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외로울 땐 ‘김치’를 담는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1,645회 작성일 25-02-14 09:17

본문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언젠가부터 나는 이 곳의 삶이 너무 쓸쓸하거나 백지영의 노래 ‘총맞은 것처럼’에 나오는 가사처럼 가슴이 뻥 뚫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을 때면 김치를 담는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웃들은 모두 미국인들이고, 보고싶은 아들들이나 친구들은 다들 너무 멀리에 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김치를 떠올린다.  두 식구 사는 것이니 아이들 클 때처럼 김치를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나는 끊임없이 김치를 담글 생각을 한다.  미국 마켓 장을 보러 가서도 그곳에 있는 모든 채소들을 이용하여 김치를 담는 것을 시도한다. 파는 물론 머스터드 그린을 이용하여 갓김치를 담고 흔한 순무로도 무김치를 담는다.   베이질 같은 허브를 이용하여 김치를 담을 때도 있고, 양파가 세일을 하면 양파로, 텃밭에 고추가 많이 열리면  고추 소박이를 담는다. 김장철은 말 할 것도 없고, 봄이나 무더운 여름, 가을에도 김치를 한 박스씩  담을 생각을 하면, 갑자기 활력이 생기고 기운이 솟아 오른다. 이유없이 몸이 찌뿌둥하고 입맛이 없을 때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 역시 입맛 돌게 하는 재료를 찾아 김치를 담그는 일이다. 늘 혼자서 때론 남편과 함께 둘이 하는 일이지만 배추를 사올 때부터 우리는 잔치 할 준비를 한다. 김치속에 넣을 무우채를 썰며, 파를 다듬고, 생강이나 마늘을 갈며, 나는 어린시절 엄마가 김치를 담그던 모습을 회상하기고 하고, 그때 생김치를 쭉 찢어서 입에 넣어 주며 웃으시던 그 편안하고 그리운 미소를 떠올린다. 


김치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친정엄마 탓도 있지만, 난 어쨌든 형제 중에서도 김치를 제일 좋아하는 식성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김치 간을 보는 것은 항상 내 몫이었다. 짠지 싱거운지, 엄마가 즉석에서 버무린 김치를 한 잎 입안에 넣어주면 난 수랏간 나인처럼 대번에 김치 간을 잘 알아 맞추었다. 커서는 어떤 양념이 부족하고 넘치는지에 대해서도 곧잘 알아, 엄마는 거의 내 간에 의존해서 김치를 담그셨다. 그러면서 엄마는 음식은 먹을 줄 알아야 , 만들 줄도 안다고 하셨다. 또한 남도 부리려면 내가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잠깐이나마  가게를 하면서 그 말이 진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요즘이야 인터넷이 발달하여 입맛대로 골라서 주문만 하면 팔도의 온갖 김치가 배달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사먹는 김치는 내가 직접 담근 김치만 못하다. 각종 조미료가 들어간 시판김치는 처음에는 맛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질려서  한 두번 먹다보면  거의 찌개용으로만 사용하게 된다.


특히 갈치젓, 조기젓등 각종 젓갈이 발달한 전라도식 김치는 생김치일때도 맛이 있지만, 익으면 덜큰한 맛이 나는 것이 오감을 자극하며, 오래도록 감칠 맛이 입안에 남아도는 것이 중독성이 있다. 예전엔 정말 다른 반찬 필요없이 잘 익은 김장김치 한 포기면  겨울반찬이 걱정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요즈음은 대형 한국마켓이 주변에 산재해 있고, 김치가 인기있는 한류음식으로 소문이 나서 어딜 가나 김치재료를 구 할 수 있지만, 이민 초기였던  90년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우린 오클라호마에서 한 3년정도를 살았는데, 김치를 담기 위해선 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파머스 마켓으로 가서 장을 봤다. 그곳엔 각종 채소가 정말 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는데, 당시 한 10불어치 를사면, 트럭에 야채 장사를 해도 될 만큼의 양을 주었다. 다행히 한국무우를 제외한 웬만한 야채는 다 있어서  순무를  무 대신 사와  배추속에도 넣고, 양배추김치는 질리도록  만들어 먹었다. 고추가루는 거의 한국에서 공수를 해왔고, 젓갈 대신 월남마켓에 흔한 피시소스를  사용했는데, 그 맛에 익숙해진 탓인지, 난 지금도 피시소스를 애용하고 있다.


