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데스크칼럼
“살 줄을 아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부처님께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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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도 중순에 들었다. 세상이야 뒤집히든 말든 세월은 흐르고 역사의 나이테는 쌓이겠지만, 언제나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은 옛 성현들의 <진리> 말씀이다.
옛날 인도에 몹시 인색하고 탐욕스러우며 욕심이 매우 많았던, 나이가 80이 넘은 한 귀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미 큰 집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또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인부들의 품삯이 아까워 그 나이에 직접 일을 하며 모든 것을 지휘 감독하였다.
그 때 부처님이 그 집 앞을 지나가다 얼핏 그 노인을 보니 곧 죽을 목숨이라 그를 가엾게 여겨 제자들과 함께 그 노인의 집을 찾아가 “고생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리 큰 집을 지어 누가 살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고 한다.
노인은 자랑스레 떠벌렸다. “별당에는 내가 살 것이고, 사랑채는 손님방이고, 안채에는 내 처자식들이 쓸 것이며, 양쪽 행랑채는 종들이 거처할 곳이고, 창고는 곡식을 넣고 다락방은 여름에 올라 시원하게 지낼 생각이고 겨울에는 따로 짓는 별채의 온돌에 들어가 따뜻하게 살기 위해 지금 집을 짓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보시오. 일도 좋지만 내가 보니 당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일이니 잠시 일손을 놓고 내 얘길 들어주겠소?” 그러자 노인이 대꾸했다. “아니요. 지금은 내가 너무 바쁘니 나중에 해가 지면 듣도록 하지요.”
그 노인은 그렇게 부처님의 종용을 뿌리치며 정신 없이 일에 매달려 서두르다 그만 본인의 실수로 별당 채를 받쳐줄 서까래를 놓쳐 그것에 깔려 죽고 말았다.
이를 예견했던 부처님은 그의 죽음을 듣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그 노인은 지혜의 설법을 마다하고 욕심을 부리다 세상일의 덧없음을 알지 못한 채 죽었다. 그 노인은 이미 가지고 있는 집도 여러 채인데 왜 또 집을 짓고자 하였을까? 이는 탐욕이다. 다 차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이 탐욕만 있고 쓸 줄을 모른다면 그 것은 살아도 살 줄은 모르는 사람이니라”
제자들이 물었다. “그러면 <살 줄을 아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부처님이 대답하였다. “아무 것도 차지하지 아니하여도 그들의 주머니에서 늘 모자람이 없이 무엇인가가 나오는 사람이니라. 물질도, 좋은 생각도, 기쁨과 슬픔도, 지략과 모략도, 그리고 사랑마저도 베푸는 사람이니라”
그렇다. <살 줄을 아는 사람>들이란 가진 것을 모든 이에게 나눠줌으로써 나 자신도 모르게 부자가 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런 사람들은 부자이기에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주기 때문에 부자가 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치 <국 맛>은 국자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쥔 마음의 의지에 따라 혀로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요즈음 내가 태어나서 자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치고 박는’ 권력 싸움질과, 또 내가 몸담고 사는 미국 나라 정치꾼들의 ‘죽기 살기’의 막장극을 보며 참 마음이 착잡하다. 그들이 언제나 <살 줄을 아는 사람>으로 탈바꿈할지? 안타깝다.
하지만 이념이 좌든 우든 간에 사기나 부정으로 국민을 오도하고 편짜기를 하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이는 누가 무어래도 나쁜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나 역시 되돌아보면 삶의 진 맛을 모르는 <국자>이긴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마음으로나마 내 이웃에게 베풀고 정의롭게 살고 싶은 생각만은 버리지 않고 살고 싶기 때문이다.
어느 듯 한 해가 또 저물고 있다. 우리가 진정 더불어 살길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주변에 함께 나누자. 턱도 없이 그냥 퍼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각자가 스스로를 돕게 하고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당겨주고 밀어주자. 그러면 그것이 함께 걷는 것이요, 또 우리 삶에 외롭지 않는 여정이 되지 않겠는가. 이에 부처님 말씀 중 <법구비유경> 한 구절을 소개한다.
<어리석은 자는 현자를 가까이 하여도 그 지혜를 알지 못하는 법이니 이는 마치 국자가 국 맛을 모르는 것과 같고, 그 반면에 어진 사람이 현자를 가까이 하는 것은 혀가 음식 맛을 아는 것과 같으니 비록 잠깐 동안 가까이 하더라도 참다운 진리의 뜻을 알게 되느니라>
이는 부처님 생전에 있었던 설법 중의 하나이다. 비록 3천 년이 지났지만 부처님의 이 설법은 아직도 유효하다.*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손용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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