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상승에 대출 이자 부담은 그대로 … 기준 금리 12월 추가 인상 대두

8월 물가가 시장의 우려보다는 덜 올랐다. 하지만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연준)의 목표치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주유소 기름값과 대출 이자 부담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연준은 추가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면서도 연말 인상 가능성은 열어뒀다.
◈ 예상 밑돈 8월 물가 … 속사정은 달라
연방 상무부 산하 경제분석국(BEA)은 9월 30일 8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3.4% 올랐다고 발표했다. 변동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뺀 근원 PCE는 3.0% 상승했다. 경제학자들은 각각 3.7%와 3.3%를 예상했지만 실제 수치는 이보다 낮았다.
PCE 물가지수는 가계가 실제로 돈을 쓰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변화를 폭넓게 잰 지표다. 연준이 금리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물가 잣대이기도 하다.
수치만 보면 반가운 소식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BEA는 이번 발표에서 법률 서비스, 투자 서비스,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 세 항목의 가격 산정 방식을 고치고 과거 수치에도 소급 적용했다. 가격이 제대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로, 최근 몇 달의 물가 상승률이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이 변화가 수치를 얼마나 끌어내렸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새 방식으로 다시 계산하면 8월 연간 상승률은 7월과 같은 수준이다. 한 달 사이 오름폭은 오히려 커졌다. 전달 대비 상승률은 전체 0.3%, 근원 0.2%로 7월(각각 0.1%)보다 높았다.
네이비 페더럴 크레딧유니온(Navy Federal Credit Union)의 헤더 롱(Heather Long) 수석이코노미스트는 “8월 물가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며 “9월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압박도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 주유소에서 먼저 느끼는 물가
물가를 끌어올린 주범은 에너지였다. 8월 한 달 동안 휘발유 가격이 4.4% 뛰었고, 에너지 관련 상품과 서비스 전체로는 2.3% 올랐다. 교통 서비스 요금도 1.4% 상승했다. 오른 것은 기름값만이 아니다. 8월에는 가전제품과 자동차 수리비, 휴대전화 요금도 크게 올랐다.
9월 들어서는 경유가 문제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9월 17일 기준 텍사스 경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5.96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라스는 5.98달러, 포트워스-알링턴은 5.97달러였다. 1년 전(3.21달러)보다 85% 비싸다. 30갤런을 채우려면 약 179달러가 들어 1년 전보다 82달러가량 더 내야 한다.
휘발유도 부담이다. 일반 휘발유 전국 평균 가격은 갤런당 4.46달러다. AAA의 대니얼 암브러스터(Daniel Armbruster) 대변인은 올 9월이 최근 26년 가운데 가장 휘발유 가격이 비싼 9월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나마 기대할 만한 것은 계절 변화다. 겨울용 휘발유로 바뀌는 시기에는 통상 갤런당 15~25센트가량 값이 내려간다.
문제는 이 같은 9월의 기름값 급등이 이번 8월 통계에는 담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음 달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 씀씀이는 늘고 소득은 제자리
기름값이 오르면서 지출도 늘었다. 8월 개인 소비지출은 한 달 새 0.9% 증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유 지출이 늘어난 것이 소비 증가의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개인소득은 0.2% 느는 데 그쳤다. 임금과 함께 메디케어·소셜연금 같은 정부 지급액이 늘어난 덕분이다. 세금을 떼고 물가 상승분까지 반영한 실질 가처분소득은 증가율 0%를 기록했다. 손에 쥐는 돈은 늘었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월급 사정도 좋지 않다. 8월 평균 시간당 임금은 1년 전보다 3.1% 올라 2021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저축률은 4.1%로 집계됐다.
반면 경제 전반은 탄탄하다. 같은 날 발표된 2분기 경제성장률 확정치는 연율 2.2%로, 기존 추정치 1.5%에서 크게 올라갔다. 경제 활동의 약 70%를 차지하는 소비는 2분기에 연율 3.8% 늘어 1분기(0.7%)보다 크게 빨라졌다. 소비와 투자가 모두 이전 추정보다 활발했고, 투자 증가에는 인공지능(AI) 인프라 건설이 큰 몫을 했다. WSJ는 경제가 관세, 이민 단속, 높은 에너지 가격 같은 악재를 딛고 성장하면서 물가 상승도 함께 부추기고 있다고 짚었다.
◈ 팬데믹 때보다 얼어붙은 소비 심리
지갑 사정이 빠듯해지자 소비자들의 마음도 얼어붙었다. 민간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Conference Board)가 9월 29일 발표한 9월 소비자신뢰지수는 81.9로, 전달(88.6)보다 6.7포인트 떨어졌다. 2014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최저치보다도 낮다.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는 109.3으로 7.9포인트 내렸다. 향후 몇 달의 경기를 내다보는 단기 전망 지수도 5.9포인트 떨어진 63.6에 그쳤다. 응답자들이 직접 적어 낸 의견은 대부분 비관적이었고, 기름값과 각종 상품·서비스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불만이 자주 등장했다.
