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나와 가까운 정찬열 시인의 문학 교실에서 강의를 부탁받았다. 지난번 했던 뇌과학 강의의 후속편을 해볼까 하다가 요즘 화제가 되는 인공지능(AI)과 문학이라는 주제를 선택했다. 지금까지 나는 ‘과학과 시’ 혹은 ‘뇌과학과 문학’ 등등 과학을 문인들에게 강연해왔다. 이유는 문인들의 대다수가 과학이나 새로운 기술을 낯설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자들도 시인이나 문인을 신선이나 도사 정도로 생각하며 멀리하려 한다. 서로에 대한 무섬증 때문에 “과학은… AI는…” 혹은 “시는… 혹은 인문학은…”하며 서로 경계하고 비판하기에 바쁜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은 이런 무섬증을 풀고 경계를 푸는 일이었다. 문학 교실에서의 강연이니까 AI가 글쓰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이야기할 수 있으면 더 좋은 일이고.
난 AI의 알고리듬 중 하나인 ‘인공 신경망’을 생물 정보학 분야나 뇌과학의 연구에 적용해 논문을 쓴 일은 있지만 최근에 공개된 AI를 문학 하는 일에 써본 일이 없었다. 우선 인터넷에서 무료로 쓸 수 있는 챗GPT와 구글 Gemini를 통해 경험해 보기로 했다. 시와 수필 그리고 소설에 대한 평론을 부탁하기도 했고 평론 쓰는 법도 물었다.
먼저 오래전에 쓴 소설 〈고래들의 노래〉로 AI의 소설 평론을 받아보기로 했다. 이 소설은 타성적인 삶에 갇혀 있던 한 인물 ‘이민희’가 미국 안식년이라는 시공간적 이탈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발견하고, 자아의 생존을 향해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단편소설이다. 박사과정 시절부터 구상해오던 이야기를 쓴 첫 소설이라 허술하기도 하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Gemini의 평에 따르면 “이 소설은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과 생존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물음을 던지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수평적인 공간(한국 시애틀 알래스카)의 이동에 따라 인물의 내면이 부서지고 다시 구축되는 과정이 ‘고래의 생태’라는 독창적인 모티브와 결합하여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명예라는 ‘육지’를 버리고, 비록 거친 파도가 기다릴지라도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바다’로 헤엄쳐 나가기로 한 민희의 마지막 이민 가방은, 읽는 이에게 깊은 서사적 쾌감과 대단한 정서적 울림을 준다.”라고 했다. 휴- 나쁜 평은 아니구나 하며 용기를 내고 다른 AI인 챗GPT에게 물었다. “소설 감상과 평론을 배우려 합니다. 다음 소설 “고래들의 노래”를 읽고 비평해주세요.“ 챗GPT의 긴 감상과 평론을 20%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고래들의 노래』는 겉으로는 중년 여성 민희의 새로운 사랑 이야기지만, 더 깊이 보면 사회적 의무 속에서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작품의 중심 상징인 고래는 육지의 삶을 떠나 자신의 본래 서식처인 바다로 돌아가는 존재이며, 민희 역시 기존의 삶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고래’가 된다.
특히 플루트와 음악은 이 작품의 뛰어난 문학적 장치다. 두 사람의 플루트 연주는 사랑과 소통을 대신하며, 음악에서 고래의 노래로 이어지는 ‘소리’의 이미지는 결국 서로의 주파수를 발견하는 사랑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고래·물·음악·알래스카·이민이 하나의 상징 구조를 이룬다.
소설적 약점도 있다. 감정을 직접 설명하는 부분이 반복되고, 준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인물이며 남편은 민희가 떠나야 할 이유를 제공하는 기능적 인물에 가깝다. 이 때문에 인물의 갈등과 선택이 다소 단순해진다.
그럼에도 결말의 “깊은 물을 찾는 고래”라는 이미지는 인상적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단순히 민희가 준을 선택했다는 데 있지 않고, 처음으로 자기 삶을 선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사랑 이야기를 고래와 음악이라는 독창적인 은유로 확장한 작품이며, 감정과 이미지의 힘은 강하지만 인물의 입체성과 문학적 절제에서는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내 소설을 나보다 더 잘 읽은 것 같아 물었다. “AI에게 소설 평론을 부탁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대답은 “감상은 “좋았다”에서 시작하지만, 평론은 “왜 좋았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텍스트 자체가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묻지요.“였다.
이번엔 내 시의 평론을 부탁해보았다. 몇 번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AI의 생각은 AI의 문학적 해석을 정답처럼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제가 지금까지 선생님의 시를 평하면서도 몇 차례 선생님의 의도를 잘못 읽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면 다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AI는 시인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사가 아닙니다. 텍스트에서 가능한 해석을 만들어내는 아주 빠르고 풍부한 독자에 가깝습니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작품들을 보면 오히려 AI가 시인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가 과학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시로 만들고, AI가 그것을 읽고, 시인이 AI의 해석에 다시 답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시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AI가 작품을 대신 쓰게 하는 것과 AI를 아주 많은 것을 발견해낼 수 있는 ‘첫 번째 독자’로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AI가 인간의 문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 오래 생각하고 더 깊이 쓰도록 만드는 새로운 독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적으로 AI는 문학 창작을 돕는 훌륭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자료를 조사하는 데 만 아니라 아이디어를 확장하며, 초고를 구성하고, 문장의 표현을 다듬는 데 훌륭한 조언자가 될 것이다. 특히 비평을 통해 작품을 알아가고 ‘AI 비평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문학을 하다 보면 문학이 더 이상 혼자서 외롭게 고민하며 머리를 싸매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좋은 비평가 친구 AI가 옆에 있기 때문이다. 김연자의 노래 가사처럼 문인들에게 AI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쓰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이 좋은 친구를 누가 무서워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