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임진왜란 직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의 패권을 잡아가는 과정을 픽션의 형식을 빌려 그리면서 일본 사무라이의 세계를 서양 독자들에게 소개한 제임스 클라벨의 소설 <쇼군>은 베스트셀러가 된 후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어 1억2,000만 명이 시청하는 공전의 대히트를 쳤다. 필자도 바쁜 박사과정 학생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시청했다. 보면서 극 중에 나오는 대사들을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면 여주인공 ‘마리코’의 대사 “죽는 것은 산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같은 말이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삶=죽음’이라는 말인데 ‘이건 난센스야. 말장난이지.’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교 문화권에 속한 우리는 이런 말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불교의 정수라는 반야심경을 보면 “색즉시공 공즉시색” 즉 있는 것은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은 있는 것이라는 말이 핵심 메시지로 나온다. ‘죽는 것이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정신을 상대의 칼에만 전념하게 된다는 사무라이들의 교육 방식이 선불교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런 대사가 자주 나오는 것이리라.
참(truth)과 거짓(false)에 기초한 이분 구조의 논리가 지배하는 서양 문화에서는 참은 결코 거짓이 될 수 없으며 거짓은 참이 될 수 없다. ‘죽음이 삶과 다르지 않다’라는 명제는 이 이분법 논리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세계를 이분법 논리(double valued logic)로 설명하려는 서양 철학에 길든 우리에게 참과 거짓이 하나가 되는 일분 법 논리(single valued logic)를 받아들이는 일은 무척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선불교의 선사들은 이를 위하여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하나 잡고 몇십 년 동안 매달려 ‘참과 거짓이 구별이 없는 논리’를 깨우치기도 한다. 참과 거짓이 구별이 없어지고 죽음과 삶이 구별도 없는 마음의 상태는 해탈의 경지 즉 부처의 마음이다. 많은 선사들이 도전하고 얻으려 노력했지만, 부처가 된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쉽지는 않은 듯하다.
인간의 삶에서 오는 모든 고뇌와 고통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한 마디로 줄여 말하면 인간의 유한성에서 온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유한한 생명, 유한한 재화, 유한한 땅 등이 무한을 향하는 욕망과 충돌하여 번뇌와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즉 인류의 문화란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며 무한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신을 생각하고 신을 우리의 생활과 사고의 바탕으로 하는 종교를 만들어 무한을 우리 안에 끌어 드리는 것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인간이 유한에 만족한다면 굳이 무한을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이 끝나고도 무한히 사는 법을 알고 싶어 한다. 기독교는 신에 대한 믿음과 선행으로 구원을 얻어 영생을 얻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의 구렁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이것은 수학에서 무한히 뻗어 있는 실수 공간에 +무한(+∞, 신, 천당, 구원)과 -무한(-∞, 악마, 지옥, 멸망)을 도입하여 유한하고 안정적인 성질을 갖는 콤팩트(Compact) 공간인 확장된 실수 공간을 만드는 과정과 유사하다. 현대 수학에서는 이 과정을 콤팩트화(compactification)라고 하는데 무한히 뻗어 있는 공간에 두 개의 무한, 즉 +∞ 과 -∞을 도입하는 방법은 ‘두 점 콤팩트화(two point compactification)’라 한다. 두 무한을 도입하는 대신 +무한과 -무한을 하나로 묶어 원을 만들어 하나의 무한을 도입하는 방법을 ‘한점 콤팩트화’(one point compactification)’라고 하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과 삶이 구별이 없는 마음의 상태와 비슷한 것 같다.
통계학은 무한히 많다고 가정하는 모집단에서 유한한 작은 부분을 추출해서 조사함으로써 모집단 전체에 대한 특성을 규정지으려 한다. 무한에 대한 진실을 유한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 무한한 공간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작은 부분을 추출하는 일을 샘플링이라 하는데, 이는 무한에 가까운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계산이 필요하고 또 자료를 넣을 수 있는 컴퓨터의 용량이 엄청나게 커야 하므로 유한을 통해 근사치 해법을 찾으려는 수학자의 타협안이다. 여기에 더해 논리의 값도 참이나 거짓만 있는 것이 아니라 0.7의 ‘참’이나 0.99의 ‘참’ 혹은 0.3의 ‘참’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다분 법 논리(multi-valued logic)를 쓰기도 한다. 완전한 진리를 추구하기보다 30퍼센트의 진리 혹은 70퍼센트의 진리를 받아들여 ‘진리의 확률’을 함께 기술하는 법을 베이지안 방법(Bayesian method)이라 부르는데 현대 통계 추론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요즈음에는 무한에 가까운 양의 데이터(빅데이터)를 저장하고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개선되어 샘플링 대신 자료 전체를 분석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샘플링 없이 무한에 가까운 모집단 자체를 분석하려는 시도이다. 인공지능(AI)도 그런 노력의 한 종류인데 클라우드 컴퓨팅과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통해 무한에 가까운 엄청난 양의 자료를 분석한다. 무한을 직접 분석하려는 이 불온한(?) 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필자같이 멍청한 사람은 짐작조차 어렵다. 혹시 새롭게 하느님으로 등극하는 AI는 알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