흔히들 마음을 위로해주고 먹으면 힐링이 되는 음식을 소울 푸드이라고 한다. 나의 소울 푸드는 말할 것도 없이 ‘김치’ 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김치를 좋아하고  외로울땐 김치를 담글생각을 하는 것은 김치를 담글 때 생기는 설레임때문 인 것 같다. 절간 처럼 조용한 집안에  채칼이나   소쿠리, 큰 대야가 등장하고, 끊임없이 재료를 손질하고 써는 과정에서 시끌벅적이 연출되며 한 바탕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그야말로 사람사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얼마전 캐나다에서 입양단체 일을 하는 지인이 입양아들과 함께 김장을 하는 사진을 보내왔는데,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 외국인들이 김치에 애정을 보이는 경우가 더 많은데, 한국인이 김치도 담글 줄 모른다면 곤란한 일이다.  암튼 외로울땐 김치를 담가 보시라 , 그러면 외로움은 사라지고 침샘이 고이고 , 살 맛이 날 것이다. 어느새 2월이 되었다. 벌써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달, 김치 담는 걸로 이 달을 시작하고 싶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결과가 말해주는 명문대 입시 전문 버클리 아카데미 원장www.Berkeley2Academy.com문의 : [email protected]요즘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전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경제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가 교육청 (Department of …
    교육 2025-03-14 
    봄의 길목에 서서 바쁜 일상을 탈출하여 무심코 산과 물을 건너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3월과 더불어 시골길을 걷는 것은 탄생하는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며 곳곳에 숨어있는 자연의 멋을 몰래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곳곳에 기지개를 펴는 송송이 달려있는 새순 …
    여행 2025-03-14 
    Hmart이주용차장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오늘은 샐러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샐러드하면 떠오르는 대표는 단연 시저샐러드 입니다. 로메인 상추와 크루통(Crouton, 튀긴 빵조각)에 파마산 치즈, 레몬즙, 계란, 마늘, 올리브오일 등으로 만든 드레싱을…
    리빙 2025-03-14 
    큰아이가 가족을 데리고 한국 처가에 다녀오는 동안, 기르던 애완견을 우리 집에 맡기고 갔다. 처음 제안이 나왔을 때 나는 선뜻 허락하지 못했다. 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개와 가까이할 자신도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애는 메이플을 맡아달라고 간절하게…
    문학 2025-03-07 
    최근 미국 연방정부는 대규모 인력 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연방 공무원 인력 감축과 채용 제한을 명령하였으며 특히 근무기간이 1년 미만인 수습직원들을 대상으로 해고조치를 단행했고 이로 인해 수만명의 연방 공무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연방정…
    회계 2025-03-07 
    유레카 스프링스(Eureka Springs) 여행을 하면서 보는 야산을 끼고 조그맣게 형성된 도시의 아기자기함, 그리고 곳곳에 이곳의 특색을 살려 많은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이벤트들이 있지만, 산을 끼고 내려오는 수정처럼 맑은 이곳의 물을 보노라면 긴 여행의 피로를 말끔…
    여행 2025-03-07 
    엄브렐라 보험흔히 보험을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 비유한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속에 우산이야 말로 정말 고마운 존재인 것처럼, 갑자기 당한 사고 보상 책임 앞에 보험이 바로 그런 것이라는 말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크든지 작든지 문제가 생기면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
    리빙 2025-03-07 
    Hmart이주용차장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오늘은 밥도둑이라는 단어의 원조격인 게장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노르스름한 장이 담긴 게 껍데기에 밥을 비비면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흔히 밥도둑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게장은 어떤 재료…
    리빙 2025-02-28 
    공학박사박우람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지난 칼럼에서 양자 컴퓨터의 배경 원리가 되는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을 간략히 알아보았다. 원자처럼 매우 미세한…
    리빙 2025-02-28 
    박운서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바다건너 고국에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회계 2025-02-28 
    미주경희사이버대학교동문회 임원방에서 우리도 유명 강사님들을 초청하여 줌강연회를 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동문은 물론이고,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도 들을 수 있도록 오픈 강의로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줌강연은 이미 여러 단체에서 하고 있지만, 동문의 화합과 결…
    문학 2025-02-28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단순히 운이 좋아서 돈을 번 것일까, 아니면 그들만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투자 원칙이 존재하는 것일까? 성공한 투자자들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이들은 일반적인 대중 심리를 따르기보다 역발상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움직이며, 이를…
    부동산 2025-02-28 
    핫 스프링스(Hot Springs)의 아침은 다운타운에서 216피트, 해발 1256피트 높이의 산에 위치한 핫 스프링스 마운틴 타워(Hot Springs Mountain Tower)에 비친 강렬한 태양빛 쇼와 같이 시작이 됩니다. 한적한 도시이지만 다운타운의 중심이라 …
    여행 2025-02-28 
    조나단김(Johnathan Kim)-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졸업- 現 핀테크 기업 실리콘밸리 전략운영 이사자녀가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면접 요청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학 면접은 입학 가능성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라기보다, 지원…
    리빙 2025-02-28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순대와 생…
    문학 2025-02-2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