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디세이〉가 개봉하자 SNS가 들썩였다. 너도나도 보았다는 인증사진을 올리고 감상을 쏟아냈다. 예매하려고 보니 한 달 후까지 자리가 없었다. 영화 한 편 못 봤다고 그렇게까지 서운할 일인가.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오디세우스의 배에 올라탔는데, 나만 선착장에 남겨진 기분이었다.
예정에 없던 한국 방문을 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 디카시를 쓰면서 공모전에 응모한다면 꼭 황순원디카시작품모집에 하고 싶었다. 상금을 떠나 황순원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그의 소설을 좋아했고 특히 「소나기」는 문학 교실 교재로 매번 다루었다. 대리 수상도 가능했지만 그 상만큼은 황순원 문학관에 가서 직접 받고 싶었다. 그 길에 세계한글작가대회와 호랑이문화포럼 창립기념식 및 심포지엄에도 참가하기로 했다.
“엄마, 오디세이는 한국에서 봐. 한국말 자막도 나오잖아.”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한국에서의 일정은 강의와 문화 행사로 빼곡했다. 쇼핑 한번 못했지만,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오랜만에 문화 샤워를 받은 기분이었다. 오디세이 관람도 그중 하나였다.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만큼은 보고 가고 싶어서 조카에게 예매를 부탁했다. 영등포 롯데시네마에서 간신히 내 시간에 맞는 표를 구했다. IMAX로 보고 싶었지만, 앞자리밖에 남지 않아 포기했다. 거대한 화면을 목전에서 올려다보다가는 오디세우스보다 내 목이 먼저 돌아갈 것 같았다.
마침내 극장에 갔다. 최신식 마사지 의자에 몸을 맡기니 쌓였던 피곤이 풀리는 것 같았다. 혼자라 누구를 살필 필요도 없었다. 온전히 영화속으로 들어가면 되니 얼마나 좋던지 혼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내의 불이 꺼지자, 객석도 사라지고 나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뿐이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이미 책으로 읽어서 알고 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수천 년 동안 읽혀온 이야기를 어떤 화면에 옮겨 놓았는지, 오래된 신화의 바다에 어떤 파도를 일으켰는지였다. 영화는 장대했다. 그러나 관람 후 내게 남은 것은 트로이 목마도, 거대한 전투도, 괴물도 아니었다. 오디세우스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던 고향, 이타카였다. 그는 트로이에서 십 년을 싸웠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십 년 가까이 바다를 떠돌았다. 바다는 번번이 귀향길을 막았고, 동료들을 하나 둘 잃었다. 칼립소가 건넨 꽃에 취해 기억마저 흐려졌지만, 끝내 잊지 않은 곳은 이타카였다. 그곳에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십 년 만에 돌아온 집에는 낯선 사람들이 주인 행세를 하며 그의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재산을 축내고 있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이타카에 발을 디뎠지만, 그가 떠났던 집은 더 이상 그때의 집이 아니었다. 영화는 전쟁 영웅의 화려한 귀환보다 전쟁이 남긴 아픈 기억과 죄책감을 짊어진 한 인간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오래 따라갔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나의 이타카는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적에 인천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으므로 누가 고향을 물으면 주저 없이 인천이라고 대답해왔다. 하지만 그곳은 출생지일 뿐 아무런 기억이 없다. 부모님은 인천에서 만나 결혼했고 언니와 나를 낳았다. 우리가 어렸을 때 큰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내가 알고 있는 인천은 대부분 부모님에게서 들은 이야기 속에서 나온 거다. 실향민이었던 아버지에게 인천은 제2의 고향이기도 했다. 어른이 된 후 인천에 찾아가 보았지만, 남들이 그리워하는 고향과 내가 그리는 고향은 그리움의 형체가 달랐다. 인천은 나를 세상에 내려놓은 곳이고 서울은 내 기억을 키운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달라스에서 가족과 살고 있다. 내 고향은 하나의 지명으로 묶기에는 살아온 세월 곳곳에 너무 멀리 흩어져 있었다.
서대문에서 독립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새로 들어선 건물들 사이로 눈에 익은 몇몇 건물이 알은 척을 했다. 그제야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지도가 깨어났다. 내가 머무는 호텔이 수도 없이 다녔던 화양극장 자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영천시장을 걸으니 묻어두었던 시간을 밟는 것 같았다. 고향이라는 말에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건 어쩌면 어느 한 지명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흩어져 있는 내 시간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디세우스와 나 사이에 놓인 긴 거리가 보였다. 그의 고향은 이타카라는 이름으로 한곳에 남아 있었지만, 내 고향은 살아온 시간만큼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 떠나온 곳과 돌아갈 곳이 같아야만 고향일까.
나의 이타카는 어디일까. 아직 지도에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