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인상부터 심사 강화, 시민권 박탈 소송 확대까지 … 달라지는 미국 시민권 정책

영국 출신 코너 리드(29)는 지난 6월 미국 시민권자인 아내와 함께 영주권 인터뷰를 받기 위해 연방 이민국(USCIS)을 찾았다.
미국에서 9살 때부터 살아온 그는 시민권자인 아내와 세 살배기 쌍둥이 아들을 둔 가장이었다.
가족초청 청원(I-130)도 이날 승인되면서 영주권 취득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난 직후 같은 건물 안에서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그를 체포했다. ICE는 과거 내려진 추방 명령이 아직 유효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리드는 현재 루이지애나의 ICE 구금시설에 수감된 상태에서 추방 절차를 진행 중이다.
비슷한 일은 한 달 전에도 있었다. 리투아니아 출신 아이리다 굴드는 미국 시민권자인 육군 참전용사 남편과 함께 영주권 인터뷰를 받기 위해 USCIS를 방문했다.
USCIS는 결혼이 정상적인 혼인관계임을 인정해 가족초청 청원(I-130)을 승인했지만, 몇 시간 뒤 ICE는 과거 추방 명령을 근거로 그녀를 체포했다. 굴드는 66일간 구금된 뒤 결국 리투아니아로 강제 추방됐다.
영주권을 받기 위해 정부가 요구한 절차를 밟으러 갔다가 오히려 체포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미국 이민사회에는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합법적인 이민 절차와 귀화 시민권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 합법 이민도 더 이상 안전지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불법체류자 단속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속 범위가 국경과 불법체류자를 넘어 가족초청 영주권, 취업비자, 학생비자, 귀화 시민권 절차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시민권자와 결혼한 배우자가 영주권을 신청하는 경우에도 과거 최종 추방 명령(Final Order of Removal)이 남아 있으면 인터뷰 현장에서 ICE가 체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토안보부(DHS)는 가족초청 청원(I-130)이 승인됐더라도 기존 추방 명령이나 이민법 위반 사실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결혼이 진실하다는 사실과 미국에 계속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과거에도 추방 명령이 있는 신청자가 인터뷰 과정에서 체포될 가능성은 있었지만, 최근에는 집행 강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분석한다.
◈ 시민권 취득 문턱도 높아진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민권 취득 절차 전반도 강화하고 있다.
국토안보부(DHS)는 지난 6월 시민권 신청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는 내용의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시민권 신청서(Form N-400) 수수료는 우편 접수의 경우 기존 760달러에서 1,330달러, 온라인 접수는 710달러에서 1,280달러로 약 75~80% 인상된다.
행정부는 신청자가 직접 혜택을 받는 귀화 절차의 비용을 신청자가 부담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민단체들은 높은 수수료가 저소득층 영주권자의 시민권 취득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수수료뿐 아니라 심사도 한층 엄격해지고 있다.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최근 들어 범죄기록과 세금 납부, 해외 체류 이력은 물론 영주권 취득 과정에서 허위 사실이 있었는지까지 폭넓게 확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귀화 심사의 핵심 요건인 ‘선량한 품성(Good Moral Character)’에 대한 판단도 이전보다 엄격해지는 추세다.
◈ 시민권도 박탈될 수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귀화 시민권자에 대한 사후 검증이다.
법무부는 올해 시민권 박탈(denaturalization)을 주요 집행 과제로 제시한 뒤 실제 소송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귀화 시민권자 17명을 상대로 시민권 박탈 소송을 제기했다. 대상자는 아동 성범죄, 금융사기, 의료보험 사기, 마약 유통, 신분 사기 등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귀화 과정에서 이를 숨긴 혐의를 받고 있다. 법무부는 “사기와 허위 진술을 통해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들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5월에도 테러단체 지원, 전쟁범죄 은폐, 간첩 활동, 성범죄 등을 숨긴 혐의를 받는 귀화 시민권자 12명을 상대로 별도의 시민권 박탈 소송을 제기했다.
다만 현재까지 제기된 소송 대부분은 귀화 과정에서의 사기나 허위 진술, 또는 중대한 범죄 은폐와 관련된 사례다. 시민권은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없으며, 법무부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이 이를 인정해야만 박탈된다.
◈ “신분보다 취득 과정을 본다”
최근 사례들의 공통점은 현재의 신분보다 그 신분을 어떻게 취득했는지를 정부가 더욱 엄격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추방 명령이 남아 있는 신청자는 영주권 인터뷰 현장에서 체포될 수 있고, 위장결혼이나 허위 서류 제출로 영주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수년이 지난 뒤에도 형사처벌과 추방 절차를 받을 수 있다.
귀화 이후에도 시민권 취득 과정에서의 사기나 허위 진술이 드러나면 시민권 박탈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영주권자나 귀화 시민권자가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민 절차에서 허위 사실을 기재하거나 범죄 경력을 숨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앞으로 훨씬 엄격한 법 집행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은 이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영주권 취득 과정과 귀화 시민권 유지까지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검증 체계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사회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이민 절차의 정확성과 투명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유광진 기자 ⓒ K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