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2017년 9월의 어느 날, 필자의 첫 과학 칼럼이 지역 신문에 실렸다. 그 후로 매달 한 편의 글을 써왔고, 지금 이 글이 100번째 칼럼이다. 칼럼을 시작할 때 그 끝을 정해두지 않았고, 매번 칼럼을 준비하는 과정도 필자에게 큰 즐거움이었기에, 지난 수많은 칼럼 준비가 한순간에 지나간 느낌도 든다. 100개의 칼럼을 쓰며 느끼고 경험한 것을 독자 여러분과 나눠보고자 한다.
칼럼의 특성상 과학적 사실이나 정보를 다루다 보니, 글을 쓰는 과정이 필자에게 새로운 공부 시간이 되었다. 블랙홀 주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양자역학의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반도체의 원리가 무엇인지 등등, 필자도 두루뭉술하게만 알던 내용을 다시 공부했다. 그 내용을 쉬운 설명으로 풀어내는 과정도 필자에게 큰 깨달음을 선물해 주었다.
칼럼을 쓰는 과정에서 필자는 색다른 방향의 깨달음을 얻었다. 칼럼에서 주로 과학적 사실이나 공학 기술의 전반적 원리 등을 다루었지만, 주제에 따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조심스레 전달한 경우도 많았다. 특히 전기차와 비트코인이 기억에 남는다. 필자의 전망이 틀렸기 때문이다.
2017년에 쓴 첫 칼럼이 전기차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테슬라가 전기 자동차 시대를 주장하는 거의 유일한 자동차 회사였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이 크지 않았고, 1회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짧다는 점, 충전소가 많지 않은 점 등,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자동차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기에 당시 전기차의 위치는 다소 위태로웠다. 기존 자동차 제조 회사들도 당시에는 전기만 쓰는 자동차를 만드는 데는 부담이 컸기 때문에, 전기와 휘발유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대안으로 내놓던 시절이다. 그런 추세를 고려하여, 전기차로의 급진적인 시장 변화를 필자는 예상하지 못했다.
2020년에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풀린 자금이 이른바 하이테크 투자로 몰렸고, 전기차 인기의 급상승으로 테슬라가 흑자 전환을 하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당시에는 당장 전기차 시대가 열릴 것만 같았다. 비록 지금은 다소 전기차 열풍이 식긴 했지만, 자동차 시장의 방향이 전기차라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2018년 초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비트코인이었다. 필자도 비트코인의 기술적 부분을 칼럼에서 다룬 적이 있다. 기존의 경제학적 시각으로 봤을 때 비트코인의 장기 생존을 확신하기 어려웠다.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전통적인 자산과 달리 비트코인은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기 어려웠고, 일반 화폐처럼 국가나 국제사회가 그 효용성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필자는 칼럼에서 비트코인의 앞날을 어둡게 보았다. 실제로 비트코인의 가격은 2018년 초에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초에는 1년 전에 비해 80%나 하락하였다. 필자도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라고 외쳤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다가, 코로나 사태 이후 가격이 폭등하였다. 필자를 포함해 비트코인의 소멸을 점치던 많은 사람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도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였으나 비트코인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투자와 투기의 경계에 있는 오묘한 존재로 금융 시장에 남아있다. 10년 전 가격에 비해 현재 가격이 100배 이상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우리가 이해하든 못 하든 비트코인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금융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 같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필자에게는 습관이 하나 생겼다. 내가 가지고 있는 관점의 틀을 항상 의심하는 것이다. 혹시 내가 익숙한 과학, 공학적 사고체계 때문에 생긴 선입견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향을 왜곡하고 있지 않은지, 혹시 이 선입견을 버리고 자유롭게 생각한다면 더 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닌지 늘 생각한다. 기존 질서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는 발전적 파괴가 과학 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켜온 원동력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20세기 이후 현대 물리학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학자는 누가 뭐래도 아인슈타인이다. 그런 그도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완전히 마음을 열지는 못했다. 20세기 초, 매우 작은 물질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면서 기존의 고전 역학의 한계를 발견한 많은 물리학자들이 양자 역학이라는 새로운 설명 방법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새로운 방법론을 오랫동안 거부했다. 긴 시간의 연구와 실험을 통해 물리학계는 양자역학이 미시 세계를 더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관찰하는데 매우 중요한 방법론임을 밝혀냈다. 반도체로 대표되는 현대 전자 공학의 핵심도 양자역학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의 개발에도 비슷한 혁명이 발견된다. 과거에는 인공지능이 명시적인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보았지만, 최근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인공지능은 주어진 규칙이 없이 수많은 데이터로부터 얻어진 패턴만으로도 지능이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즉, 현대의 인공지능은 주어진 주제를 이해하고 있는지 불분명할 때가 많지만, 우리의 질문에 가치 있는 답을 준다는 점에서 지능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으로 영상을 만들 때, 과거에는 역학 방정식을 적용해 물체의 움직임을 모사했지만, 요즘은 수많은 실제 영상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역학을 전혀 모르면서도 실제와 매우 유사한 물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어낸다.
앞으로도 필자는 칼럼에서 인류가 계속 쌓아갈 과학 지식과 그 후에 다가올 발전적 파괴를 계속 이야기해 보려 한다. 그 이야기가 많은 독자분께 지적 유희가 되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