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데스크칼럼
영구 분단 …‘천추(千秋)의 한(恨)’을 품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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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7일은 66년 전 6.25전쟁의 ‘휴전협정’이 체결된 날이다. 전쟁 발발 이후 3년간 한반도를 폐허로 만들었던 전쟁의 총성은 멎었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종전(終戰)이 아닌 ‘정전(停戰)’- 즉 전쟁이 잠시 중단된 날의 시작이다. 그리고 평화가 정착되지 않은 채로 66년을 이어오며 분단체제의 고착을 가져왔다. 이 정전협정은 과연 어떻게 체결되었으며 우리에겐 어떤 의미를 지닐까?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전쟁 초기 북한의 압도적 우세로 대한민국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며 나라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허나, 바로 유엔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평양을 넘어 압록강까지 북진하며 통일을 눈앞에 두었다. 하지만 중공군이 참전하며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했고, 1951년 여름 이후 전쟁은 38선 근처에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때 김일성의 배후였던 소련이 유엔주재 대표 말리크를 앞세워 정전을 제의하였고, 유엔군 사령관 릿지웨이는 이 제의에 따라 정전회담 개최를 동의한다.
따라서 릿지웨이는 북한의 김일성과 팽덕회(彭德懷) 중국군 사령관을 파트너로 정전회담을 시작한다. 그 해 7월 8일 개성에서 예비회담, 7월 10일부터 본 회담을 시작했다. 그리고 17일만에 땅 가르기, 포로문제 등에 대한 주요 의사일정을 합의하고 10월 27일부터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토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군사분계선 확정문제는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난항을 거듭하다가 결국 11월27일 현재의 양측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접촉선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한다는 내용에 합의한다.
그러나 다시 포로문제 등으로 다시 난항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회담 시작 2년만인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각 제159차 본 회의장인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다만 정전을 반대한 이승만 한국정부는 최덕신 육군 소장을 배석만 시킨 채 협정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 사이 쌍방간은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피 터지게 싸웠다. 회담장에서는 ‘설전(舌戰)’이, 전선에서는 땅 따먹기 ‘혈전(血戰)’이 전개되었다. 죽을 고생은 국민들만 했다. 어쨌든 총성은 멎었다. 하지만, 실제는 전쟁의 종식이 아닌 ‘정전’ 상태에 들어간 것이었다. 우리로서는 자유민주체제의 통일을 눈앞에 둔 채 영구 분단이 되어버린 ‘천추의 한’이 된 날이었다. 그리고 이 한(恨) 맺힌 날은 세월이 흐를수록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미국은 조기(弔旗) 게양, 한국은 ‘멀뚱멀뚱’
미국에서는 이 날, ‘정전협정일’을 맞으면 6.25전쟁에서 전사한 수만 여 명의 미군을 추모하기 위해 이 날을 기린다. 지난 2009년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정전일’로 제정하여 조기를 게양하고, 이들의 희생에 감사하며 경의를 표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전에서의 미군 전사자는 모두 54,000여명, 부상자는 10만 여명이 넘었고, 한국전에 참가한 미군 장성의 아들들은 모두 142명, 그 중 35명이 전사하였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전협정일에 그냥 ‘멀뚱멀뚱’이다. 특히 무슨 행사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오히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 날을 멋대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로 정하고 ‘전승기념관’을 개축하여 서방 기자들까지 초청,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한 김일성 대원수의 전승업적을 길이 빛내기 위한 기념비적 창조물“이라면서 대대적으로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 정부는 이 날의 ‘한 맺힘’ 본질을 애써 덮고 감추려 한다. 되레 국군 통수권자가 앞장서서 대한민국을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이상한 나라’로 바꾸려는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들은 마치 코미디 하듯 오히려 북의 김정은의 하수인처럼 ‘위장평화 쇼’를 벌이며, 이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종전선언’으로 탈색시키고 있다. 주사파 좌경 세력들을 앞세워 미국을 꼬드겨 이를 ‘평화협정’으로 까지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정상적인 국민들까지 ‘궁민(窮民)’으로 만들고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그야말로 불감청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다. 자기가 나설 일을 적국 정부가 스스로 나서고 있으니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부르랴! 도무지 제정신 있는 나라가 아니다.
늘 말하듯 평화는 스스로 방위능력이 없으면 100% 적에게 먹히고 만다. 그걸 알면서도 종전선언+평화협정+유엔사해체+주한미군철수+남북체제연합+김정은 남쪽침탈...마치 월남의 전철 밟듯 길을 닦아준다면 그야말로 이 정부는 훗날 결코 여적죄(與敵罪)를 면치못할 것이다. 즉 제명대로 못살 것이라는 얘기다.
