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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미역국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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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TN
문학 댓글 0건 조회 99회 작성일 24-04-13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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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작가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수능시험이 있던 날 아침 어머니는 생선 미역국을 끓여 주셨다. 생일날이나 먹는 생선 미역국이니 특별히 생각해서 해 주셨는데 맛있게 먹고 가서 시험을 보았다. 다음날 이모가 오셔서 시험은 잘 보았냐고 뭘 먹고 갔느냐고 묻길래 미역국을 맛있게 끓여줘 먹었다고 하자 아이고,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 미끄러지는데… 언니는 어떻게 그런 걸 몰라요 하며 어머니에게 야단했다. 일본에서 자라서 미역국이 시험에 안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한국의 미신을 모르신 탓. 아마 미역국의 미역이 미끈거려 미끄러진다고 그런 것 같은데… 어머니는 잘 먹어서 좋은 성적을 받았으니 되었다면서도 좀 찜찜한 듯 다음부터 시험기간에 미역국이 우리 식탁에서 사라졌다.

미역국을 끓이거나 먹게 되면 시험이나 면접에서 안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미신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우리집같이 한국의 전통적인 터부(taboo)를 잘 모르는 집이라면 모르지만 대부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역국을 피한다고 했다. 미신을 믿거나 말거나 다른 사람이 이러쿵저러쿵할 문제는 아니지만 내 생각으로는 맛있는 미역국을 먹고 시험 보러 가면 좋은 성적을 거둘 것 같다. 미역국이든 죽이든 맛있게 먹고 시험장에 가면 무엇이든 잘 풀 수 있지 않을까?

어디 미역국뿐일까. 죽을 먹는 일도 꺼리는 일이다. 아마 ‘죽 쒔다’는 말이 잘 못했다는 말과 동의어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 해본다. 시험에 좋다는 음식으로는 찹쌀떡이 있다. 시험보기 전에는 찹쌀떡을 먹어야 시험에 (찹쌀떡같이) 딱 붙는다는 미신이 있어서 시험전에 찹쌀떡을 선물로 주기도 하고 스스로 사 먹기도 했다. 배가 고프던 시절 시험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찹쌀떡이 최고의 응원 선물이었을 것 같지만 나는 한 번도 찹쌀떡을 먹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엿을 시험장에 붙여놓거나 하는 것도 엿같이 척 붙으라고 하는 미신인데 불행히도 시험기간에 맛있는 엿도 먹어본 일이 없다. 어머니가 그런 미신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큰 시험 전날에 머리를 감는 나에게 아니 시험전에 머리를 감다니 하며 질색을 하시는 어머니.  머리를 감으면 머리가 시원해서 시험을 잘 볼 것이라는 나의 말에 남들은 몇일전부터는 머리를 감지도 않는 다는 말을 전하면서 하시는 말 “그러면 공부한 것이 다 달아난다.” 지금껏 암기하고 노력한 것들이 머리카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담겨있어서 괜찮다는 나의 말에 고개만 살랑살랑 옆으로 젓는 어머니. 하지만 시험 결과 발표를 보고 나서는 우리 아들은 시험 전에 머리를 감고 가도 합격했답니다 라고 자랑하고 다니셨다.  

미신은 과학적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이 있다. 한국에서 4자를 싫어하는 마음은 한국의 엘리베이터에는 4층이 없다는 것으로 증명된다. 아마 미국에서 13자를 싫어하는 것과 같으리라. 문제는 미신에 휘둘리지 말아야 할 과학에도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이다. 십 수년 전 신문기사에서 한국 로켓 나로호 발사 추진 단장이었던 분이 한국 나로호 발사대 앞에 서서 차례용 술과 과일, 북어포를 들고 발사대 앞에 서서 음식을 놓고 술을 올리고 큰절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성공적 발사가 얼마나 간절했으면 미신과는 거리가 멀어야 할 과학자가 ‘고사’를 지냈을까 하고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가장 과학적이어야 할 행사에 이런 비과학적인 일을 했다는 것을 듣고 앞으로 과학을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당황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런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인지 2013년 1월 30일 오후 4시 전라남도 고흥군 외나로도의 나로 우주센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가 발사되었고 여기에 탑재된 나로과학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모든 절차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11번째 스페이스 클럽(Space Club)이 되었다. 스페이스 클럽이란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 자국의 발사장에서 자국의 로켓을 이용하여 자국 기술로 만든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고, 그 인공위성이 성공적으로 궤도를 돌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개발 선진국을 말한다. 즉 스페이스 클럽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인공위성, 우주발사체 및 우주발사장 3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2013년말 기준 이러한 요건을 충족한 나라는 러시아,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영국, 인도, 이스라엘, 이란, 북한, 한국 등 11개 국가에 불과하다. 하지만 발사 전에 발사대 앞에서 북어포를 올려놓고 고사를 지낸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미신을 믿거나 말거나는 개인의 믿음에 따른 것이고 다른 사람이 비판할 문제는 아니지만, 나는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증명이 안된 미신이나 고사지내는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 굳이 사귀던 사람과 궁합이 맞는지 아닌지를 점쟁이에게 가서 알아보는 사람보다 결혼을 하고 ‘궁합’미신을 이겨낼 신념을 가지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좋게 보인다. 궁합이나 점쟁이의 말이 뭐가 됐든 우리는 잘해 나갈 거라는 신념이 있으면 고사 같은 것을 지낼 필요가 없이 무엇이든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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