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백경혜] 친애하는 우리의 스타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1,240회 작성일 25-05-24 05:51

본문

백경혜 수필가
백경혜 수필가

  가게에 소녀 손님 둘이 들어왔다.

  남미계 십 대 청소년으로 보였다.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에 와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한국이라 하니 저희끼리 마주 보며 ‘역시!’ 하는 눈길을 주고받았다. 어느 도시냐고 묻길래 서울이라 하니 두 손으로 입을 막고 기뻐했다. 그 표정이 귀여워서 나도 같이 웃었다. 한국 문화가 좋아 나까지 친근하게 느껴지나 보다. 

  요새는 한국말로 인사하는 손님이 부쩍 늘었고 제법 소통이 될 만큼 실력을 갖춘 경우도 종종 있다. 한국말을 어찌 아냐고 물으면 대개는 K-pop과 K-drama를 통해 배우게 됐다고 한다. 드라마 내용을 신나게 설명도 하지만, 나는 모르는 것이라 고개만 끄덕끄덕한다. 그들은 청춘이고 나는 먹고살기 바쁜 중년인 것이다. 

  한국 음식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 동네 한국 식당엔 외국 손님이 더 많다. 놀랍게도 그들은 거의 모두 젓가락으로 식사한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내가 미국을 배우는 사이 그들은 한국을 배우고 있다. 


  나도 그 소녀들같이 외국 문화에 열광했던 때가 있었다. ‘딥 퍼플 (Deep Purple)’과 ‘레인보우 (Rainbow)’ 같은 록 밴드를 좋아했는데, 그중에 영국 그룹 ‘퀸 (Queen)’은 나에게 우상이었다. 고등학생이던 언니가 종일 듣던 노래가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였다. 그 노래는 아카펠라로 시작하여 발라드로 바뀌었다가 오페라틱 코러스가 이어지고 절정을 지나면 하드 록이 펼쳐졌다. 

  “아, 정신 사나워 못 듣겠네.” 시끄러우니 카세트를 꺼달라고 불평했지만, 언니는 들은 척도 안 했다. 하지만 내 귀는 이상한 그 노래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나 보다. 며칠 만에 따라 부르게 된 것이다. 

  “mama mia, mama mia, let me go…” 

  노래는 질리지 않았고 묘하게 마음을 휘감았다. 결국 나는 ‘퀸’의 모든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틈만 나면 ‘퀸’ 노래를 흥얼거렸고 ‘퀸’ 이야기를 했다. 멤버 네 사람은 모두 작곡자이자 뛰어난 연주가였고 퍼포먼스도 훌륭했다. 그들은 유럽의 낯선 청년이 아니라 내 곁에서 숨 쉬는 아이돌이었다. 언젠가 영국에 가서 그들의 공연을 눈앞에서 보고, 어쩌면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와 결혼 할 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얘기지만, 무모한 꿈도 꾸는 것이 청춘이리라. 


  1991년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을 주었다. 그에게 시집간다는 소망은 영원한 농담으로 머물게 되었다. 직장 일로 해외를 다닐 때 런던과 뉴욕에 가면 레코드 가게에 들러 퀸 CD를 사 모으는 것이 쏠쏠한 재미였다. 지금도 가끔 그 CD들을 쓰다듬으며 나의 아이돌에게 조용히 경의를 표한다. 지금 살아있다면 70대 노인이겠지만, 그가 무대에 오른다면 나는 틀림없이 영국행 비행기표를 샀을 것이다. 그 기막힌 라이브 공연을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 

  

  「Bohemian Rhapsody」를 들으면 누런색 다이얼 전화기가 생각난다. 그 전화기 앞에서 짝사랑 오빠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던 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I want to break free」와 「Save me」를 매일 흥얼거렸던 고3 때 교실이 떠오르기도 한다. 「Love of my life」를 열정적으로 따라 불렀던 중학생 단발머리 내 모습도 소환된다. ‘퀸’은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2018년 개봉한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 영화 「Bohemian Rhapsody」를 우리 동네 AMC에서 관람했을 때, 라이브 장면마다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극장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함께 노래할 땐 진짜 무대 앞에 앉은 듯 가슴이 벅차 왔다. 관객들은 세월을 뛰어넘고 있었다. 대부분 나 같이 주름진 중년이 되었고 더러는 대머리 아저씨가 되었지만, 우리는 ‘퀸’을 사랑했던 소년, 소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스타를 가지는 것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옛 스타는 캡슐에 싸여 마음속 자판기 같은 곳에 보관된다. 어느 날, 어느 순간, 무심히 눌린 버튼에 그 캡슐이 굴러 나오면 우리는 그 시절 스타와 어린 나를 함께 만나게 된다. 그날의 소리를 듣고, 그때의 풍경을 보게 된다. 심장이 펄펄 뛰던 청춘의 광경은 이젠 색이 바래 더 아름답다. 

