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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 인플레이션 먹구름, 장보기가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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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생산자물가지수 전년 대비 8.3% 상승… 2010년 이후 가장 큰 상승폭
서민 장바구니 물가 폭등 … 한인 식당계 “안 오른 품목이 없다” 울상
“장보기가 겁나요” “음식값을 안 올릴 수가 없어요”
프리스코에 거주하는 한인 주부 K(40대)씨는 지난 주말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난 후 영수증을 보며 깜짝 놀랐다.
평소 구매하던 한국 식료품들의 전반적인 가격이 오른 것을 크게 체감했기 때문이다. K씨는 “보통 2주~3주 꼴로 먹거리 장을 보는 편인데, 고등학생과 초등학교 자녀를 포함해 5인 가족의 식비로 약 400달러가 나왔다”라고 밝혔다. K씨는 “미국 마트 장 본 것까지 합하면 지난 주말에만 약 700달러를 소비했다”며 “인플레이션이란 말을 뉴스에서 많이 들었는데, 정말 실생활에서 확실하게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변에 친한 미국 엄마들과도 요즘 비슷한 체험을 종종 나눈다”라고 밝힌 K씨는 “전에는 그냥 선호하던 브랜드 위주의 식료품을 구입했다면 요즘은 마트 자체 브랜드 같은, 가격이 조금 저렴한 것을 선택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K씨는 “모든 것이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월 수입은 그만큼 오르지 않는 것 같아서 주머니를 죄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호소는 비단 K씨 뿐만이 아니다. DFW 한인 비즈니스 업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인 요식업자들은 최근 크게 오른 재료값 상승을 걱정했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P씨는 “냅킨을 포함해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부대 재료, 식재료 가격이 크게 올랐다. 안 오른 품목이 없다. 전에 10불 초반으로 살 수 있었던 대용량 요리용 기름만 하더라도 이제는 18불대를 넘고 있다”라고 전했다.
“전반적인 식자재 값이 상승했는데, 특히 고기 값이 많이 올랐다”라고 밝힌 P씨는 “가격을 안 올릴 수가 없는데, 최근 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음식 가격을 보고 이렇게 많이 올렸냐고 물을 때면 가슴이 답답하다”라고 밝혔다. P씨는 “올 여름에는 손님들이 제법 식당을 찾아서 이제 좀 나아지나 했는데, 지난 9월부터는 좀 한산한 분위기이다”라고 전했다.
미 식품업체들, 인플레이션 상승 예상보다 빠르다.
코로나 19 팬데믹 장기화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서기 위해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시행한 경기 부양책이 경제 위기를 넘기는 데 일조했지만 시장에 풀린 막대한 현금이 부메랑이 돼 물가 상승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플레이션은 장바구니 물가에서 더욱 크게 느껴지고 있는데, 올해 연말 미국 식료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소매업계 전망이 나왔다.
미국 내 최대 슈퍼마켓 체인업체인 크로거의 한 임원은 최근 “인플레이션 상승이 예상보다 빠르다. 하반기 2~3%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크로거의 최고재무관리자(CFO) 개리 밀러치프는 “합리적인 선까지는 업체측에서 부담하겠지만, 어느 단계에서는 소비자에게 일정 부분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미 대형 식품 업체들은 원재료 가격과 배송비, 인건비가 큰 폭으로 올라 비용 부담이 커진 상태이다.
미 최대 식품 유통업체 중 하나인 시스코는 가장 최근의 분기 보고서에서 10.2%의 식품값 인상을 보고했고, 이 여파는 식당과 일반 고객들에게 차례로 전달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5일(화), 계속되는 식료품 가격 상승의 원인(Here’s why your food prices keep going up)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팬데믹 시작 18개월 동안 식량 생산자들은 식량 부족과 병목 현상, 운송, 날씨, 인력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어 왔고, 이 모든 요인들은 식료품 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연방 노동부는 지난 1일(금), 2020년 8월 이후 식재료 도매업 분야의 인플레이션이 8.3% 상승했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연방 노동부가 2010년 수치를 측정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연간 상승율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같은 가격 상승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고기, 가금류, 생선, 계란은 작년에 비해 5.9퍼센트 올랐고, 팬데믹 이전인 2019년 8월 가격보다 15.7퍼센트 올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지난 8월 생산자물가지수(Producer Price Index , PPI)는 전월 대비 0.7%, 전년 대비 8.3% 오르며 2010년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PPI는 제조업자가 판매한 상품의 가격 변동을 측정한다. 즉, 원자재와 중간재 가격, 제품 출고가 등을 반영해 산출하는 제조업의 활력을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에 3~6개월 후 경기 흐름을 가늠하게 하는 경기 선행지수이다.
특히 PPI 상승은 원자재 가격이 올랐으며, 이 여파로 몇 개월 후 소비자 물가(CPI)가 오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공급망 문제,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다.
