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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꿀 것” … 조지 플로이드 고향 휴스턴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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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 수 없다’ 절규 후 보름 만에 장례식 … 4시간 눈물의 작별
“조지 플로이드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그는 저항 운동의 주춧돌이 됐다.”
미국 백인 경찰의 가혹한 폭력에 희생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9일(화) 46년의 생을 마감하고 고향 땅 휴스턴에 잠들었다.
플로이드 장례식은 이날 휴스턴 ‘파운틴 오브 프레이즈’(Fountain of Praise·찬양의 분수) 교회에서 유족과 조문객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지난달 25일 미국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에 참혹하게 숨진 뒤로 정확히 보름 만이다.
순백의 옷을 차려입은 유족과 검은색 정장의 조문객은 4시간 동안 진행된 장례식에서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복음 성가를 따라 부르며 플로이드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조지 플로이드의 동생 로드니 플로이드는 “전 세계는 형을 기억할 것이고, 그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흐느꼈다.
또 다른 동생 필로니즈 플로이드는 “형은 나에게 슈퍼맨이었다”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장례식장 무대 옆에는 천사의 날개를 단 플로이드의 초상화가 걸렸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장례식장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플로이드의 딸 지아나를 거명하면서 “아빠가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인종적 정의를 실현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장례식에는 휴스턴을 지역구로 둔 앨 그린·실라 잭슨 리 연방하원의원, 실베스터 터너 휴스턴 시장과 아트 아세베도 경찰서장, 장례비를 전액 부담한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할리우드 배우 제이미 폭스와 채닝 테이텀 등이 참석했다.
장례식은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됐고, 전 세계 시민들이 지켜봤다. 터너 휴스턴 시장은 “남아공, 캐나다, 나이로비, 베를린, 한국과 유럽에서 플로이드 이름이 언급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라고 말했다.
AP통신은 “조지 플로이드는 전 세계에 변화의 힘을 일으킨 ‘빅(Big) 플로이드’가 됐다”고 보도했다. 일부 연사는 플로이드가 촉발한 전 세계적인 인종차별 항의 시위를 언급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민권운동가 앨 샤프턴 목사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저 높은 곳의 사악함”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면서 “플로이드는 저항 운동의 주춧돌이 됐다”고 평가했다.
윌리엄 로슨 목사는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백악관을 청소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례식 후에는 플로이드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미국판 노제’ 행사가 40분가량 진행됐다.
플로이드가 잠든 금빛 관은 한 쌍의 백마가 이끄는 하얀 색 마차에 실려 1마일(약 1.6㎞)가량의 거리를 천천히 옮겨졌다.
그 뒤를 따르는 다른 마차에는 플로이드가 휴스턴 고교 시절 풋볼 스타선수로 활약했던 것을 기념해 풋볼 모양의 갈색 풍선 두 개가 매달렸다. 경찰의 호위 아래 마차가 지나가자 길가에 늘어선 시민들은 플로이드의 이름을 연호했다.
시민들은 플로이드의 마지막 절규인 ‘숨 쉴 수 없다’를 새긴 셔츠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는 문구가 들어간 마스크 등을 착용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노제를 마지막으로 플로이드는 휴스턴 외곽 메모리얼 가든 묘지에 묻혔다. 플로이드의 마지막 안식처는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옆자리였다. 휴스턴 시는 플로이드가 영면에 들어간 날을 기념, 6월 9일을 ‘조지 플로이드의 날’로 선포했다.
정리 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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