결합한 복합적 성장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텍사스를 선택하는 네 가지 이유
기업·자본·기술이 텍사스로 모여드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다층적 요인들이 결합해 만들고 있는 구조적 변화다.
첫째, 세제와 비용 구조_ 텍사스는 주 소득세가 없으며, 부지·전력·물류·인건비를 합친 총비용이 동부·서부 주요 주보다 훨씬 낮다. 본사 이전을 결정할 때 기업 비용 구조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둘째, 규제와 인허가 속도_ 캘리포니아나 뉴욕에 비해 투자 승인·건축 인허가 속도가 빠르다. 기업들은 하나같이 “같은 설비를 텍사스에서 지을 때가 훨씬 효율적”이라고 평가한다.
셋째, 인구 증가와 노동력 확보_ 텍사스는 Z세대(Gen Z)가 가장 많이 유입되는 주다. 젊은 전문 인력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지역은 기업 입장에서 미래 생산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넷째, 미국 경제의 중심에 위치한 물류 허브_ I-35 축을 따라 달라스–어스틴–샌안토니오로 이어지는 라인은 미국 내 물류를 관통하는 ‘황금 축’으로 불린다. 항공·철도·고속도로 네트워크가 밀집된 D-FW 메트로플렉스는 전 세계 기업들에게 최적의 물류 구간으로 꼽힌다.
이러한 요인들이 겹치면서 기업들은 텍사스를 단순한 ‘세금 피난처’가 아니라 장기적 성장 전략의 본거지로 보고 있다.
◈본사 이전 러시와 텍사스 증권거래소의 등장
본사 이전 통계는 텍사스의 위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분석기관 트랙데이터(Track Data)에 따르면 2018~2024년 사이 D-FW로 이전한 본사는 100곳, 텍사스 전체는 385곳이 넘는다. 상당수가 캘리포니아·일리노이·뉴저지 같은 고비용 주에서 이동해왔다.
대표적 사례로 헤어케어 글로벌 브랜드 ‘존 폴 미첼 시스템즈(John Paul Mitchell Systems)’는 본사를 캘리포니아에서 달라스 남부 윌머(Wilmer)로 옮기며 1,200만 달러 규모의 유통센터 신설 투자를 진행 중이다. 텍사스 기업지원기금(TEF)의 인센티브까지 결합된 “텍사스식 기업 유치 모델”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이제 텍사스는 금융시장에서도 독자적 위치를 확보하고자 한다. 달라스 도심에 본사를 둘 ‘텍사스 증권거래소(TXSE)’는 이미 SEC로부터 정식 승인받았으며 2026년 개장을 목표로 한다.
블랙록, 시타델 시큐리티즈, 찰스 슈왑 등이 총 1억6,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최근에는 JP모건 체이스도 참여했다. 전통적으로 미국 자본시장 중심은 뉴욕이었지만, TXSE의 출범은 금융의 일부가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ULI–PwC 보고서는 “달라스는 이제 금융 변두리가 아닌 전국 2위 금융시장 거점”이라고 평가했다.
◈AI 시대의 핵심 기반, 텍사스 데이터센터 벨트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단연 AI·클라우드 시대를 뒷받침할 데이터센터 투자다. 구글은 텍사스에서만 2027년까지 400억 달러를 투자해 세 곳의 대형 캠퍼스를 건설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는 구글이 미국 단일 주에 투자한 규모 중 최대다. 대상 지역은 암스트롱 카운티, 해스켈 카운티, 미들로시안 등이며, 기존 달라스 데이터센터에도 확장 투자가 이어진다.
마이크로소프트, AWS, 메타, 오픈AI도 텍사스 전역에 대규모 클라우드·AI 인프라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전력·토지·네트워크 인프라가 모두 필요한 데이터센터가 텍사스를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이 장기 디지털 경제의 기반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달라스–포트워스, 어스틴–샌안토니오, 웨스트 텍사스, 팬핸들 지역을 잇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벨트”가 형성되며, 텍사스는 제조·물류·에너지·디지털 인프라를 모두 갖춘 4중 성장 구조를 갖춰가고 있다.
◈인구와 부동산, 달라지는 도시 구조
대규모 투자와 기업 유입은 인구 증가로 바로 이어진다. 텍사스는 2020년 이후 인구가 7% 넘게 증가했으며, 일부 카운티는 10% 이상 성장했다.
그 결과 주택·상업용 부동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D-FW는 최근 7년 동안 전국 개발 유망 지역 TOP 10에 계속 이름을 올렸고, 업타운·녹스·플래이노 레거시 지역은 미래형 복합개발 도시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주택 공급 부족, 렌트 상승, 인프라 과부하 같은 문제도 제기되고 있지만, 도시 개발과 건설·서비스 산업 전반에 새로운 성장 기회가 생겨나는 것도 사실이다.
◈텍사스 성장, 한인사회에는 어떤 의미인가
텍사스의 변화는 한인사회에도 직접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텍사스는 이미 한국계 미국인 인구 규모로 상위권에 올라섰고, 덴튼·콜린·달라스 카운티는 1%가 넘는 큰 한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기업 본사 이전과 IT·의료·금융 분야 일자리 확대는 한인 1.5세·2세 전문직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부동산·서비스업·소매업 등 전통적 한인 업종도 성장세를 맞고 있다.
즉, 텍사스의 부상은 단순한 경제 뉴스가 아니라 한인 가정의 일자리, 자녀 교육, 신앙 공동체, 비즈니스 환경 전체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흐름이다.
◈더 크고, 더 복합적으로 성장하는 텍사스
기업 본사, 데이터센터, 증권거래소, 인구와 자본이 동시에 몰리는 시기는 매우 드물다. 물론 전력·물·교통 인프라, 주택 공급, 교육 시스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미국 경제 성장 스토리 한가운데 텍사스가 서 있다는 점이다.
“더 크고, 더 매력적인 텍사스”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 성장을 얼마나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한 텍사스의 실험은 이미 시작되었다.
유광진 기자 ⓒ K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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