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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정(情)이 칼이 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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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5월 15, 2026 1: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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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편집국장 유광진


— 캐롤튼의 비극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

지난주 캐롤튼 K타운에서 총성이 울렸다.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여러 사람이 큰 상처를 입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한인이었고,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사업과 인간관계가 오랜 시간 얽혀 있던 사람들이었다.

사건 직후 북텍사스 한인사회는 깊은 충격에 빠졌다. 많은 동포들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편에는 더 무거운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서로를 잃어가기 시작했는가.

이번 사건은 단순한 범죄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고, 생명을 해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비극을 단지 한 개인의 극단적 선택으로만 치부한다면, 우리 공동체에 던진 경고를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된다.

정(情), 이민사회를 지탱해온 힘

우리 한인 이민사회는 원래 정으로 버텨온 공동체였다.

낯선 땅에서 언어도, 문화도, 제도도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 한인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다. 누군가 가게를 열면 일부러 찾아가 밥을 팔아주고, 일자리를 소개해주고, 급하면 돈도 빌려줬다. 교회와 단체를 중심으로 서로의 삶을 나눴다. 가족이 한국에 있어도 실제 삶의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동포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동포’라고 불렀다. 단순히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함께 버텨온 사람들이라는 의미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의 자녀 결혼식을 챙기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울어주며 공동체를 만들어왔다. 북텍사스 한인사회의 오늘은 그렇게 수많은 이민자들의 희생과 정 위에 세워졌다.

가까울수록 깊어지는 상처

그러나 가까운 공동체는 때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우리는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오히려 계약보다 신뢰를 먼저 앞세웠다. 계약서보다 악수가 먼저였고, 법보다 의리가 앞섰다. 친하니까 문서 없이 돈이 오갔고, 아는 사람이니까 구두 약속으로 사업이 진행됐다.

약속이 어긋나고 관계가 틀어지는 순간,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법적 근거도, 공식 기록도 없는 상황에서 남는 건 감정뿐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낯선 사람에게 당한 상처보다 훨씬 깊다. 믿었기에 더 아프고, 정을 나눴기에 더 원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이 오랜 시간 풀리지 못한 채 쌓이면, 사람은 점점 혼자가 된다.

우리에게 안전망이 있었는가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무거운 질문이 여기 있다. 갈등이 커져가는 동안, 이를 중재하고 위험 신호를 발견할 공동체의 안전망은 과연 있었는가.

억울함을 호소할 곳은 있었는가. 분노와 절망 속에 무너져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창구는 있었는가. 법을 잘 모르는 이민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도록 도와줄 시스템은 있었는가.

아직 우리는 그런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축하하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조용히 무너지는 사람을 발견하는 데에는 서툴렀다. 이민사회 특유의 체면 문화 속에서 힘들어도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업 실패의 압박, 경제적 부담, 관계 단절 속에서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공동체는 그런 사람들을 일찍 알아채고 손을 내미는 데 아직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 문화를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그 따뜻함은 앞으로도 지켜야 할 우리 공동체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다만 이제는 그 정이 갈등으로 변했을 때 안전하게 풀어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우선 사업 관계에서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계약서를 쓰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문서화는 불신의 표현이 아니라 서로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나중에 다툼이 생기더라도 감정이 아닌 사실을 근거로 대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더 나아가 한인 상공회의소와 한인회, 교회 공동체가 분쟁 조정 역할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달라스·포트워스 지역에는 수십 개의 한인 단체가 있다. 그 중 어딘가에 법률 상담과 사업 분쟁 조정, 심리 지원을 연결해줄 수 있는 창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갈등이 극단으로 향하기 전에 누군가 중간에서 손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의 존재 이유다.

이 비극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지금 온라인에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과 자극적인 해석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공동체에 더 필요한 것은 소문의 확대가 아니라, 혹시 우리 주변에 혼자 아파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는 일이다. 감당하지 못할 분노와 상처를 안고 무너져가는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이다.

해리 하인스에서 캐롤튼 K타운까지, 수많은 이민자들이 눈물과 땀으로 일궈온 이 공동체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원래 서로의 손을 붙잡고 버텨온 사람들이었다.

고 조성래씨와 고 조용학씨는 그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두 분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추모는, 이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달라지는 것이다.

정으로 시작한 이 공동체가, 정으로 인한 상처도 다시 정으로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정이 이번처럼 칼이 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TAGGED:KTN 편집국장 유광진데스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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