워싱턴 포스터는 “게토레이에서 점심 식사, 바나나에서 멸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품들이 필요한 곳에 쉽게 도달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 재료 공급 업체는 인력과 재료 부족, 트럭 운송 및 컨테이너선 운송의 예측 불확실로 인해 상품 생산 시작부터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인 리드 타임(lead time)이 더 길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요 대기업의 식품 비즈니스 컨설팅 및 시스템을 개발하는 JPG Resources의 혁신 및 전략 비즈니스 파트너인 라이플 휴즈(Rifle Hughes)는 “많은 분야에서 리드 타임이 8주에서 12주로 늘어났다. 식품 제조업체가 재료를 기다리느라 지체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보통 미 슈퍼 마켓에서 중간 통로에 있는 제품(통조림, 스낵, 시리얼)들은 종종 전 세계에서 조달되는 많은 재료를 필요로 하는데, 올해는 이상 기온의 극한 날씨, 노동 인력의 부족으로 작년보다 리드 타임이 더 길어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미 제빵 협회(American Bakers Association)는 감미료와 코코아 등을 포함한 핵심 원료 상위 50개 중 49개에서 가격 인상을 보고했다고 전했다.
해당 협회의 롭 맥키(Robb MacKie) CEO는 “지금부터 연말 사이에 모든 카테고리에서 제빵 제품의 가격이 5~10%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는 "글로벌 공급망은 너무 많은 매듭으로 뒤틀려 있어 트럭이나 기차에 실어도 되는 재료를 실어나르기 위해 훨씬 더 비싼 항공료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농업개량동맹(American Farm Bureau Federation, 농민의 이익을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1920년 결성된 조직)의 경제학자 셸비 스웨인 마이어스(Shelby Swain Myers)는 팬데믹 기간 동안 소비자 구매의 급증과 함께 다양한 산업의 폐쇄 및 재개가 "아코디언 효과"를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해운의 혼란도 이 같은 공급망 문제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미국에 들어오는 화물의 4분의 1 이상이 들어오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와 롱비치 항구에 화물선 수십척이 갇힌데다 동부 항구에서도 컨테이너 화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서 미국 내 공급난이 심화하고 있다.
푸드 마케팅 연구소(Food Marketing Institute, FMI)의 정책 개발 담당 부사장인 앤디 해리그(Andy Harig)는 “화물 선박이 캘리포니아 롱비치 항구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만 거의 8일이나 걸린다”고 밝혔다. 지난 주 LA와 롱비치 항에서 하역을 위해 선석이 지정될 때까지 산 페드로만에 정박한 선박들은 70여 척으로 불어났다.
여기에 화물 트럭과 트럭 운전사를 구하는 게 어려워진 것도 컨테이너 처리 적체 현상을 악화시키고 있다. 올 들어 LA항에서 처리하는 컨테이너 양은 지난해보다 30% 증가했으나, 화물트럭 운행 능력은 8%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 때문에 전체 컨테이너의 최대 30%를 수용하는 시카고 등 대형 유통 허브로 옮기는 작업도 지연되고 있다.
또한 컨테이너 비용 급증도 한 원인로 꼽힌다. 물류 서비스 회사인 Kuecker Pulse Integration의 최고 마켓팅 책임자인 브리틴 래드(Brittain Ladd)는 “지난해(2020년) 40피트 강철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데 1,920달러가 들었지만, 오늘날 비용은 무려 1만 4천달러로 뛰었다고” 밝혔다.
래드는 "2021년 초부터 모든 것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다"고 말했다. “경제가 풀리기 시작했지만 많은 기업들이 준비가 안 돼 있어서 화물 컨테이너의 불균형이 컸고, 즉시 운송 요금이 급등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은 언제까지 계속되나?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손해 보는 계층은 근로자와 소시민들이다. 임금 인상이 높은 인플레이션 상승률을 쫓아가지 못하고, 갖고 있는 현금과 예금의 가치가 인플레이션 상승률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연방준비제도(Fed) 등 각국 통화당국의 제1 정책목표가 물가안정인 건 인플레이션 부작용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화폐가치 하락은 저축 감소를 거쳐 투자 위축을 부르고, 국내 상품가격 상승으로 수출이 감소하고 수입이 늘어 국제수지가 악화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4일(월) 극단적인 변동을 나타내는 품목들을 제거한 대체 지표를 통해 살펴본 결과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특히 연방 노동부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8월 들어 전년 동월 대비 5.3% 증가해 12년래 최고점에 근접했다. 경제학자들은 CPI가 떨어질 것이라는 데에는 대체로 일치했지만, 어느 정도 하락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시적 현상이 끝난 뒤에도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at Davis)의 농업 경제학자 다니엘 섬너는 “인플레이션 추세에 농산물 가격, 특히 채소류가 영향을 덜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미 서부 지역의 가뭄과 고온으로 장담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상 고온으로 워싱턴 주의 양파 농사가 큰 피해를 입었고, 캘리포니아의 토마토, 멜론 등의 채소, 과실류도 피해가 크다. 또한 가뭄으로 인해 캘리포니아에서 쌀을 재배하는 이들이 올해 농사를 짓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섬너는 한국, 일본계가 많이 이용하는 자포니카(초밥) 쌀 가격이 내년에 20% 인상될 가능성이 있으며 올해 나파(Napa), 소노마(Sonoma) 벨리의 감소한 포도 수확이 내년 와인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박은영 기자 Ⓒ K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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