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동설이 진리이던 시대가 있었다. 학자들은 지구를 우주 한가운데 단단히 고정해 놓고 하늘의 움직임을 설명하려 했다. 관측이 계산과 어긋나면 전제를 의심하는 대신 궤도 위에 또 하나의 궤도를 덧그렸다. 17세기, 그 전제를 흔든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에 세워져 자신의 주장을 철회해야 했다. 재판정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은 지금도 있다. 1956년 창립된 Flat Earth Society는 여전히 웹사이트를 열어 놓고 회원을 받는다.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고정관념은 고집으로 굳고, 고집은 에코 체임버를 만든다. 내 생각과 같은 말만 울려 돌아오는 방,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옳게 들린다. 그 방을 여럿이 함께 쓰면 한 사람의 착각은 집단의 왜곡이 된다. 이것은 400년 전 이야기도, 별난 사람들 이야기도 아니다.
며칠 전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SK하이닉스가 신입 채용에서 학력 제한을 전면 폐지했다는 소식이다. ‘4년제 학사 이상’이라는 문구를 공고에서 아예 지웠다. 대신 세 가지를 보겠다고 했다. 문제의 뿌리를 파고드는 본질적 탐구 역량,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배워내는 변화 적응력, 다른 관점과 함께 일하는 사고적 다양성. 게다가 면접에서는 AI를 써도 된다. 다만 AI를 다루는 솜씨가 아니라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풀어내는지를 본다고 못을 박았다.
지금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잘나가는 회사가 학벌의 문턱을 먼저 허문 것이다. 이것은 한 회사의 채용 소식으로 읽히지 않았다. 시대가 사람을 재는 잣대를 바꿨다는 선언으로 읽혔다.
그리고 그 선언 앞에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분별하는 눈, 생각을 바꿀 용기, 생각의 힘을 길러 줄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분별하는 눈을 가지고 똑바로 보아야 한다.
지식은 흔해졌다. 검색되고, 요약되고, 몇 초 만에 만들어진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지능이 이제 어디에나 있는 흔한 상품이 되었다고 했다. 흔해진 것의 값은 떨어진다. 이력서에 적힌 학교 이름과 자격증 목록은 점점 그저 글자가 되어 간다. 값이 오르는 쪽은 따로 있다.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알아보는 눈, 도구를 부려 쓰는 손,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생각을 바꾸는 유연함이다.
명문 대학에 들어가면 길이 열린다고 믿었다. 이름 있는 빅테크 회사에 취직하면 그것으로 됐다고 여겼다. 그런데 올해 1분기에만 미국 테크 업계에서 7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AI와 자동화가 그 이유였다. 간판이 평생을 보장해 주던 시대는 과거가 된 것이다. 우리가 오래 써온 잣대의 유효기간은 이제 지났다.
그러기에 생각을 바꿀 용기를 내야하고 생각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근육은 쓸수록 붙고, 안 쓰면 빠진다. 묻는 연습, 의심하는 연습, 틀린 것을 인정하고 고치는 연습을 해야한다. 생각의 근육은 그렇게 길러진다. 나이와도 상관이 없다.
그리고 도구다. AI는 아직은 대단한 무엇이 아니다. 영어 이메일을 다듬고, 메뉴판 문구를 열 가지로 뽑아 보고, 지난달 매출에서 무엇이 빠졌는지 물어볼 수 있는 도구다. 다만 도구는 질문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대답한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도구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AI를 쓴다는 것은 결국 질문하는 연습이고, 질문하는 연습이 곧 생각하는 연습이다. 두려워하며 밀어낼 것이 아니라, 생각 근육을 기르는 운동기구로 삼을 일이다.
우리 커뮤니티에도 우리만의 천동설이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부터 묻고 상대를 가늠하던 버릇이 그렇다. 자녀가 어느 대학에 갔는지로 부모의 성적표를 매기던 습관이 그렇다. 오래 해온 방식이니 앞으로도 통할 거라는 믿음이, 새로운 도구 앞에서 “나는 그런 거 몰라” 하고 먼저 손을 젓던 순간들이 그렇다.
경기가 어렵다는 말은 이제 인사말이 됐다. 손님은 줄고 비용은 오르고, 버티는 것 자체가 하루의 목표가 된 가게들이 있다. 이런 때일수록 마음은 익숙한 쪽으로 움츠러든다. 늘 하던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해 보인다. 하지만 어려운 계절일수록 필요한 것은 더 굳은 고집이 아니라 더 열린 질문이다. 그리고 질문은 혼자보다 여럿이 할 때 힘이 세다. 서로 묻고, 서로 배운 것을 나누며 이 계절을 함께 건너가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했다. 이 말이 2,400년을 견딘 이유는 그것이 겸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능력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묻는다. 묻는 사람만이 배운다. 배우는 사람만이 바뀐다.
돌아보면 천동설의 시대에도 별들은 멀쩡히 제 길을 가고 있었다. 문제는 하늘이 아니라 하늘을 읽는 낡은 지도였다. SK하이닉스가 채용 공고에서 학력 칸을 지운 것도 같은 일이다. 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읽던 낡은 지도를 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 차례다. 각자의 서랍에서 오래 써온 지도를 꺼내 물어보자. 이 지도로 지금의 하늘이 읽히는가.
우리 안의 천동설을 의심하는 것, 변화는 늘 거기서 시작됐다. 그리고 우리가 믿든 믿지 않든, 지구는 오늘도 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