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내게 딸이 처방전을 내밀었다. 레이지 룸에 한 번 가보겠냐고. 웃음이 나왔다. ‘게으른’이라는 뜻의 lazy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면 몸이 회복되는 방 같은 게 있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lazy가 아니라 rage였다. 물건을 부수며 스트레스 푸는 데가 있다는 거였다.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다. Rage Room은 Smash Room, Break Room, Anger Room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분노를 푸는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었다. 입장료를 내면 보호복과 머리와 얼굴이 가려지는 헬멧을 대여해주는데, 그걸 착용하고 비치된 연장을 골라 병이나 가전제품 등을 분이 풀릴 때까지 때려 부수면 되는 거다.
처음에 본 영상은 벽에 그려진 우스꽝스러운 얼굴에 병을 던져 깨트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유리병이 산산조각 나면 그들은 환호하며 즐거워했다. 별난 곳이 다 있구나 싶었다. 보고 있자니 내가 방망이를 휘두른 것도 아닌데, 막힌 속이 뚫리는 것 같았다. 바닥에는 유리 파편이 수북했다. 푸른 병, 갈색 병, 투명한 병들이 형체를 잃고 쌓여 있었다. 누가, 무엇 때문에, 왜 그 많은 병을 던졌을까.
친절한 알고리즘이 유사한 유튜브 영상을 계속 찾아주었다. 또 다른 룸에는 벽에 형광색 페인트로 뿌린 낙서가 요란했고 ‘BOOM’ 같은 글씨가 덧입혀져 있었다. 남녀가 함께 방망이로 드럼세탁기를 부수는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계속되는 타격에 철판이 꺼지고 문짝이 떨어지고 쓰러져 뒹굴었다. 거기가 끝인 줄 알았다. 남자가 세탁기 안의 스테인리스 통까지 잡아당겨 뽑아냈다. 그들은 통을 바닥에 눕혀 놓고 또다시 쾅쾅 내리쳤다. 병이 깨질 때의 통쾌함은 사라지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 방망이 끝에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쇳덩이도 저 지경이 되는데 성할 리 없다. 드라마에서 조폭들에게 죽기 전까지 두들겨 맞고 피범벅이 되어 혼절한 배우들의 얼굴이 스쳐 갔다. 바닥에는 깨진 파편이 가득하고 조명조차 음산했다.
2016년 12월에 방영된 CBS 뉴스를 보고 2018년 2월 21일 〈Voyage Dallas〉에 오른 인터뷰기사도 읽었다. 다 맞는 정보인지는 모르겠으나, 달라스에 사는 도나 알렉산더(Donna Alexander)가 2008년 자신의 차고에서 ‘Anger Room’을 시험 운영한 게 레이지 룸의 시초였다. 당시에는 45불을 내면 15분간 마음대로 부술 수 있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결국 상업 공간으로 옮겨 지금의 사업을 하게 되었다. 사업이 대박 나자, 비슷한 업체들이 생기기 시작해서 달라스포트워스 지역뿐 아니라 일본과 한국에도 생겼다. 그녀는 주변에 분노를 이기지 못해 벽에 구멍을 내거나 타이어를 찢었다가 감옥에 가는 사람들을 보며, 분노를 안전하게 풀 공간이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니라 분노를 안전하게 표출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것과 달라스에서 시작한 비즈니스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Rage’는 단순한 화가 아니라 폭발 직전의 극심한 분노를 뜻한다. 공감한 누군가는 결국 그 사업가에 방을 내주었다. 만일 내가 그곳에 간다면 어떨까, 뭔가 깨지는 소리를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어깨와 허리도 성치 않은데,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방망이까지 휘둘렀다간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집에서는 컵 하나만 깨져도 비상이다. 아무리 잘 쓸어 담아도 사방으로 튄 유리 조각을 다 찾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방심하는 순간 밟아서 피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깨뜨리는 건 순간인데 치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살다 보면 분노가 생긴다. 가정, 학교, 직장, 단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상처를 받는다. 그때마다 분노를 표출할 수 없기에 가족과 공동체, 생계를 위해 할 말을 삼키며 살아간다. 화를 낼 줄 몰라서가 아니라, 다스리는 법을 익히며 버텨내는 거다.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레이지 룸을 가두고 살 것이다. 차이는 그 문을 열어젖히느냐, 조용히 닫아 두느냐에 있을 뿐이다. 뉴스에 등장하는 총격사고 중에는 분노 조절 장애로 인한 사고가 많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사람의 분노는 어디까지 안전하게 풀 수 있고, 어디서부터 타인의 삶을 무너뜨리는 폭력이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리 조각은 빗자루로 쓸어 담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파편은 구석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불쑥 발바닥을 찌르며 생존 신고를 한다. 레이지 룸을 보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를 터뜨릴 방 하나가 아니라, 분노를 견디고 다독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 없는 세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말을 조심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려 애쓴다면 분노 게이지가 조금은 내려가지 않을까. 안 그래도 더운데, 그랬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