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오랜만에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다시 읽었다. 하얼빈은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의 대리인이었던 이토, 그러한 이토를 저지하려고 암살하는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다.
이토를 죽이려는 생각을 가졌을 때 ‘살인’을 해야 하는 한 인간으로서 고뇌가 깊었다. 안중근은 곧바로 의병 활동을 함께했던 동지 우덕순을 찾아간다. 우덕순은 안중근의 의중을 간파하고 두말없이 동행을 결정한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이토가 탄 기차가 하얼빈에 도착했다. 이토는 러시아 재무대신과 열차 안에서 회담을 가진 후 9시 30분경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기 위해 하차하였다. 안중근은 사열을 마치고 열차로 돌아가던 이토를 브라우닝제 반자동 권총 M1900으로 사격하였다. 총격 후, 안중근은 가슴 안에 있던 태극기를 높이 들어 올리며 에스페란토어로 “코레아 우라!”라고 3번 크게 외쳤다. 이 외침은 “대한 독립 만세”라는 뜻이었다.
안중근은 일본 제국 정부에 넘겨져 대련의 뤼순 감옥에 갇혀 있다가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 해 3월 26일 처형되었다. 그의 유서를 보면 그는 독립을 위해 이토를 죽였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풍친 노숙하다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느니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르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에 묻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 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이때 그는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고 세 아이의 아버지였고 아름다운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고 한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가슴 아픈 기록을 보면서 나는 1948년에 총살당한 아름다운 두 청년을 생각했다. 23살의 문상길 중위와 20살의 손선호 하사. 제주 4·3 민간인 학살의 원흉 중 하나인 박진경을 암살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된다. (이승만, 조병옥, Rothwell H. Brown, 서북 청년단, 남로당 무장대 지도부 등이 다른 원흉들이다.)
총살 전 문상길은 유언을 남긴다. “스물세 살을 마지막으로 나 문상길은 저세상으로 갑니다. 여러분은 한국의 군대입니다. 매국노의 단독정부 아래서 미국의 지휘하에 한국 민족을 학살하는 한국 군대가 되지 말라는 것이 저의 마지막 염원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 총성이 울리고 이 두 젊은 군인들은 고개를 떨구고 이 세상의 생을 마감한다.
제주 4·3 때 미군정의 제주 최고사령관 브라운( Rothwell H. Brown) 대령은 ‘원인에는 흥미가 없고 나의 사명은 오직 진압뿐’이라고 말하며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다. 브라운 대령과 함께 실제 작전을 수행한 신임 연대장 박진경은 “제주도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선 제주도민 전체인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라고 주장하며 ‘초토화 작전’을 밀어붙였다. 박진경은 6주 만에 무려 약 6천 명을 체포했다. 대부분은 중학생과 노인을 포함해 무고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박진경의 무도함을 보고 암살을 기획한 이가 문상길 중위다.
문상길 중위는 전 연대장 김익렬 중령과 박진경 대령의 작전을 비교하면서 무모한 토벌을 막고 동족상잔을 피하기 위해 암살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박진경을 직접 저격한 손선호 하사는 재판에서 “무고한 양민을 압박하고 학살하게 한 박 대령은 반민족적”이었다며 동포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당시 암살 배후에 무장대 총책 김달삼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문상길 중위는 법정에서 의혹을 부인했다. 다음은 법정에 선 문상길 중위의 최후 진술이다.
“이 법정은 미군정의 법정이며 딘 미군정장관의 총애를 받던 박진경 대령의
살해범을 재판하는 인간들로 구성된 법정이다. 우리가 군인으로서 자기 직속상관을 살해하고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한 것이다. 재판장 이하 전 법관도 모두 우리 민족이기에 우리가 민족 반역자를 처형한 것에 대하여서는 공감을 가질 줄로 안다. (…중략…) 박진경 연대장은 먼저 저세상으로 갔고, 수일 후에는 우리가 간다. 그리고 재판장 이하 전원도 저세상에 갈 것이다. 그러면 우리와 박진경 연대장과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저세상 하느님 앞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인간의 법정은 공평하지 못해도 하느님의 법정은 절대적으로 공평(公平)하다. 그러니 재판장은 장차 하느님의 법정에서 다시 재판하여 주기를 부탁한다.”
주동자인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는 총살형을 당했다. 1948년 9월 23일 오후 3시 45분이었다. 생각과 행동이 바르고 아름다운 이 젊은이들이 대한민국 사형집행 1호다. 하느님의 법정에서는 공평한 재판을 받았기를…
* 이 글은 ‘제주의 소리’에서 김관후 작가의 글과 김용옥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참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