억지춘향 식으로 잠시 싸움을 멈춘 7월27일 ‘정전협정일’을 맞으며 마음이 착잡하다. 적어도 우리 해외동포들이라도 힘을 뭉쳐 북의 주사파 좌경세력들을 내부로부터 솎아내고 자유민주주의의 확고한 재정립을 새로이 외치는, 그야말로 ‘실풀이 한마당’이라도 선보였으면 좋겠다. *
손용상 논설위원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전쟁 초기 북한의 압도적 우세로 대한민국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며 나라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허나, 바로 유엔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평양을 넘어 압록강까지 북진하며 통일을 눈앞에 두었다. 하지만 중공군이 참전하며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했고, 1951년 여름 이후 전쟁은 38선 근처에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때 김일성의 배후였던 소련이 유엔주재 대표 말리크를 앞세워 정전을 제의하였고, 유엔군 사령관 릿지웨이는 이 제의에 따라 정전회담 개최를 동의한다.
따라서 릿지웨이는 북한의 김일성과 팽덕회(彭德懷) 중국군 사령관을 파트너로 정전회담을 시작한다. 그 해 7월 8일 개성에서 예비회담, 7월 10일부터 본 회담을 시작했다. 그리고 17일만에 땅 가르기, 포로문제 등에 대한 주요 의사일정을 합의하고 10월 27일부터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토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군사분계선 확정문제는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난항을 거듭하다가 결국 11월27일 현재의 양측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접촉선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한다는 내용에 합의한다.
그러나 다시 포로문제 등으로 다시 난항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회담 시작 2년만인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각 제159차 본 회의장인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다만 정전을 반대한 이승만 한국정부는 최덕신 육군 소장을 배석만 시킨 채 협정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 사이 쌍방간은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피 터지게 싸웠다. 회담장에서는 ‘설전(舌戰)’이, 전선에서는 땅 따먹기 ‘혈전(血戰)’이 전개되었다. 죽을 고생은 국민들만 했다. 어쨌든 총성은 멎었다. 하지만, 실제는 전쟁의 종식이 아닌 ‘정전’ 상태에 들어간 것이었다. 우리로서는 자유민주체제의 통일을 눈앞에 둔 채 영구 분단이 되어버린 ‘천추의 한’이 된 날이었다. 그리고 이 한(恨) 맺힌 날은 세월이 흐를수록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미국은 조기(弔旗) 게양, 한국은 ‘멀뚱멀뚱’
미국에서는 이 날, ‘정전협정일’을 맞으면 6.25전쟁에서 전사한 수만 여 명의 미군을 추모하기 위해 이 날을 기린다. 지난 2009년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정전일’로 제정하여 조기를 게양하고, 이들의 희생에 감사하며 경의를 표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전에서의 미군 전사자는 모두 54,000여명, 부상자는 10만 여명이 넘었고, 한국전에 참가한 미군 장성의 아들들은 모두 142명, 그 중 35명이 전사하였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전협정일에 그냥 ‘멀뚱멀뚱’이다. 특히 무슨 행사를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오히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 날을 멋대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로 정하고 ‘전승기념관’을 개축하여 서방 기자들까지 초청,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한 김일성 대원수의 전승업적을 길이 빛내기 위한 기념비적 창조물“이라면서 대대적으로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 정부는 이 날의 ‘한 맺힘’ 본질을 애써 덮고 감추려 한다. 되레 국군 통수권자가 앞장서서 대한민국을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이상한 나라’로 바꾸려는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들은 마치 코미디 하듯 오히려 북의 김정은의 하수인처럼 ‘위장평화 쇼’를 벌이며, 이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종전선언’으로 탈색시키고 있다. 주사파 좌경 세력들을 앞세워 미국을 꼬드겨 이를 ‘평화협정’으로 까지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정상적인 국민들까지 ‘궁민(窮民)’으로 만들고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그야말로 불감청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다. 자기가 나설 일을 적국 정부가 스스로 나서고 있으니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부르랴! 도무지 제정신 있는 나라가 아니다.
늘 말하듯 평화는 스스로 방위능력이 없으면 100% 적에게 먹히고 만다. 그걸 알면서도 종전선언+평화협정+유엔사해체+주한미군철수+남북체제연합+김정은 남쪽침탈...마치 월남의 전철 밟듯 길을 닦아준다면 그야말로 이 정부는 훗날 결코 여적죄(與敵罪)를 면치못할 것이다. 즉 제명대로 못살 것이라는 얘기다.
억지춘향 식으로 잠시 싸움을 멈춘 7월27일 ‘정전협정일’을 맞으며 마음이 착잡하다. 적어도 우리 해외동포들이라도 힘을 뭉쳐 북의 주사파 좌경세력들을 내부로부터 솎아내고 자유민주주의의 확고한 재정립을 새로이 외치는, 그야말로 ‘실풀이 한마당’이라도 선보였으면 좋겠다. *
손용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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