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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휘감은 아시안 증오범죄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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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마사지 업소 총격사건에 한인 사회 불안감고조
지난 16일(화) 조지아주 2개 카운티, 3곳의 스파 업소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총격 사건으로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총 8명이 사망했으며, 용의자로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21·사진)이 체포됐다.
사망한 한인 여성 4명 가운데 2명은 70대, 다른 2명은 각각 50대와 60대로 알려졌으며, 이 중 3명은 메트로 애틀란타의 최대 한인 타운인 둘루스에 거주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애틀란타 지역 방송인 애틀란타 라디오 코리아의 박세나 기자는 AM730 DKNET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으로 애틀란타 한인 사회는 불안감과 공포에 떨고 있다”며 “대부분의 한인 비즈니스들은 정상적으로 운영하고는 있지만 아시아계 보호 조치 강화, 비상대책팀 발족 등 한인 사회 차원의 대응과 경계 태세를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해당 사건과 관련, 연방수사국(FBI)과 애틀란타 경찰 등 조사 당국은 이번 총격 사건의 동기가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인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밝혔다.
경찰은 “용의자로 체포된 로버트 애런 롱이 자신이 성 중독에 빠졌을 가능성에 대해 진술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진술만으로 범행 동기를 특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면서 충분히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용의자가 페이스북에 중국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중국을 ‘우리 시대 최대 악’으로 규정한 게시글을 올렸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언론사에서 페이스북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 글은 가짜이고 삭제 중”이라며 정정 보도를 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 말고도 코로나 19 확산 이후 아시아계에 대한 범죄 급증, 사건 희생자의 다수가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안이라는 점 등에서 인종차별 증오범죄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연쇄 총격사건 현장 중 한 곳인 마사지숍 '영스(Young's) 아시안 마사지 팔러' (사진 출처_연합뉴스)
◈ 달라스 한인 사회의 반응은?
달라스 한인 사회도 이번 애틀란타 총격 사건 소식이 전해지면서 아시아계 증오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프리스코에 거주하고 있는 40대 한인 동포는 “얼마 전 달라스의 한 뷰티 서플라이에 들렀는데, 한 흑인이 ‘너가 바이러스를 갖고 왔다’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당시엔 너무 놀라 신고를 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아찔했던 경험을 전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비슷한 일이나 더한 일을 당했지만 정작 신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많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달라스 경찰국 보고에 따르면 지난 해(2020년) 달라스 지역 아시안을 상대로 한 증오범죄 신고 건수는 총 4건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달라스 경찰국의 수 남 경찰관은 “지난 해 기준으로 증오범죄 신고는 단 4건에 불과했으며, 올해도 지금까지는 아직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수치가 정확할 수도 있지만, 피해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신고를 하지 않아 데이터에 나타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달라스 경찰국의 김은섭 홍보관도 증오범죄에 대해 “언어적으로 당한 피해가 신고를 하기에 애매한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특히 협박성 언어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는 꼭 신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협박성 언어 폭행을 가한 사람의 인상 착의와 당한 장소, 시간 등을 경찰에 신고하면 그것을 토대로 경찰들이 움직여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면 경찰이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며 한인 동포들의 신고를 독려했다.
이러한 증오범죄와 관련해 휴스턴 남서부를 담당하고 있는 민주당 진 우(Gene Wu) 텍사스 주 하원의원과 제시 제튼(Jacey Jetton) 의원은 코로나 19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발생하는 반아시아적 증오범죄를 규탄하는 법안인 HB 137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 “아시아계 생명도 소중하다(Asian Lives Matter)”
지난 17일(수) 밤 워싱턴 DC와 뉴욕 인근에서는 이번 총격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약 200명이 모인 이날 시위에서는 참가자들이 ‘아시아계 생명도 소중하다(Asian Lives Matters)’, ‘아시아계 증오를 멈춰라(StopAsianHate!)’라는 문구의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또 한글로 ‘경찰은 범죄를 예방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를 지킨다’고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일부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촛불을 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 조사를 맡고 있는 체로키 카운티 보안관실의 경찰 제이 베이커는 용의자에 대해 “총격을 저지른 날은 그에게 정말 나쁜 날이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베이커가 용의자가 범행을 저지른 날을 그저 ‘나쁜 날’이라고 표현했을 뿐 아니라 ‘일진이 사나워 그런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는 부적절한 어감의 단어를 사용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경찰이 백인 범인을 변호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잇따르면서 일부에서는 “베이커 경찰이 인종차별주의자”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해 코로나 19가 겉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통계는 이미 여러 기관에서 보고된 바 있다.
증오·극단주의연구센터(CSUSB)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워싱턴DC와 뉴욕주 뉴욕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등 16개 주요 도시의 아시아계 증오범죄가 2019년 49건에서 2020년 122건으로 149%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코로나 19 팬데믹동안 아시아계 차별을 막고자 결성된 ‘아시아·태평양계(AAPI) 증오를 멈춰라’라는 단체도 올해 1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 두 달간 단체에 신고된 아시아계 혐오사건이 503건이라고 밝혔다.
코로나 19 이후 이러한 증오범죄가 증가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또 ‘앞으로 다음 세대들에게 어떠한 방향성을 제시해줄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은 소수 민족이라는 이유로 움츠러들지 말고 한인의 권익을 위해 우리 스스로가 당당하게 주류 사회에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한나 기자 ⓒ K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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