콘퍼런스보드의 데이나 피터슨(Dana Peterson)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두 달 연속 약해진 소비 심리가 9월 들어 눈에 띄게 악화했다고 진단했다. 현재 기업 경영 여건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가가 부정적으로 돌아선 것은 2024년 9월 이후 처음이라는 설명이다.
◈ 7% 넘어선 모기지 금리
집을 사려는 가정의 부담도 커졌다. 국책 모기지 기관 프레디맥(Freddie Mac)에 따르면 9월 24일 기준 30년 고정 모기지 평균 금리는 7.03%로 전주(6.95%)보다 올랐다. 7%를 넘은 것은 2025년 1월 이후 처음이다. 1년 전에는 6.3%였다. 15년 고정 금리도 6.26%에서 6.42%로 뛰었다.
원인은 국채 금리 상승이다. 모기지 금리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를 따라 움직이는데, 이 금리가 최근 19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터닷컴(Realtor.com)의 앤서니 스미스(Anthony Smith) 선임이코노미스트는 물가 압력이 커지고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다시 넘나들면서 국채 금리가 계속 오른 것이 모기지 금리 상승의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국채 금리는 이번 물가 발표 이후 한풀 꺾였다.
◈ 연준, 서두르지 않지만 멈추지도 않는다
연준은 9월 1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3.75~4.00%로 조정했다. 3년여 만의 첫 인상이었다. 올여름까지만 해도 연준 내부에서는 물가가 저절로 누그러지면 올해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8월 물가 지표가 예상보다 뜨겁게 나오자 인상으로 돌아섰다. 물가가 연준 목표치 2%를 웃도는 상황은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추가 인상에는 신중한 분위기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부의장을 맡고 있는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9월 29일 연설에서 “9월 조치로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고, 더 많은 정보를 모을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연말에 한 차례 더 올리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는 여지도 남겼다. WSJ는 그가 평소 개인 의견보다 위원회 전체의 기류를 대변해 온 인물이어서 발언에 더 무게가 실린다고 전했다. 시장도 다음 인상 시점을 10월보다 12월로 보는 분위기다.
◈ 10월, 가계가 챙겨볼 일정
물가와 금리의 방향을 가늠할 지표는 10월에 잇따라 나온다.
연준의 다음 금리 결정은 10월 28일이다.
은퇴 세대에게는 10월 14일이 중요하다. 이날 사회보장국이 내년 소셜연금 인상률(COLA)을 발표한다. 인상률은 7~9월 물가 상승률을 1년 전과 비교해 정해진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3.6%, 시니어시민연맹(TSCL)은 3.5% 인상을 예상한다. 이대로라면 평균 수급자는 매달 73~75달러가량을 더 받게 된다. 다만 소셜연금에서 빠져나가는 메디케어 파트B 보험료가 올해 9.7% 올라 월 202.90달러가 된 데 이어 내년에는 약 209.50달러로 오를 전망이어서 실제 인상 효과는 줄어든다. 10월 15일부터 12월 7일까지는 메디케어 오픈 등록 기간이다.
[알아두면 쉬운 경제 용어]
■ PCE 물가지수(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 가계가 실제로 돈을 쓰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재는 지표다. 연준이 금리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본다.
■ 근원 PCE: 날씨나 국제 정세에 따라 값이 크게 출렁이는 식품과 에너지를 뺀 물가다. 물가의 ‘기본 체온’에 해당한다.
■ CPI(소비자물가지수)와의 차이: CPI는 정해진 장바구니의 가격 변화를 본다. PCE는 소고기 값이 오르면 닭고기를 사는 식으로 소비자가 씀씀이를 바꾸는 것까지 반영한다.
■ 연준·FOMC: 연준은 미국의 중앙은행이다.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연준에서 금리를 결정하는 회의로, 1년에 8번 열린다.
■ 기준금리: 은행끼리 하루 동안 돈을 빌려줄 때 적용하는 금리다. 이 금리가 오르면 카드 이자, 자동차 대출, 모기지 금리가 줄줄이 오른다.
■ 실질 가처분소득: 세금을 떼고 물가 상승분까지 뺀 뒤 실제로 쓸 수 있는 소득이다. 증가율이 0%라면 월급이 올라도 살림살이는 제자리라는 뜻이다.
■ 국채 금리: 정부가 돈을 빌릴 때 내는 이자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오르면 모기지 금리도 따라 오른다.
■ COLA(생계비 조정): 물가 상승에 맞춰 소셜연금 지급액을 해마다 올려주는 제도다.
유광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