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가 북텍사스에 왔다. 달라스는 월드컵 개최 도시 가운데 가장 많은 경기를 치렀다. 아르헨티나가 왔고, 잉글랜드가 왔고, 프랑스와 스페인이 왔다. 달라스 페어파크의 팬 페스티벌도 내내 들썩였다.
그리고 보름이 지났다. 지금은 너무 조용하다. 커뮤니티 행사도 뜸하고, 거리를 오가는 발걸음도 줄었다. 축제가 끝난 뒤의 허전함일까. 아니면 뭔가 정말 달라진 걸까.
느낌만으로 말하고 싶지 않아 숫자를 찾아보았다.
월드컵 조직위는 대회 전 북텍사스에 15억~21억 달러의 경제 효과를 예상했다. 알링턴시는 6월 호텔 숙박세로 3,100만 달러를 거두며 시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같은 기간, 경기장 근처의 한 비스트로는 매출이 70%가량 떨어졌고, 옆 피자집은 도로 통제와 주차난에 한달 간 12,000 달러 매출을 잃었다. 달라스와 휴스턴 호텔의 70%는 예약이 기대에 못 미쳤다.
같은 여름, 같은 도시다. 한쪽에서는 ‘사상 최대 경제효과’를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게 문을 닫을까 걱정한다.
발표되는 숫자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
한인 사회의 숫자는 또 다른 곳에 있다. 한 한인 마켓에서 일하는 분은 요즘 가족 단위 손님들의 그로서리 카트가 예전의 절반도 못 찬다고 했다. 유효 기간이 임박한 상품을 할인대에 내놓으면 한참을 남아 있던 것이 이제는 금방 팔린다고도 했다.
어떤 경제 지표보다 정직한 수치가 여기 있다. 카트의 높이, 그리고 할인대가 비워지는 속도.
식당을 운영하는 한 동포는 로컬 손님들이 뜸해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도 살림이 녹록지 않으니 별미처럼 즐기던 한식을 먹으러 오는 발걸음이 줄었을 거라고 했다.
DK 파운데이션에 도착하는 신청서도 달라졌다. ‘더 나눔’은 주로 독거 어르신, 장애인,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계가 흔들린 동포들의 손을 잡아 왔다. 그런데 요즘은 가장의 실직으로 버티다 끝내 생활고로 손을 내미는 가정의 신청이 오고 있다. ‘더 키움’ 장학금도 예년에는 마감일이 닥쳐야 몰리던 신청이 올해는 일찌감치 지난해 한 해 수준을 채웠다. 서류 한 장에도 표정이 있다. 우리는 지금 그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있다.
이 달갑지 않은 현실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첫째는 전쟁이다. 2월 말 시작된 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아직도 진행중인 시소 게임이 되었다. 6월 한때 휴전으로 유가가 내렸지만 그 휴전은 다시 무너졌다. 전쟁 전 갤런당 2.5 달러였던 개솔린은 5월에 4.5 달러를 넘겼고, 현재 3.7 달러 선이다. 6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5% 올랐고, 개솔린만 26.7% 뛰었다. 전쟁은 피로감에 밀려 뉴스 1면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우리 지갑에서는 매일이 1면이다.
둘째는 이민 정책이다. 연일 강경 정책이 발표되고, 이민자들은 숨는다. 이제 영주권자도 시민권자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히스패닉 인구가 많은 텍사스에서는 사람들이 나다니지 않으니 교통사고가 줄어 사건이 줄었다는 한인 변호사의 말을 들었다. 그 여파는 한인 카이로프랙틱 클리닉으로도 이어진다. 공포는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경제에는 정확히 반영된다. 여기에 사다리 한 칸이 없어졌다. 3월 부터 영주권자에게 SBA 융자의 문이 닫혔다. 이민자의 성실을 자본으로 바꿔 주던 통로가 좁아진 것이다.
셋째는 AI다. 인간처럼 추론하는 범용인공지능(AGI)의 시대가 곧 온다고 한다. 한국의 한 저명한 뇌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 나이가 꽤 들어 살 날이 비교적 길지 않다는 것이 다행이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모르는 세상인데, 어린 초등학생들은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내야 하는가.” 웃으며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물가는 지갑을 흔들고, 정책은 발걸음을 묶고, AI는 미래의 지도를 지운다. 이민자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것은 삼중고다.
공식 지표를 보면 경제는 비교적 견조해 보인다. 6월 실업률은 4.2%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테크 업계에서는 AI로 인해 올해 14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전체적으로 일자리 상황은 녹록치 않다.
숫자와 체감은 왜 이렇게 어긋나는가.
기준을 들여다보면 답이 보인다.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임금을 받고 일하면 취업자로 분류된다. 아버지 가게에서 무급으로 15시간 이상 일해도, 현금 대신 숙식으로 대가를 받아도 취업자다. 일자리를 잃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시간이 반으로 줄어도 모두 취업자다. 그래서 원하는 만큼 일이 없는 사람과 구직을 포기한 사람까지 포함한 광의의 실업률(U-6)은 올해 8% 안팎, 공식 수치의 두 배 가까이다.
지표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다 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묻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민자들은 성실하게 일했고, 과거 그 대가는 비교적 정직하게 주어졌다. 부지런함이 곧 전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실이 기본값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세상의 급변을 읽어내는 분석력, 그 원인을 추적하는 눈,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 실패의 바다에 빠지지 않을 전략이 함께 있어야 한다. 어제 맞던 것이 오늘 틀리는 세상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이다. 어렵지만 찾아보면 도움을 신청할 곳이 있고, 손을 내미는 이웃이 있다. 도움을 청하는 일은 자존심이 상하고 아프다. 그러나 도움을 청하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기술이다. 지금 신청서를 쓰는 손이 몇 해 뒤 후원금을 보내는 손이 될 수 있다.
텍사스에 사는 것도 다행이다. 미주 제일의 한인타운을 가진 남가주는 잘나가던 비즈니스가 문을 닫고, 뉴욕에서는 연방세에 주세와 시세까지 삼중 세금을 감당하며 간신히 버틴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 비교는 자랑이 아니다. 우리에게 아직 여력이 남아 있다는 뜻이고, 여력은 나눌 때만 의미를 갖는다.
긍정은 어려움을 부인하는 낙관이 아니다. 어려움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도 내일 아침 다시 가게 문을 여는 태도, 다시 이력서를 고치는 태도, 다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태도다.
우울에 잠기기보다 손을 잡고 서로 격려하며 힘을 내 뛰는 편이 낫다. 땀 흘리며 뛰는 그 과정이 인생의 챕터를 값지게 메워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훗날 우리가 오래 이야기할 챕터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해가 아니라, 아마 이 여름일 것이다.
오늘도 주어진 일터에서 성실하게 달리는 우리 모두에게 서로 박수를 보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