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헌법 14조 재확인 … “미국 땅에서 태어나면 시민” 150여 년 원칙 유지
트럼프 2기 핵심 이민정책에 또 제동 … 비영주권 한인 가정 한시름 덜어

연방대법원이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 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을 6대 3으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미국 땅에서 태어난 거의 모든 아이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해 온 150여 년의 원칙을 재확인했으며, 이로써 텍사스를 비롯한 전국의 비(非)영주권 한인 가정이 안고 있던 불안도 일단 해소됐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 첫날인 2025년 1월 20일 서명한 행정명령 14160호를 정면으로 무력화한 것이다. 해당 명령은 부모 중 최소 한 명이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LPR)가 아닌 경우,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에게 시민권을 자동 부여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 판결 내용 – “시민권은 권리를 가질 권리”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작성한 다수의견은 수정헌법 14조의 시민권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이 조항은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하고 미국의 관할에 속하는 모든 사람은 미국 시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시민권을 “권리를 가질 권리”로 표현하며, 수정헌법 14조를 만든 이들이 이 약속을 폭넓게 의도했고 대법원은 그 약속을 지킨다고 밝혔다.
다수의견은 1898년 ‘미국 대 웡 김 아크(United States v. Wong Kim Ark)’ 판례를 핵심 근거로 삼았다. 당시 대법원은 중국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인물을 미국 시민으로 인정했고, 이후 외교관 자녀 등 극히 제한된 예외를 빼면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사람은 시민이라는 ‘속지주의(jus soli)’ 원칙이 확립됐다.
대법원은 128년간 이 해석을 거듭 확인해 왔으며 이를 바꿀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정헌법 14조가 본래 노예 해방 흑인을 위해 좁게 만들어진 조항이라며, 불법 체류자나 임시 비자 소지자의 자녀는 “미국의 관할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할 근거가 빈약하다고 봤다.
표결 구성은 단순한 6대 3을 넘어선다. 로버츠 대법원장과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그리고 진보 성향의 소토마요르·케이건·잭슨 대법관 등 5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행정명령이 헌법이 아니라 연방법을 위반했다는 별도 논리로 결론에만 동의했다. 클래런스 토머스·새뮤얼 알리토·닐 고서치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 그간의 경과 – 1년 반 끌어온 ‘시민권 논쟁’
이번 판결은 1년 반에 걸친 법적 공방의 종착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한 직후 여러 주(州)와 시민단체가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사건을 심리한 하급심 판사들은 한결같이 이를 “명백한 위헌”으로 보고 효력을 중단시켰다. 그 결과 이 명령은 어느 곳에서도 실제로 시행된 적이 없다.
논쟁의 한 고비는 지난해 여름이었다. 대법원은 개별 연방지법 판사가 행정명령의 효력을 ‘전국 단위’로 중단시키는 가처분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으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던 텍사스 등 28개 주에서는 한때 출생 시민권 제한이 시행될 수 있는 상황이 됐고, 출산을 앞둔 비영주권 가정에 큰 혼란을 불러왔다.
이후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뉴햄프셔주에서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이 사건이 명령 자체의 적법성을 다투는 형태로 대법원까지 올라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4월 1일 워싱턴 D.C.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 변론에 직접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과 관련된 사건의 구두 변론을 법정에서 지켜본 것은 처음으로, 이 정책에 대한 그의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 한인 사회에 미치는 영향
출생 시민권 제한은 텍사스 한인 사회에서도 깊은 관심을 모은 사안이었다. 달라스·포트워스(DFW) 한인 가운데는 이민 초기 단계의 합법 체류자로, 아직 영주권을 취득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E-2(투자·취업), H-1B(전문직 취업), F-1(유학) 등 임시 비자로 체류하면서 미국에서 출산을 준비하던 가정들은 자녀의 시민권 여부를 두고 불안을 호소해 왔다.
이번 판결로 이런 불확실성은 일단락됐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의 체류 신분과 무관하게 자동으로 시민이 된다는 원칙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만약 행정명령이 인정됐다면, 출생증명서만으로 시민권을 증명하던 기존 절차에 부모의 합법적 신분을 확인하는 단계가 추가되고, 매년 미국에서 태어나는 약 25만 명(이민정책연구소 추정)의 아이가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일부는 어느 나라에서도 국적을 갖지 못하는 ‘무국적(stateless)’ 상태에 놓일 위험도 제기됐다.
한편 한인 사회의 시선이 한쪽으로만 모였던 것은 아니다.
불법 체류자가 많지 않은 한인 사회의 특성상, 그동안 일부에서는 미국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시민권 취득만을 목적으로 입국하는 이른바 ‘원정 출산’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번 사안을 두고 한인 사회 내부에서도 가치관과 이해관계에 따라 평가가 엇갈렸던 셈이다.
◈ 정치적 의미와 전망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핵심 정책에 대한 사법부의 거듭된 제동으로 받아들여진다.
대법원은 앞서 올해 2월 트럼프 행정부의 광범위한 관세 정책도 무효화한 바 있어, 출생 시민권 판결은 두 번째 주요 패배에 해당한다.
보수 우위(6대 3) 구도의 대법원이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에 우호적인 판결을 다수 내려 왔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의 무게는 더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감을 표하면서도, 헌법 개정 없이 의회 입법을 통해 출생 시민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의회에서 이를 통과시킬 만한 정치적 동력이 충분치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법리적으로 주목할 대목은 캐버노 대법관의 별개의견이다. 그는 행정명령이 헌법이 아니라 연방법을 위반했다고 보면서, 의회가 입법을 통해서라면 임시 체류자나 불법 체류자 자녀의 출생 시민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의회가 아직 그런 법을 만들지 않은 만큼 대통령이 행정명령만으로 이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대법원은 ‘장래에 의회가 출생 시민권을 제한할 수 있는가’를 두고 5대 4로 갈렸다.
즉 행정명령에는 6대 3으로 제동을 걸었지만, 입법을 통한 제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견해가 더 팽팽하게 나뉜 것이다.
반대의견을 낸 토머스 대법관은 다수의견이 시민권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비판했고, 알리토 대법관은 이번 결정을 “대법원 역사상 중대한 실수”로 규정했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의회 입법이나 향후 소송을 통한 추가 논쟁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시각도 있다.
결국 이번 판결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미국에서 태어나면 시민이라는 원칙은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둘째, 시민권의 범위를 둘러싼 헌법 논쟁은 정치권의 입법 영역으로 무대를 옮길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텍사스 한인 사회로서는 당장의 불확실성은 해소됐으나, 이민 정책을 둘러싼 큰 흐름은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최현준 기자 ⓒ KTN

