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백경혜] 몰래 익어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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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과 여행을 떠났다.
타지 생활 동안 제대로 된 여행 한번 못했던 아들이 이 길 끝에서 어떤 위안을 얻길 바랐다. 졸업식에 맞춰 다른 가족들이 도착하기 전, 며칠을 내어 스모키 마운틴으로 향했다.
굽이진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낡은 필름의 장면이 돌아가듯 숲의 표정과 빛의 결이 바뀌었다. 무척 아름다운 산이었다. 케이즈 코브(Cades Cove)에 이르니 차들이 서행했다. 검은 곰 세 마리가 내려온 것이다. 새끼보다 조금 큰 암곰은 엄마가 된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도로까지 와버린 것에 당황한 것 같았다. 사람들은 창문을 조금 내리고 조심스레 사진을 찍었다. 새끼를 동반한 곰은 무척 사납다던데, 어리둥절 두리번거리는 초보 엄마는 무섭게 보이지 않았다. 곰도 엄마 노릇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5월의 나무들은 “나 여기에 살아 있었어!” 인사하듯 연둣빛 잎사귀를 한껏 펼쳐 보였다. 시닉 루프 (Scenic Loop) 초입에서 말 세 마리가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고 있었다. 승마장에서 방목하는 말들이었을까. 방목장을 마음껏 달리는 말들은 우리 차를 지나 빠르게 멀어져갔다.
높은 고도, 비가 잦은 따스한 기후와 다양한 식물이 방출하는 휘발성 물질 때문에 푸르스름한 안개가 자주 어린다는 이 산을 체로키 원주민들은 샤코나게 (Shaconage, 푸른 연기의 장소)라 부르며 매우 신성하게 여겼다고 한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클링먼스 돔 (Clingmans Dome)을 향해 800미터 정도 비탈길을 올랐다. 중간에 벤치들이 있다고 하니 쉬엄쉬엄 오르자 했는데, 사실 벤치가 나올 때마다 쉬었다. 아들이나 나나 운동이 부족했나 보다. 아들은 코딩 숙제를 하느라 모니터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마침내 2,025미터 정상에 서니 눈 앞을 가렸다가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겹겹이 쌓인 푸른 산등성이들이 보였다. 실처럼 얇은 안개가 산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구름 위로 껑충 올라 신성한 산을 바라보다니 힘겹게 올라간 보람이 있었다. 체로키인 들이 믿은 것처럼 아들의 고생스럽던 심신에 치유의 힘이 깃들길 빌었다.
다음 날, 우리는 8,000에이커 녹지에 자리한 미국 최대의 개인 저택, 빌트모어(Biltmore Estate)를 방문했다. 조지 밴더빌트가 1895년에 지은 이 집은 250개의 방을 가지고 있으니 저택이라기보다 미국 도금시대 (Gilded Age)의 절정을 보여주는 궁전이었다.
높이 21미터의 천장으로부터 커다란 샹들리에가 드리워진 만찬실은 중세 유럽의 성을 떠올리게 했다. 그곳에서 손님을 접대하던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한쪽 벽면에서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되는 동안 하인들이 들어와 은그릇과 도자기에 담긴 요리를 64인용 오크 식탁 위에 올리고, 세 개의 벽난로에서는 따뜻한 불꽃이 피어올랐을 것이다. 초대받은 손님들과 가족의 웃음소리가 주홍색 비단 의자 주변에 여전히 맴도는 듯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이 끌렸던 곳은 조찬실이었다. 가구와 장식을 보존하기 위해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커다란 창의 일부만 보였지만, 커튼을 걷으면 푸른 산이 한눈에 들어올 것 같았다. 화려하게 장식된 다른 방들에 비해 아담하고 단정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조용히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살랑이는 바람 속에서, 이 집 사람들의 내면도 더욱 깊어져 간 것이 아닐까.
테라스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숲이 내려다보였다. 시야가 머무는 곳에 도로나 다른 집이 보이지 않으니, 그 일대가 다 그들의 소유였나보다.
손님을 초대하여 함께 누렸던 흔적들은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당구대를 놓은 거실, 피아노가 있는 응접실, 천장과 바닥을 온통 하얀 타일로 마감한 실내 수영장과 두 개의 레인을 둔 볼링장이 있었다. 오랜 세월을 견딘 마룻바닥은 아직도 잔잔한 광택을 머금고 있었다. 볼링장의 핀은 손이 빠른 하인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손님방에는 욕조와 수세식 변기가 딸린 욕실이 있었는데, 욕조 옆에는 직원을 부르던 벨이 남아 있었다. 지하에는 세탁실, 주방, 직원과 하인의 식당, 식품 창고 등이 있는데, 워낙 정성 들여 지은 저택이라 지금까지 구조나 설비를 크게 손볼 필요가 없다 한다.
저택을 감상하는 동안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떠올랐다.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까지 이어온 Gilded Age의 황금빛 환상과 과시적 소비 이면에 조용히 쌓여가던 허무와 불균형에 대한 갈증에 미국 역사는 개츠비처럼 침몰하지 않았고, 민주적이고 포용적인 사회로 발전해 왔다.
빌트모어를 찾는 사람들도, 그곳의 위용보다 그 안에서 흐르는 조용한 시간의 깊이에 반응하는 듯했다. 사진을 찍으며 감탄하다가도, 문득 숲을 바라보며 말없이 머무는 그들의 얼굴에서 그 여운이 느껴졌다.
저택 단지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 빌트모어의 식사처럼 우아하고 정갈했다. 아들은 무척 행복해했다. 공부도 어렵고 인턴십 기회도 쉽지 않아 마음고생이 깊었지만, 늘 방에 박혀 있던 아들은 숱하게 밤을 새우며 치열하게 4년을 버텨냈다. 그 사이 아이는 소리 없이 성장해 왔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린 엄마 곰같이 미숙하지만, 아들을 곰같이 신뢰하고 싶다. 공들여 쌓은 것은 쉽게 무너지지 않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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