  우리 가게에 들러서 K-pop 스타일의 멋진 양말을 사 가는 십 대 아이들은 어떤 추억을 만들고 있을까. 나는 카세트테이프로 외국 스타를 만났지만, 요즘은 영상으로 전 세계 셀럽들을 만나니 눈과 귀가 수집한 정보는 더 큼직한 추억 캡슐을 만들어 주지 않을까. 아마도 BTS와 뉴진스(NewJeans) 같은 한국 스타들도 많은 이에게 그들의 젊은 날을 소환해 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자식이 나의 스타였던가. 세상 물정에 너무 어두워진 것 같다. 어머니는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열렬한 팬이다. 어머니에게도 아이돌이 있는 마당에 나도 분발해야겠다. 

  다시 가슴을 뛰게 해 줄 스타를 찾아봐야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지난 7월 7일 미국 연방 국세청인 Internal Revenue Service에서 중대한 발표를 했다. 그동안 IRS는 미국 세법상 501(c)(3) 규정에 따라 면세 자격을 유지하는 비영리단체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1954년 제정된 일명…
    회계 2025-07-12 
    에밀리홍 원장결과가 말해주는 명문대 입시 전문 버클리 아카데미 원장www.Berkeley2Academy.com문의 :[email protected] 미국 대학 순위 리스트 총정리: US 뉴스 vs. 니쉬 vs. 포브스대학은 어디가 좋나요?최고의 레…
    교육 2025-07-12 
    고대진 작가◈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lt…
    문학 2025-07-12 
    크리스틴손,의료인 양성 직업학교,DMSCare Training Center 원장(www.dmscaretraining.com/ 469-605-6035)의료 커리어의 시작, DMS Care Training병원에서 심전도 검사를 받아본 경험이 있으신가요?가슴에 전극을 부착하…
    리빙 2025-07-12 
    음주관련 사고와 보험 음주와 보험을 관련지어 생각할 때 중요한 2가지의 보험을 생각해 볼 수 있다.첫째는 술을 판매한 상점이나 식당업주를 위한 리커 라이어빌리티 보험과 둘째로 …
    리빙 2025-07-12 
    지난주에 많은 비가 내리더니 여름 내내 100도를 넘는 살인더위가 어느덧 빗줄기에 씻겨 내려가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기운을 더합니다. 지난 시간은 달라스 한국문화원 가족들과 내내 같이 방문했던 산타페(Santa Fe)의 아침 저녁으로 65도 한 낮의 기온의 85…
    여행 2025-07-04 
    인천항에서 출발하는 노르웨이지언 크루즈를 타며, 나는 우리나라도 비로소 국제 크루즈시대가 열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껏 크루즈들이 거쳐간 수 많은 항구중 우리나라 항구는 한 곳도 없어, 아쉬웠는데, 한류에 힘입어, 드디어 인천이 국제 크루즈 출발지가 된 것이다. 크…
    문학 2025-07-04 
    박운서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2025년이 벌써 반환점을 지나는 시점이다. 너무나 많은 …
    회계 2025-07-04 
    SANG KIM REALTREALTOR® | Licensed in Texas -Century 21 Judge Fite #0713470Home Loan Mortgage Specialist - Still Waters Lending #2426734 S…
    부동산 2025-07-04 
    조진석DC, DACBR, RMSKProfessor, Parker UniversityDirector, Radiology Residency Program at Parker UniversityVisiting Fellowship at the Sideny Kimmel Medic…
    리빙 2025-07-04 
    사업체 장비고장과 보험우리 나라에서 속담으로 사용하는 말 중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뜻하는 의미는 말 그대로 미리 외양간을 잘 손질하고 튼튼히 하면 자기가 아끼는 소를 잃지 않아도 된다 라는 말과 같다. 요즘은 누구나 알다시피 모든 비지…
    리빙 2025-06-27 
    1970년대의 일이다. 한국에 처음으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될 무렵 한국에는 최신형 고속버스가 도입 되었고 그 당시 고속버스 운전사는 아주 특별한 대단한 직업으로 인식이 되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의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자동차가 드물었던 시대를 반영하는 예…
    여행 2025-06-27 
    2025년 6월 현재, 미국 상원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도한 새로운 세제개편안, 이른바 'One Big Beautiful Bill Act' (이하 OBBB)에 대한 심의가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는 2017년 제정되었던 'Tax Cuts and …
    회계 2025-06-27 
    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과 여행을 떠났다. 타지 생활 동안 제대로 된 여행 한번 못했던 아들이 이 길 끝에서 어떤 위안을 얻길 바랐다. 졸업식에 맞춰 다른 가족들이 도착하기 전, 며칠을 내어 스모키 마운틴으로 향했다. 굽이진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모퉁이를 돌 때마다 …
    문학 2025-06-27 
    공학박사박우람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남아메리카에서 인기 있는 트레스 라체스 케익(Tres Leches Cake)은 이름 그대로 케익에 세 가지 (t…
    리빙 2025-06-27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